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적 자유 쫓은 50년…“누드엔 매너리즘이 없다”
원시적 자유 쫓은 50년…“누드엔 매너리즘이 없다”
  • 대구신문
  • 승인 2017.03.24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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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2일까지 누드크로키전 여는 이준일 화백

대학시절 주경 화백에 사사

몸매·형태보다 선 흐름 관심

고정관념 벗은 역동적 線 정립

삶의 태도 묻어난 진솔한 그림

자유분방한 성격 고스란히
화가
이준일의 누드크로키전이 대구 중구 북성로 박물관이야기에서 열리고 있다.


흔히 누드드로잉 하면 섹슈얼리티를 떠올리기 마련인데, 이준일(68)에게 이 공식은 비껴간다. 그의 누드드로잉은 자유로운 성향의 발로다. 인위적인 형식을 경계하고 자유분방함을 추구하는 태생적 성향과 원초적인 자유 상태인 누드와 맞아 떨어진 것. 이 때문에 이준일의 누드드로잉을 성(性)과 연관해 접근하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고 정작 달을 보지 못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는 결코 성(性)을 폄하하거나 만만하게 보는 태도와는 무관하다.

“나는 삶도, 미술도 구속하고 얽매는 것을 경계한다. 그저 자연적인 것이 좋다. 누드는 형식 이전의 자유 상태다. 어떻게 그려야겠다는 생각에 얽매이지 않고 그릴 수 있어 좋다.”

이준일이 누드크로키를 만난 것은 미술대학 2학년 재학 시기. 근대미술의 개척자로 불리는 서양화가 주경 선생에게 누드크로키를 사사하고 지금까지 50여년 동안 누드드로잉을 미술의 본류(本流)로 삼아왔다.

지금까지 함께 작업한 모델을 어림잡으면 100명이 넘는다. 프로부터 아마추어 모델까지 다양하다. 선호하는 몸매나 모델의 연령대, 모델과의 거리, 포즈 등의 기준은 딱히 없다. 누드면 만사 오케이며, 어떤 상황이든 개의치 않는다. 혹자는 ‘그만큼 그렸으면 옷을 입은 여인도 몸매를 투시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닌가’라고 반문하지만 그는 난감해했다.

“어떤 것이 미(美)인지 잘 모른다. 아름다움이 기술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지 않나? 아름답지 않으면 미술이 아닌가? 그런 측면에서 몸매나 형태에는 관심이 없다. 동작 상태나 움직임의 흔적에 따른 선의 흐름과 전체적인 분위기가 내 관심사다. 같은 사람이라도 때에 따라 달라지는데 어떻게 몸을 안다고 할 수 있겠나?”

여체의 움직임을 포착해 빠르게 그려낸다. 이때 중요한 것은 움직임이며, 움직일 때 드러나는 선의 흐름이다. 누드면 만사 오케이라고는 하지만 그도 선호하는 모델은 있다. 능숙하고 세련된 프로보다 수줍고 어설픈 일반인 모델이 좋다. 그들의 수줍은 몸짓이 예술혼에 기름을 붓는다.

“세련된 것보다 어설프고, 이상하고, 부족한 것을 좋아한다. 그런 상태에서 오히려 살아 꿈틀대는 체취를 느낀다. 프로 모델이 인위적이라면 일반인에게는 자연스러움이 묻어있다. 40년 동안 누드크로키를 그릴 수 있었던 것도 살아있는 모델이 뿜어내는 사람냄새가 있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정이 오고가는 그런 사람 냄새다.”

그도 살아있는 사람이다. 그것도 남자다. 벌거벗은 여인을 앞에 두고 뚫어져라 몸을 훑으며 그림을 그린다. 굳이 음양의 이치를 들이대지 않더라도 피가 끊을 때가 있을 것이다. 그 역시 애써 부인하지 않는다. “벌거벗은 여인과 단 둘이 앉아 있으면 떨릴 때가 있다. 하지만 그 떨림이 예술혼의 다른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교감, 감흥이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그림에 영혼이 더 실리지 않겠나?(웃음)”

평생을 누드크로키를 팠다고는 하지만 지루할 틈은 없었다. 평행 매너리즘은 모르고 살았다. 늘 새로웠고, 샘솟는 에너지는 한결 같았다. 여기에도 어디에도 걸림이 없고 머무르지 않는 그의 성향이 작용한다.

그는 재료나 형태, 기법, 색채 등의 제약을 불허한다. 때와 상황과 기분에 따라 그림의 상태도 달라진다. ‘자유분방함’, 그의 예술을 가르는 핵심 단어다.

“그림마다 다 다르다. 기법도, 화풍도, 색채도 같은 것이 없다. 한자리에 머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늘 다르고, 늘 새로운데 지루할 틈이 있겠나?”

누드크로키가 중심을 잡고 있지만 풍경화도 병행해 왔다. 꽃그림도 더러 그린다. 풍경화나 꽃그림은 일종의 일기다. 일부러 그리겠다고 작정하고 그리기보다 여행지나 일상의 풍경을 일기처럼 옮긴다. 이때도 크로키 기법은 적용된다. 빠른 시간에 단숨에 그려내는 것.

“누드도 그렇지만 풍경화는 현장에서 그리는 것을 선호한다. 현장의 햇살과 바람의 일렁임, 풀냄새를 빠르게 잡아낸다. 사진에는 그런 살아있는 느낌이 없다. 간혹 작업실에 와서 현장에서 스케치한 것을 대형캔버스에 옮겨 그리기도 하는데 현장에서의 느낌을 그대로 살려낼 수 있다. 원본 그림에 그런 감정들을 담아냈기 때문이다.”

격식을 초월하기는 풍경화도 매한가지다. 산이 초록이어야 하고, 땅은 흙색이어야 하는 고정관념은 애초부터 없다. 붉은 산을 그리기도 하고 노란 강을 그릴 수도 있다. 그저 마음이 이끄는 대로, 감흥이 움직이는 대로 그리면 그만이다.

“내 나이 70이 다 됐다. 공자께서는 70을 종심(從心)이라 해서 마음에 걸림이 없는 나이라고 했다. 나는 일찍부터 걸림 없이 살아왔지만 여전히 그림은 아직 잘 모르겠다. 누가 ‘너 뭐하고 있나’라고 물으면 ‘그리고 싶으면 그리고, 안 그리고 싶으면 안 그린다’고 말하고 싶다.”

그는 속도전을 즐긴다. 누드드로잉, 정확하게 누드크로키를 그리는데 빠르면 30초, 늦어도 20분이면 작품 한 점이 완성된다. 풍경화의 속도도 일반 작가들에 비하면 확연하게 빠르다. 빠르게 그리는 습관은 대학시절부터 발현됐다.

“어느 전시에서는 즉석에서 드로잉해서 전시 공간을 채운 적도 있다. 대학 때부터 빨리 그렸다. 빨리 그리면 아주 섬세할 수는 없지만 역동성을 살리는 데는 묘미가 크다.”

이준일은 젊은 시절부터 스케치 여행을 자주 다녔다. 오스트리아, 스위스, 스웨덴, 독일, 일본, 중국, 티벳, 구 소련, 동구권 등을 여행하면서 여행지에서 만나는 풍경이나 인물을 드로잉 해 왔다. 여행은 언어가 원활하지 못한 상황에서 낯선 곳에서 낯선 이들과 소통하는 매력에 끌려 열심히 다녔다.

특히 속도전을 즐기는 그의 작업 방식은 여행지에서 빛을 발했다. 그러다 인연이 되면 즉석 전시가 성사돼 여행지 전시도 더러 했다.

“일본 규슈(九州) 구마모토 현(熊本縣])에 있는 화산인 아소산(阿蘇山)에 가서 풍경을 보고 그림을 그렸는데 그 모습을 현지 사진 기자가 보고 신문에 실어주었다. 그 기자가 벚꽃이 질 무렵에 구마모토 전시를 주선해 주었는데, 주민들이 전시장을 많이 찾아 주었다. 독일에서도 그런 방식으로 3개월간 전시를 했다.”

국내에 돌아와서 여행지 풍경 스케치 그림전을 가지기는 것은 당연했다. 그는 조선일보 갤러리나 대구의 다수 갤러리 등에서 여행지에서 그린 풍경드로잉 작품전을 진행하며 이국땅의 생생한 느낌을 소통했다.

“누드와 풍경드로잉은 몸과 풍경이라는 대상만 다를 뿐 빠른 속도로 움직임이나 느낌을 잡아낸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풍경은 새로운 설레임을 안겨준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경계 없는 그림은 머무르지 않는 그의 삶으로부터 왔다. 이준일은 대학을 졸업하고 고등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하다 6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사직하고 유학길에 올랐다. 이후 대학 강의도 한 학교에 정착하지 않고 대구경북권 대학을 두루 다녔다.

그는 이러한 태도를 ‘변덕스러운 성향’ 탓으로 돌렸다. “어린 시절부터 좀 모자랐다. 옷도 앞뒤 뒤집어 입기 일쑤였고, 짝짝이 양말도 신고, 신발도 오른쪽과 왼쪽을 바꿔 신었다. 식사할 때도 오른손과 왼손을 모두 사용해 야단도 맞았다. 어릴 때부터 쓰임의 본성만 만족하고 격식은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타고난 것 같다.”

이준일은 그림과 함께 글쓰기도 꾸준하게 병행해왔다. 여기에도 그의 독특한 성향은 그대로 반영된다. 그는 메모 같은 글을 쓴다. 두 줄 세 줄로 간결하면서도 압축적으로 사고와 감성을 담아낸다. 17자로만 구성돼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라 불리는 일본의 전통시 ‘하이쿠’와 비슷하다. 눈치 챘겠지만 빠른 속도로 그려내는 누드크로키와 글이 꼭 닮아있다. 지난 2015년에는 그의 글과 누드크로키를 모아 화집을 내기도 했다.

“글도 누드처럼 빨리 쓴다. 순간순간 느낌을 짧은 단문에 담아낸다. 짧아서 오히려 더 풍부하고 살아있는 맛을 압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는 현재 함양에 작업실을 두고 생활하고 있다. 가야산과 팔공산, 청도 작업실을 거쳐 함양까지 왔다. 함양에서는 1층을 작업실로, 2층을 생활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자다 깨서 그림 생각이 나면 작업실로 내려가 그림을 그리고 낮에도 잠이 오면 잔다. 그에게 시골살이는 원시로의 회귀처럼 편하고 자연스럽다.

“시골에서는 형식을 따질 필요가 없다. 시골에서는 문명 이전처럼 원시적으로 살 수 있다. 내가 추구하는 그림도 그런 것이다. 자유로우면서도 걸림이 없는 그런 그림을 그리고 싶다.” 전시는 대구 중구 북성로 박물관이야기에서 4월 2일까지. 010-8784-4587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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