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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대구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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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전송 2017-09-13, 20:5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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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복 영진전문대
명예교수 지방자치
연구소장
사람은 사회적·정치적인 존재다. 공존하면서도 자기유익을 끊임없이 추구한다. 인간사회의 조화를 깨뜨리는 탐욕은 지나친 욕구에서 비롯된다. 욕구는 생산적인 측면도 있지만 사회성을 저버린 개인욕구의 총화는 공익을 저해한다.

이 같은 역기능을 제어하기 위해 많은 대안들을 내 놓고 있지만 완벽한 만족을 찾기 어렵다. 누구든 인간행위의 근저에는 자기성취를 위한 크고 작은 욕구의 찌꺼기가 항상 잠재해 있다. 상황의 좋고 나쁨을 떠나 사회의 각 체제는 구성원의 만족을 최대화 하기위해 최선의 자연적· 물리적 환경 조성에 힘쓴다. 보다 나은 체제를 유지하는 한편 개인욕구 충족을 뒷받침하기 위함이다. 긍정적인 사회체제의 변화는 인간행태에 달려 있다.

체제유지의 난제는 어떤 방법으로 구성원들에게 공동선을 위한 보편적인 가치를 심어 주느냐 하는 것이다. 성선설이나 성악설을 따질 필요가 없이 인간은 원천적으로 자기중심적이므로 심성에 변화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쉽지 않는 일이다. 경쟁사회에서 긴장하고 있는 인간의 본성을 위무하여 새로운 가치의 길로 인도하는 종교나 철학자나 사상가의 조언도 큰 도움을 주지 못할 때가 있다. 인간의 이기심을 극복하는 한계 때문이다. 어떻든 인간이 존재하는 한 최대다수가 지향하는 공동선을 얻기 위한 최대공약수를 찾으려는 노력을 게을리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숙명이다. 지각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 삶을 반추하면서 한번 뿐인 생에서 무언가를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동물의 욕구는 오로지 종족보전에 있다. 사람도 동물과에 속하지만 구태여 그것과 다른 점을 찾는다면 이성과 감성을 갖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인간의 탐욕은 동물성의 뿌리에 이성을 가미한데서 출발한다. 이성의 잘못된 구사는 공동체를 흔드는 악의 존재로 그 끝은 측정하기 어렵다. 동물이 새끼를 정성껏 키우고 돌보는 것은 감성의 작동이라고 이해 할 수 있다. 동물에게도 이성이 있는지 과학적으로 확인 된 바 듣지 못했지만 인간만이 가지는 이성의 의미에는 합리성이 중첩되어 있다. 이성과 감성은 상반되는 개념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이 양자는 끊임없는 조화의 순환이다. 이성이 합리성을 바탕으로 인간사회를 유지해 나가는 기본 틀을 만들어 간다면 감성은 이성이 특정한 영역의 범위를 유월할 때 제어하고 때로는 윤활유의 역할도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말하자면 감성의 작동이 이성의 활동범위를 획정 지우게 되는 것이다. 이성과 감성의 비율조정은 극히 어려운 일이다. 상황에 따라 차이가 있고 사람에 따라 다르다. 분명한 것은 이성과 감성의 조화가 크게 엇박자를 낼 때 인간의 탐욕이 작동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사회성에는 정치성이 녹아 있다. 눈 여겨 보면 대부분의 인간행태는 사회성보다 정치성이 더 짙다. 공동사회에서 야기되는 갈등의 근본적 원인은 과도한 욕구의 정치성이 이성과 감성을 도외시 하는데서 출발한다.

따라서 바람직한 공존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개인적 욕구가 타방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합리적 장치가 요구되는 것이다. 사회계약설에 기초한 여러 규범들이 이에 속한다. 규범은 인간의 욕구이탈을 강제하는 수단이다. 탐욕과 갈등은 어느 순간에도 그 작동을 멈추지 않는다. 아마도 인류의 존재와 같이 할 것이다. 어떤 경우든 문제 해결의 해답은 사회성과 감성의 비율을 조화 하는데서 찾아야 한다.

흔히 인간심리의 변화를 야누스 론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이를 능가할 수 있는 노력은 결국 인간들의 몫이다. 인간을 변화시키는 귀중한 덕목으로 종교가 있지만 종교의 가치에도 탐욕이 묻어 있다. 그렇지만 종교가 인간 삶에 귀중한 가치를 부여하는 최선의 체제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나는 공동체 구성원이 가져야 할 덕목으로 교육을 들고 싶다. 인간의 속마음에서 스스로 자기제어를 할 수 있는 학습적 훈련이 있어야 함을 주장한다. 보조수단으로 종교도 있고 자기단련의 수양방법도 있을 것이다.

모든 행위의 주체는 자신이다. 누구에게나 마음속에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자기 통제력이 있다. 그것을 사회적 공명으로 끄집어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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