켜켜이 쌓아올린 불안의 흔적
켜켜이 쌓아올린 불안의 흔적
  • 황인옥
  • 승인 2017.08.14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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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까지 대구예술발전소 최승준展
낯선 화면 구성·극단적인 색조로
사회적 차원의 단절·외로움 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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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준 전시가 대구예술발전소 1층 전시실에서 18일까지 열린다.

서양화가 최승준(33)이 ‘불안’을 작품에서 지배적인 정서로 채택한 시기는 2016년부터다. 대표작이 ‘사물들’ 연작과 ‘유랑하는 곡예단’ 연작이다. ‘불안’이라는 정서는 유년시절 아버지로부터 시작됐다. 그의 아버지는 가부장적이었다. 아버지의 기분에 따라 집안 분위기가 좌지우지됐고, 어린 최승준은 그런 아버지의 눈치를 살피며 살았다. 엄습하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방안의 사물을 재배치하기 시작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불안과 사물이 서로 상관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그것이 작품으로까지 연결됐다.”

최승준 초대전이 대구예술발전소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에는 ‘사물들’ 연작과 ‘유랑하는 곡예단’ 연작이 걸렸다. 두 연작 모두 ‘불안’을 모태로 한다.

‘사물들’ 연작은 화면 구성 방식에서 정상범주를 넘어선다. 정면이나 측면 등 방향은 달라도 대개 대상의 전체를 포착하는 것이 일반적데, 그는 중심을 비껴난다. 주변의 한 귀퉁이를 잘라서 화폭의 중심에 놓는 식이다. 이는 다양한 감정들 중에서 ‘불안’을 축출하는 그만의 방식으로, 단순한 시각적 ‘현상’보다 ‘내면’의 압축된 감정을 우선시한 결과다.

“내가 잘라내는 단면은 대개 내 마음에 드는 부분들이다. 내가 살아온 사회적·개인적 삶을 인과관계에 따른 부분이라고 해도 된다. 단면을 잘라내 불안한데 이마저도 경계부분은 퍼지듯 선명하지 않게 처리해 불안함을 가중한다. 그 속에 ‘단절’이 있다.”

권위적인 아버지로부터 시작된 ‘개인적인 불안’이 성인이 되면서 ‘사회적 차원’의 불안으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5년여를 타지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당시 이방인이 느꼈던 단절이 어린시절 경험했던 불안을 수면위로 다시 떠올리는 계기가 됐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다시금 상기된 ‘불안’은 생각해보면 이 시대 청년들의 공통의 문제였다. 생각이 개인에서 사회로 확장되면서 작품세계도 확장이 시작됐다.

“청년들은 학업이나 직업 때문에 특정 환경에 적응하기도 전에 또 다른 삶의 형태를 강요받는다. ‘단절’로 인한 ‘외로움’은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는 고뇌다.”

대표작 ‘유랑하는 곡예단‘ 연작도 ‘사물들 연작’의 연장선에 있다. 작품은 곡예공연이 막 시작되기 전의 무대를 비현실적인 색채와 구성으로 표현하고 있다. ‘단절’된 화면 구성은 여전하지만 무엇보다 곡예단 하면 기예를 뽐내는 곡예사와 시끌벅적한 관람석이 백미인데 그들이 보이지 않는다. 곡예를 하기에 최상의 무대가 준비됐지만 인간이 없는 것이다. 텅 빈 무대는 적막과 고독의 무덤처럼 무겁고 허무하게 다가온다.

“곡예는 화려함 이면에 불안과 고독이 공존한다. 이 또한 일반화로 확장할 수 있다. 가변적이고 손에 잡히지 않는 삶을 사는 동시대인의 불안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색채는 그가 세상을 해석하는 또 하나의 기제다. ‘사물들’ 연작은 채도를 확연하게 떨어트려 회색조로 처리한 반면 ‘유랑하는 곡예단’은 비현실적인 붉은 계열의 색조가 두드러진다. 전자는 불분명한 세상을 경험했던 내적 자아의 표상이며, 후자는 잡히지 않는 세계에 대한 외로움을 대변한다.

최승준은 예술분야 중에서도 가장 역사가 깊은 전통회화를 추구한다. 회화의 유구한 역사는 새로운 것을 제시해야 하는 작가에게는 뛰어넘어야 할 과제다. 오랜 시간동안 너무나 많은 이야기가 회화를 통해 표출되었기에 새롭기가 쉽지 않다. 젊은 작가 최승준이 회화를 바라보는 시대정신은 이 지점과 맞닿아 있다.

“회화는 특유의 깊이감이 있다. 시각적으로 새로운 것을 제시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고, 그 과정이 지난하기도 하지만 거기에서 얻는 성취감도 크다.”

서사적인 그림보다 함축적인 그림을 하고 싶었다. 대상의 일부를 포착해 강렬하게 표현하는 방식도 그런 맥락의 연장선에 있다. 소재가 ‘사물’에서 ‘인간’으로 확장했지만 두 경우 모두 ‘인간’을 주제로 삼는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불안’, ‘단절’은 우리시대 인간의 삶의 한 단면이며, 그가 화가로써 남기고 싶은 우리시대의 기록적 요소다. 이런 면에서 그의 그림은 그림역사서다. 전시는 18일까지 대구예술발전소 1층 전시실에서. 053-430-1225 황인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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