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분위기 실종, 인정도 말랐다
설 분위기 실종, 인정도 말랐다
  • 남승렬
  • 승인 2017.01.23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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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불황·삭막한 시국
“안부 물을 여유도 없어”
소외층 찾는 온정도 ‘뚝’
“시국이 어수선한데다 유례없는 불경기까지 겹쳐 넉넉했던 인심이나 정(情)까지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가족, 친인척끼리 안부조차 물을 여유가 없네요.”

설이 나흘 앞으로 다가왔지만 여기 저기서 “설 분위기가 사라졌다”는 푸념과 한탄이 쏟아져 나온다. 엄동설한에 까치밥이 걸린 감나무만 생각해도 고향이 그리웠다는 이들도 최근엔 “고향 가는 발걸음이 무겁다”는 말을 공공연히 내뱉는다.

특히 올해 설의 경우 불황에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촉발된 탄핵 정국까지 겹쳐 모두들 가슴에 납덩이도 모자라 돌덩이까지 얹은 무거운 심정으로 일상에 임하고 있다.

극심한 불황과 취업난에 따른 각박한 세태는 인간관계의 단절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한국 특유의 ‘정(情)문화’가 실종 상태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이른바 김영란법 시행 이후 현재 지역사회에 횡행하는 삭막한 분위기는 공직사회를 넘어 민간부문까지 확산되고 있다.

직장인 김영민(남·48)씨는 “보통 설을 앞두고 서로 안부를 묻는 전화가 많았으나 올해는 모두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인지 인사를 제대로 전하지 못했다. 지인들로부터 오는 안부전화도 손에 꼽을 정도다. 과거엔 ‘명절 덕담’을 주고받으면 설 분위기가 살아났으나 올해는 설 분위기가 전혀 나지 않는다”고 했다.

취업 준비생 한정연(여·25)씨는 올해 고향 문경을 찾지 않기로 했다. 한씨는 “대학재학 시절과 졸업 후에도 꼬박꼬박 고향을 찾았지만 올해는 여유가 없어 부모님께 안부전화만 드릴 계획”이라며 “해마다 작은아버지 식구들에게도 안부인사를 했지만 올해 설은 (취업난에 허덕이는 상황 탓에) 그 인사조차 망설여진다”고 했다.

쪽방촌 거주자 등 소외계층이 설을 앞두고 느끼는 정의 부재와 각박한 현실은 매서운 한파보다 더 시리다. 대구역 근처 쪽방촌에 살고 있는 권모(남·67)씨는 “설마다 자선단체 등을 통해 기업들이 내복이나 생필품 등을 보내주었으나 올해는 불황이 심해서인지 아무 것도 들어온 게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대구 북구 산격동의 한 보육원은 이번 설이 유독 쓸쓸하다. 보육원 관계자는 “후원 물품이 지난해보다 크게 줄어든 것을 체감하고 있다”며 “넉넉지 않지만 떡국도 만들어 먹고 전도 부쳐 먹으며 명절 기분이라도 낼 계획이지만 처연함은 어쩔 수 없다”고 토로했다.

남승렬기자 pdnamsy@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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