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수사’ 규정에 분노
盧 거론 ‘역린’ 가능성
수사 영향엔 경계 분위기
‘진보 결집 의도’ 시각도
문재인 대통령이 검찰의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수사의혹 수사에 대한 이명박(MB) 전 대통령의 성명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문 대통령이 자신과 ‘운명적 관계’인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정치보복’까지 거론한 데 대해 ‘선을 넘었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박수현 대변인을 통해 “이 전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직접 거론하며 정치보복 운운한 데 대해 분노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직설적으로 생각을 밝혔다.
문 대통령이 검찰 수사와 맞물려있는 국내 정치적 문제에 대해 직접 의견을 표명한 것은 취임 이후 처음이다.
특히 불과 200자 가량의 두 문장 짜리 입장문이지만, 이 전 대통령을 겨냥한 초고강도의 비판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검찰 수사에 항변하는 차원을 넘어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끄집어내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한 대목을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는 문 대통령의 강한 뜻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의 이런 반응에는 검찰 수사를 친구인 노 전 대통령의 죽음과 연계한 데 대한 인간적인 분노와 불쾌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물론 ‘친노무현(친노)’계를 비롯한 진보 진영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비극적 선택의 배경에 이명박 정부의 ‘무리한’ 검찰수사가 있었다는 인식이 강하다. 이 때문에 이 전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의 이름을 직접 거명한 것은 문 대통령으로서는 더는 참기 힘든 모욕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최근 이명박 정부 청와대에서 근무한 김희중 전 대통령 1부속실장이 검찰 조사에서 국정원에서 받은 자금 중 1억 원이 이 전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됐다고 증언하는 등 이 전 대통령의 비위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9년 전 결백을 주장하며 극단적 선택을 한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거론하며 검찰 수사를 ‘정치수사’로 몰아가려 한 이 전 대통령의 발언이 ‘역린’을 건드린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의 이날 입장표명은 현재 진행 중인 검찰 수사를 ‘정치수사’인 것처럼 규정한 이 전 대통령의 발언을 법 질서 수호 차원에서 용납할 수 없다는 의지를 내보이려는 차원으로도 풀이된다.
현 정부가 나라의 근본을 바로 세우겠다는 뜻으로 진행 중인 적폐청산을 ‘정치보복’과 동일시한 것은 사법질서의 근간을 근본적으로 훼손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노 전 대통령이 이명박 정권에서 검찰수사를 받을 때 비교적 ‘인내’했던 것에 대한 후회도 이번 입장 발표에 영향을 미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자신의 책 ‘운명’에 “대통령과 우리는 그때 엄청나게 인내하면서 대응했다”며 “그 일을 겪고 보니 적절한 대응이었는지 후회가 많이 남는다”고 회고했다.
이어 “너무 조심스럽게만 대응했던 게 아닌가”라며 “대통령이 정말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속 시원하게 대변해 드리지 못한 게 아닌가”라고 적었다.
청와대로서는 다만 문 대통령의 언급이 마치 검찰 수사에 영향을 주거나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하는 것은 경계하려는 분위기가 읽힌다.
전·현 정권이 직접 충돌하는 모양새도 국민통합이나 정치적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상황인식도 감지되고 있다.
한편에서는 이날 입장 발표가 이 전 대통령의 주장에 분노하는 지지층의 여론을 다독이는 효과를 기대했을 수 있다는 해석도 내놓는다.
정치적으로는 이 전 대통령 측과 확실하게 각을 세움으로써 진보적 성향의 지지층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이들을 결집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다만,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그런 정치적인 계산은 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