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들의 고장에 잠든 영웅호걸의 꿈
별들의 고장에 잠든 영웅호걸의 꿈
  • 윤주민
  • 승인 2017.06.20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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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충신 정몽주 추모하는 ‘임고서원’
이철순의 '역사·문화 숨결 따라' <4> 영천시
7년간 성역화사업…서원 본래면목 갖춰
노계 박인로 문학정신이 깃든 ‘도계서원’
학덕·충효사상 담은 ‘박노계집판목’ 보관
의병대장 정환직·정용기 기리는 ‘충효재’
구한말 日에 항거해 의병 일으킨 父子장군
임고서원의 여름
임고서원의 여름.
우리 땅 도처에는 수많은 정치가, 문인, 예술가들이 살다 간 흔적이 남아 있다.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다 간 영웅호걸들이 남긴 위대한 유산은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살아 숨 쉬는 도도한 역사의 바다를 이룬다. 그 역사의 현장에서 만나는 한 인물의 내밀한 세계는 참으로 신비롭고 경외스럽다.

경북 영천은 정몽주, 박인로, 최무선, 정환직 등 걸출한 역사적 인물을 배출한 유서 깊은 고장이다.

그와 함께 호국영령의 넋을 기리는 국립영천호국원과 쏟아질 듯 반짝이는 하늘의 별들을 가장 가깝게 볼 수 있는 별의 고장이기도 하다. 밤 하늘 별처럼 유독 반짝이는 영천의 역사 속 인물의 삶과 행적을 따라가 보자.

◇죽음으로 절개를 지킨 충신 정몽주를 기리는 ‘임고서원’

포은 정몽주는 고려의 마지막 충신이다. 나라가 바뀌어 새 시대가 열리는 개혁의 풍랑 속에서 목숨을 버릴지언정 꿋꿋이 지조를 지키겠다는 신념으로 위대한 업적을 남긴 고려의 문신이자, 유학자요, 뛰어난 외교가다.

포은 정몽주는 영천시 임고면 우항리 183번지에서 태어났다.

역사적으로 큰 인물은 탄생부터 비범한 면을 보인다. 포은 정몽주도 예외는 아니어서 특별히 꿈을 통해 그의 생애를 예언할 수 있다. 몽란(夢蘭), 몽룡(夢龍), 몽주(夢周)로 이름이 바뀐 것을 보면 쉽게 짐작이 간다.

어머니 영천 이씨 부인이 임신하였을 때 난초 화분을 안았다가 놀라 떨어뜨린 태몽을 꾸고 탄생해 이름을 몽란(夢蘭)이라 지었는데 특이하게 어깨에 검은 점 일곱 개가 마치 북두칠성 모양으로 나 있어 장차 큰 인물이 될 것을 예견했다.

또 한 번의 꿈은 9살 되던 해 어머니는 물레질을 하다 깜박 잠이 들었는데 검은 용이 뜰 가운데 있는 배나무에 기어올라 황금빛 비늘을 번쩍이며 배를 따 먹기에 유심히 쳐다보니 용 또한 머리를 쳐들고 빙그레 웃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생생한 꿈에 놀라 잠에서 깨어 뜰에 나가보니 몽란 또한 배나무에 올라 앉아 어머니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고 있었다.

그래서 붙여진 또 하나의 이름이 몽룡(夢龍)이다. 몽룡이란 이름으로 관례를 치르고 후에 몽주(夢周)로 고쳐지었다.

포은 정몽주는 고려 공민왕 때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문하시중(門下侍中)의 벼슬에 올라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여진족과 왜구 토벌에 참여했고, 사신으로 중국과 일본을 오가며 외교력을 발휘했다. 신하로서 나라에 충성하며 도리를 다했을 뿐만 아니라 효행이 뛰어나 모범을 보였고, ‘동방이학지조(東方理學之祖)’로 칭송 받으며 유학의 진흥에 힘써 수많은 시문과 서화를 남겼다. 고려 왕조의 절의를 지키려다 선죽교에서 순절하며 남긴 ‘단심가(丹心歌)’는 인구에 회자된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영천 임고서원은 포은 정몽주를 추모하기 위해 조선 명종 8년(1553)에 창건, 이듬해 준공하여 명종으로부터 사서오경과 위전(位田)을 하사받은 사액서원이다. 임란과 서원철폐령의 소용돌이를 지나면서 소실과 훼철을 겪었으나 7년에 걸친 성역화 사업으로 지금은 구서원, 신서원, 포은유물관, 충효관, 조옹대, 용연, 선죽교, 계현재, 야외무대, 정몽주단심로 등 명실상부한 서원의 본래면목을 갖추어 과거와 현재가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임고서원 포은유물관에는 소장전적과 정몽주 영정이 보물 제 1110호로 지정 되었고, 서원 입구에는 포은 선생의 덕망을 말해주듯 수령 500년 된 은행나무가 우람하게 서 있다.

또 임고서원을 중심으로 주변에는 포은 정몽주 유허비, 생가지, 부래산, 전망대, 도일지, 부모묘소 등 포은 정몽주의 향훈(香薰)을 느낄 수 있는 유적지가 두루 산재해 있어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효행과 충절, 호연지기를 배울 수 있다.

◇노계 박인로의 문학정신이 깃든 ‘도계서원’

영천 북안면 도천리에는 정철, 윤선도와 더불어 조선 시대 3대 시가인(詩歌人)으로 꼽히는 뛰어난 문인, 노계 박인로를 기리는 도계서원이 산자락에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다. 노계 박인로는 어려서부터 시재(詩才)가 뛰어나 13세 때 ‘대승음(戴勝吟)’이라는 한시 칠언절구를 지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문인으로 이름을 얻기 전에는 임진왜란 때 종군하여 많은 공을 세우고 무과에 등과하여 수문장, 선전관, 만호 등을 지낸 이력이 있다. 나라가 위기에 처한 현실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우국충정의 심정으로 장수가 된 게 아닐까.

귀애정여름
귀애정의 여름.
전장에서도 전쟁의 모습을 생생히 그린 ‘태평사’, ‘선상탄’ 등을 남기면서 문인의 기질을 발휘했다. 노계는 처음부터 용장(勇將)이 되리라 꿈꾸지 않았기에 전쟁이 끝난 뒤에는 고향에 내려와 은거했다.

나이 들면서 자연 속에서 독서와 수행으로 세상사에 초연한 선비로, 빛나는 시가를 짓는 가객(歌客)으로 활동하면서 유유자적 조용한 문인의 삶을 살았다. 유교적 강직함이 강한 경상도 풍토에서 풍류적인 멋을 담은 시가를 즐겨 지은 노계 박인로는 국문학의 지평을 넓힌 문인임에 틀림없다.

그의 학덕과 충효사상을 기리기 위해 유림들이 돈과 정성을 모아 세운 도계서원에는 문집 ‘박노계집판목’이 보관되어 있다. 인근에 자리한 노계시비에는 그가 남긴 유명한 ‘조홍시가(早紅?歌)가 새겨져 있어 관람객을 반긴다.

반중(盤中) 조홍(早紅)감이 고와도 보이나니

유자 아니라도 품은즉도 하다마는

품어가 반길 이 없을새 글로 설워하나이다

◇구한말 의병대장 정환직·정용기 장군을 기리는 ‘충효재’

영천에는 우리가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할 구국 영웅이 있다.

바로 구한말 의병 활동을 하다 순직한 동엄 정환직·단오 정용기 양세(兩世) 장군이다. 정환직·정용기 장군은 부자지간(父子之間)으로 1905년 일제에 의해 강제로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고종황제의 ‘짐망(朕望)’이라는 밀명을 받고 일본 제국주의 침탈에 항거하여 나라를 구하고자 의병을 일으킨 인물이다.

최초로 서울 진공작전을 위한 북상계획을 실현했던 영천을 중심으로 경북 남동부 일대에서 위세를 떨친 산남의진(山南義陣) 대장으로 활동하며 많은 전공을 올리고 1907년과 1908년 연이어 부자(父子)는 순국했다.

두 장군의 탄생지인 영천 자양면 충효리에는 정환직·정용기 양세장군의 묘소가 있고 충효재를 지어 장군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아들을 먼저 잃고 끝까지 항거하며 싸우던 정환직 장군이 적의 총에 장렬히 숨지던 그날, 하늘도 슬퍼해 천둥 번개가 내려치며 폭우가 쏟아졌다고 한다. 순국 전날 밤 감옥에서 남긴 절명시에는 절절한 나라사랑이 담겨 있다.

몸은 죽을망정 마음마저 변할소냐

의(義)는 무겁고 죽음은 오히려 가볍도다

나머지 뒷일을 누구에게 부탁할까

생각하고 생각하니 새벽이 되었구나

<영천 명소 구석구석 둘러보기>

△별들과의 대화 보현산천문대

보현산천문과학관_보조관측실(2층)
영천의 자랑거리 가운데 보현산 정상에 위치한 우리나라 3대 천문관측소 중 하나인 보현산천문대를 빼 놓을 수 없다. 천체의 움직임과 변화를 관측하며 우주의 생성과 진화를 연구하는 곳이다. 보현산 능선의 장쾌한 전망과 함께 밤하늘을 관측할 수 있어 청소년 견학지로 그만이다. 이곳에 설치된 국내 최대 1.8m 광학천체 망원경은 만원 권 뒷면 도안으로 채택 될 만큼 유명하다. 4월~10월 네 번째 토요일에는 주간 공개행사를 가지고, 전시관은 일반 관람도 가능하다. 보현산천문대와 함께 우주여행을 떠나볼 수 있는 곳으로 화북면 정각리에 위치한 보현산천문과학관이 있다. 국내 최초 5D돔영상관과 다양한 종류의 고성능 천체망원경을 이용한 천체관측, 최신 시설의 시청각실에서 멀티미디어 천문교육 등 다양한 체험학습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산림휴양과 승마를 즐기는 운주산승마자연휴양림

승마장 외승로
영천은 예로부터 ‘영천대말(大馬)’이라 할 정도로 말(馬)과 관련한 전통과 명성이 있다. 영천시 임고면 황강리 운주산승마자연휴양림은 천혜의 자연 환경에서 국내 최초로 산림휴양과 승마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곳이다. 73ha 면적에 리기다 소나무 숲에 운주산장, 다목적구장, 물놀이장, 야영장을 고루 갖춘 휴양림지구와 실·내외 승마장, 산악승마로, 외승로, 마사 등이 있는 승마체험지구로 나뉘어져 휴양과 스포츠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레저 공간이다. 승마의 대중화를 표방하며 일일 승마체험, 마차 운행, 마사 체험 등 다양한 승마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레저스포츠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오백나한 도량 거조사

영천에는 대한불교조계종의 10교구본사 은해사를 비롯해 전통사찰이 있다. 그 가운데 청통면 치일리에 위치한 거조사는 오백나한 도량으로 유명하다. 원효대사가 거조암을 창건한 뒤 진평왕 13년 혜림법사와 법화화상이 영산전을 건립하여 오백나한을 모시게 되면서 영험한 나한 기도도량으로 찾는 이의 발길이 잦다. 영산전 안에 있는 526분의 나한상이 극락도(極樂圖)에 의해 배열이 되어 있는데 각각의 모습이 달라 무척 흥미를 끈다. 전설에 의하면 법화스님이 신통력을 발휘하여 나한상을 모실 때 각 불상들이 스스로 제자리를 잡아 앉았다고 한다. 특히 영산전은 국보 제 14호로 지정되어 우리나라 중요한 목조건물로 평가 받고 있다.

수려한 산세와 맑은 계곡, 풍부한 역사적 인물을 고루 갖춘 영천은 경상북도의 사통팔달 교통 요충지에 위치해 있어 접근이 용이하다. 산과 강이 어우러진 자연을 걸으며 포은 정몽주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유림의 세계를 직접 체험하고, 노계 박인로의 아름다운 시가(詩歌)에 젖어보면 보람 있는 여행의 시간을 만끽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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