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와 실의 애매모호한 경계를 통찰하다
허와 실의 애매모호한 경계를 통찰하다
  • 대구신문
  • 승인 2017.05.13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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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이원경 ‘두개의 문’展

내달 16일까지 아트스페이스펄

양각·음각 등 활용 인물조각

보는 위치 따라 착시효과

실재·허구라고 믿는 것에 대한

물음과 인식의 전환 가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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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경 초대전이 아트스페이스펄에서 6월16일까지 열리고 있다.

어느 날 장자가 기이한 꿈을 꾼다. 꿈속에서 나비가 되어 어디에도 걸림이 없이 훨훨 날아다녔다. 불현 듯 깨어보니 꿈이었다. 깨어 생각하기를 ‘지금의 나는 정말 나인가, 아니면 나비가 꿈에서 내가 된 것인가?’라면서 ‘지금의 나는 과연 진정한 나인가? 아니면 나비가 나로 변한 것인가?’에 의문을 던졌다. 장자의 호접지몽(胡蝶之夢) 이야기다. 우리가 믿고 있는 현실이 과연 우리의 믿음처럼 견고한지를 되묻는 유명한 일화다.

조각가 이원경이 아트스페이스펄에서 구현한 작품 ‘두 개의 문’과 장자의 호접지몽이 묘하게 겹쳤다. 그녀는몇 가지의 장치를 통해 꿈과 현실, 삶과 죽음, 외물과 자아, 진상과 허상이 둘이 아닌 하나라는 것을 구현했다. 요지는 지평을 열어놓으면 번뇌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원경이 이 간단치 않은 철학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 번도 안정된 상태에 있지 않았다. 늘 불안했다. 내가 가는 길이 맞는지, 잘 가고 있는지 늘 갈등했다. 생각해보니 누구나 갈등 속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됐다. 그러면서 ‘혼돈 속에 있는 나’, 또는 ‘혼돈하고 있는 우리’에 대한 작업을 시작했다.”

전시작 ‘두 개의 문’은 그가 던져왔던 관념적 주제인 불안을 재료로 하고 있다. 작품의 대상은 ‘양복을 입은 익명의 중년 남성 4명’. 앞면은 정상인데 뒷 면이 텅 빈, 음각과 양각으로 제작된 세 명의 남성이 허공에 설치되어 있고, 한 명은 앞 벽면에 붙어있다. 남성의 앞과 뒤 벽면 그리고 바닥은 거울처럼 비치는 아크릴 미러로 마감했다. 이 아크릴 미러는 불안을 시각화하는 장치다.

“속을 비웠더니 양각보다 음각이 오히려 진짜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크릴 미러의 물렁물렁한 물성도 실제보다 대상이 더 왜곡되는 효과를 주었다. 앞쪽에서 보면 앞으로 가는 것 같지만 반대편에서 보면 뒤로 오는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여러 가지 시그널을 통해 착시현상을 경험하며 과연 이것이 착시일까 하는 질문을 가지게 된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출발선은 작가 자신이고, 작업의 동력은 ‘불안’이다. 그는 갈등 속에 있는 자신의 이야기로 시작해 보편 인간의 문제로 확대하고, 존재의 근원으로까지 훅 들어간다.

첫 출발선은 조각가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불안이었다. 8년 정도 작업을 하고 10년을 직장생활을 하며 작업을 손에서 놓았다가, 다시 작가로 살겠다고 선언하면서 시작된 불안이었다. 당시의 감정이 되살아나는 듯 양원경의 눈이 잠시 떨렸다.

“다양한 매체로 작업하는 작가들을 보면서 전통 조각만 하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해 불안해졌다. 그때 공간에 대한 의문도 함께 가졌다. 비워져 있다고 생각하는 공간이 어쩌면 채워져 있고, 채워져 있다고 여기는 조각이 비워진 것이 아닌가 하고…”

그녀의 의식이 향하는 대상은 ‘인간’. 조각상의 외형은 변해왔을지언정 일관되게 인간을 팠다. 초기의 조각상은 알몸이었다. 작가 자신의 이야기에 집중하기에 알몸이 제격이었다. 그러다 사회문제로 인식을 확장하면서 익명성의 장치로 양복을 입혔고, 이후 존재로 주제가 확장되면서 거울 효과 등도 도입했다.

“‘두 개의 문’을 통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그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만큼 하나의 눈이 가진 인간의 결핍을 보충하고 불완정성의 간극을 매워 보고 싶었다. 이를 통해 우리가 감각하는 ‘색’의 세계와 감각의 한계를 뛰어넘는 ‘공’이 둘이 아닌 하나임을 드러내 보이고 싶었다.” 6월 16일까지. 053-651-6958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이원경은 홍익대 미술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인사아트센터,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미술공간 현 등에서 개인전을 열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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