정정골 휘감는 가야금 선율…대가야의 혼을 깨우다
정정골 휘감는 가야금 선율…대가야의 혼을 깨우다
  • 정민지
  • 승인 2016.09.19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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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경북도 마을이야기-고령 가얏고마을

우륵이 가야금 만들어 연주한 곳

생가 복원…가야금 역사 ‘한눈에’

연주 배우고 소형 가야금 제작 체험

가얏고문화관 별채서 숙박도 가능
/news/photo/first/201609/img_207750_1.jpg"우륵/news/photo/first/201609/img_207750_1.jpg"
우륵이 가야금을 만들고 연주한 것으로 알려진 경북 고령군 가얏고마을은 우륵과 가야금을 테마로 한 마을로 거듭나고 있다.
“소리가 울렸고, 울리는 소리가 우륵의 몸 속으로 들어와 흔들렸다. 그 소리는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소리였다. 그리고 지나간 모든 소리의 그림자들을 모두 끌어안은 소리였다. 소리가 소리를 불러냈고, 불러낸 소리가 태어나면 앞선 소리는 죽었다. 죽는 소리와 나는 소리가 잇닿았고, 죽는 소리의 끝자락에서 새로운 소리가 솟아, 소리는 생멸을 부딪쳐가며 펼쳐졌고 또 흘러갔다. 소리들은 낯설었고, 낯설어서 반가웠으며, 친숙했다.”

김훈은 소설 ‘현의 노래’에서 가야금의 소리를 글로 재현했다. 우륵이 처음 만든 가야금을 제자 니문이 연주하는 장면은 들리지 않는 소리가 눈 앞에 그려질 정도다. 가실왕의 부름을 받고 왕경으로 들어와 대가야만의 악기를 만들고자 했던 악성(樂聖) 우륵은 가야금 소리를 처음 듣고 어떤 기분이었을까. 낯설고도 반가운 그 소리는 어떠했을까.

기록상 우륵은 490년 경 대가야의 성열현에서 태어났다. 성열현이 현재 어느 지역에 해당하는지는 확실치 않다. 경남 의령군 부림면, 대구시 동구 불로동 일대, 고령군 고령읍 쾌빈리 일대 등으로 추정되고 있다. 성열현은 대가야에서도 정치·문화적으로 발달된 지역이었다는 점에서 대가야의 거점인 고령 쾌빈리가 유력하다. ‘쾌빈’은 대가야에서 내빈을 위해 연회를 베풀던 정자인 쾌빈정에서 따온 이름이다. 정자는 남아 있지 않고 기록에서만 찾을 수 있다.

우륵이 가야금을 만들어 연주한 곳은 경북 고령 쾌빈리 가얏고 마을로 알려져있다. 이 마을의 원래 이름은 정정(丁丁)골이다. 우륵이 가야금을 만들어 퉁기니 산골에 그 소리가 ‘정정’ 울렸다해 붙여진 이름이다. 소리가 연이어 나는 것을 뜻하는 동사가 그대로 마을 이름이 된 셈이다.

지금도 ‘정정골’이라고 불리는 가얏고 마을은 이름 그 자체로 우륵 그리고 가야금과의 연관성을 보여주고 있다. 마을의 또 다른 이름은 가야금의 골짜기라는 뜻의 ‘금곡(琴谷)’이다. 가얏고 마을은 2007년 살기좋은 지역만들기 사업을 추진하면서 가야금의 옛 이름을 되살리자는 의미로 이름을 바꿨다.

광주대구고속도로 고령IC에서 내려 조금만 더 내달리면 고령 대가야읍이 나온다. 대구와 접한 고령군은 경북도 23개 시·군 가운데 울릉군 다음으로 작지만 도로망이 잘 갖춰진 덕에 접근성이 좋아 번성했다.

대가야읍에서 10분 거리도 되지 않는 가얏고 마을은 신기하리만큼 조용했다. 번잡한 시내와 가까운데도 마치 다른 세상에 온 듯 온화한 고요함이 얕게 깔려있었다. 용 모양을 닮은 주산이 마을을 감싼 가운데 용머리 위치에 비죽 솟은 탑이 보였다. 가야금 형상을 모티브로 한 우륵기념탑이었다.

“저기서 연주하면 우리 마을까지 다 들렸을 것 같지 않나요?” 안성호 가얏고마을 이장이 기념탑을 가리키며 말했다. 기념탑이 있는 그 주변을 주민들은 ‘동구뱅이’라고 불렀다. ‘동구’는 고령 사투리로 ‘환상’을, ‘뱅이’는 ‘방’을 말한다. 즉, 환상이 보이는 곳이란 뜻이다. 우륵이 이곳에서 가야금을 연주하면 그 소리를 듣고 감동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고 한다. 아마도 환상같은 가야금 소리가 당시 정정골을 휘감았을 것이다. 기념탑을 보고 있자니 1500년 전 우륵이 그 자리에 앉아 대가야의 통합을 염원하며 지었을 가야금 12곡의 소리가 어렴풋이 들리는 것 같았다.

우륵과 가야금이 중심이 된 마을답게 가얏고 마을에는 복원한 우륵 생가와 가야금의 역사와 제작과정을 볼 수 있는 우륵박물관이 있다. 마을 중심에 들어선 가얏고문화관에서는 가야금 연주를 배울 수 있고 소형 가야금도 제작할 수 있다. 별채로 지어진 체험관에서는 숙박도 가능하다.

“마을 주민이 50여명에 불과하지만 모두 가야금을 연주할 수 있어요. 집집마다 가야금도 가지고 있죠. 가야금의 마을인데 당연히 우리가 먼저 아끼고 관심을 가져야죠.” 악성의 열정적인 예술혼과 시골 마을의 고즈넉함이 공존하는 가얏고 마을에는 지금도 가야금 소리가 ‘정정’ 울리고 있다.

글=추홍식·정민지기자

사진=전영호기자

<안성호 가얏고마을 이장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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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얏고 체험마을 사업을 하면서 주민들의 생각이 바뀐 것이 가장 좋았다.”

안성호(52·사진)가얏고마을 이장은 가얏고 체험마을 사업의 위원장을 겸하고 있다. 50여 명에 불과한 마을에 연간 5천여 명이 찾다보니 사람이 늘 귀하다.

처음에 마을 사업을 한다고 했을 때, 주민 대부분 “이거 해서 뭐하겠노”하며 탐탁치 않아했다고 한다. 젊은 사람들이 다 빠져나간 농촌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는 더 힘들었다.

그는 “우리 마을 사람들부터 바뀌어야 했다. 모두 가야금을 배우고 마을 역사를 되새기면서 너무 익숙해서 잊고 지냈던 마을의 소중함을 느끼게 됐다”고 했다.

가얏고 마을에서는 다른 마을에서 체험할 수 없는 가야금 연주와 제작을 해볼 수 있다. 주민들이 모두 강사다. 몇년 동안 가야금을 배운 주민들은 합동공연을 할 정도로 실력이 늘었다. 최근에는 오방색 실을 이용해 전통매듭팔찌인 ‘장명루’ 만들기가 인기다.

고령 지역뿐 아니라 경남 일대를 주름잡던 가야국은 문자로 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역사책에 몇 줄 나오는 것이 전부다. 하지만 지역 토박이들은 어릴때부터 눈으로 가야국의 실체를 봤다고 한다.

안 이장은 “저 앞에 있는 산에 토기가 잔뜩 있었다. 당시에는 문화재인지 뭔지도 모르고 그냥 그런가보다 했다. 아버지 세대에는 쓸만한 토기를 집에 가져가는 사람도 있었다. 나중에 문화재보호구역이 되면서 이제는 그게 무엇인 줄 알지. 허허”라고 가얏고 마을을 애둘러 설명했다.

<인근 가볼만한 곳>

/news/photo/first/201609/img_207750_1.jpg"우륵기념탑/news/photo/first/201609/img_207750_1.jpg"
고령 가얏고마을에는 우륵의 집을 재현한 것을 비롯해 우륵기념탑(사진)과 우륵박물관 등 볼거리가 다양하다.
가얏고문화관(대가야읍 정정골길 55) 뒤 오동나무 산책길을 따라 가면 ‘우륵의 집’이 나온다. 초가집으로 재현한 우륵 생가는 이곳에서 우륵이 태어났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조성됐다. 산책길 끝에는 우륵박물관이 자리잡고 있다. 우륵의 생애와 음악을 중심으로 한 테마 박물관이다. 박물관은 악성 우륵, 가야의 혼을 지킨 우륵, 민족의 악기 가야금, 우륵의 후예들 등 다섯 가지 주제로 꾸며졌다. 우륵의 생애와 우륵이 가야금을 만들게 된 이유, 가야금 12곡과 가야금의 종류, 가야금 모양 등을 알기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가야금과 거문고, 대금, 피리 등 전통악기 18점은 소리를 직접 들어볼 수 있는 장치가 있어 직접 눈과 귀로 즐길 수 있다.

박물관 옆에는 오동나무 건조장이 있다. 가야금 울림통이 될 오동나무를 건조하는 곳으로 약 5년정도 말려야 악기를 만들 수 있다. 수백장의 나무판 중 10%만이 전문 장인의 손을 거쳐 가야금으로 재탄생된다.

우륵기념탑은 대가야읍 방향으로 나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다. 계단을 따라 5분 정도 올라가면 가야금 모양의 기념탑이 나타난다. 가얏고 마을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서 잠시 쉬어가는 것도 좋다.

대가야읍을 방문하면 주산(해발 310m) 남동쪽 능선에 분포한 가야국 최고의 고분군을 꼭 보고 가야한다. 우리나라 최초로 발굴된 순장묘 왕릉인 44·45호분을 포함해 왕족과 귀족 무덤으로 추정되는 크고 작은 700여기의 고분이 가득하다. 고분군에서는 가야금관(국보 제138호)이 출토됐으며 대가야 양식의 토기와 철기, 장신구 등 수많은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출토유물 130여점은 대가야박물관에 전시돼있다. 고분군은 2013년 12월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 2017년 2월 정식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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