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주展, 안국동 갤러리 담
윤종주展, 안국동 갤러리 담
  • 황인옥
  • 승인 2018.01.19 19:3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캔버스에 재료 붓고 흔들흔들…우연이 빚은 형상
깊이감 있는 색감·형태 특징
“지나쳤다가도 다시 보게 될 것”
20180114_120922
윤종주

잔잔한 호수 위 백조의 우아한 자태에 찬사가 절로 쏟아진다. 얼마나 매혹적이었으면 ‘백조의 우아함’을 발레로 표현했을까? 사실 따지고 보면 백조는 우아하게 바라볼 수도, 비속하게 느낄 수도 있다. 물 위의 백조는 우아, 물 속 치열한 발 놀림은 비속인 까닭이다. 관점이 어디냐가 갈림길이다. 이렇게 보면 우아함과 비속함, 고요함과 분주함은 서로 밀쳐내기보다 짝을 이룰 때 온전한 것은 아닐까?

서양화가 윤종주의 작품에서 백조를 보았다면 비약일까? 드라마틱한 재료의 물성과, 필연과 우연의 상호작용이 맞물리는 작업방식과 고요한 내면을 수렴한 시각적 형상이 묘하게 백조의 우아하고도 비속한 상태와 겹쳐졌다.

눈길을 먼저 잡아 끄는 것은 형상이다. 떨어트린 물방울이 미세한 바람과 온도에 밀려 확산된 듯한 형상이 평면 위를 지배한다. 뉘앙스와 성격 정도만 남기고 색채는 최대한 약화시켰다. 마치 현자의 미소 같기도 하고, 성인의 엄중함처럼 보이기도 한다. 내적 침잠 또는 사색이 개입했기 때문이다.

형상 아래의 여백은 형상을 비추는 거울이다. 정확히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표현이 맞겠다. 형상이 연하면 연한 여백으로 사색의 깊이를 더하고, 형상이 진하면 여백도 동일한 색감으로 짝을 이루며 감정 상태를 조절한다.

그녀가 “무심코 지나치다가 순간 얼굴을 돌려 다시 보게 되는 그런 여운이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며 작품의 사색적 요소를 언급했다.

재료는 파라핀 계열의 화합물인 미디움이다. 초기에는 원유를 정제할 때 생기는 파라핀에 물감을 섞어 사용했다. 파라핀은 희고 냄새가 없는 반투명 고체로 양초, 연고, 화장품 등을 만드는데 사용되는 재료다. 온도나 습도에 민감해 작품 훼손 가능성이 높아 최근에 파라핀 대신 보다 안전한 미디움으로 변화했다.

“파라핀이나 미디움은 반투명한 미묘함과 따뜻함, 두께감이 주는 입체감에 매료돼 사용했다.”

작업과정에서 우연성이 필영성을 앞선다. 우연적인 요소가 강한 파라핀의 속성 때문이다. 작가의 의지에 앞서 우연성이 툭 툭 튀어오르는 것. 우연성은 끓인 파라핀을, 천을 씌운 패널 위에 붓는 과정에서 드러난다. 끓인 파라핀에 기포가 생겨나는 것. 작가는 우연성에서 유기체의 속성을 보고, 이것이야말로 ‘시간을 머고 있다’라며 유기체적 작업에 몰입해갔다.

윤종주작-cherish the time-space
윤종주 작 ‘cherish the time-space’.

붓은 배제되고 행위만으로 작업이 진행된다. 바탕색을 바른 캔버스를 뉘어놓고, 미디움을 섞은 물감을 떨어뜨리고, 캔버스를 아래위로 기울이면서 형상을 완성해 간다. 이 모든 과정에 우연성이 개입한다. 재료가 주는 우연성에 작업 행위로부터 오는 우연성이 더해지는 것.

하나의 형상이 마르면 그 위에 다시 물감을 떨어뜨리고, 기울이는 작업을 반복하는데, 이 경우 겹쳐진 형태와 색이 공간감을 드러내고, 깊이감은 도드라진다.

“우연성을 내포한 재료와 작가의 의도와 의지가 만들어내는 작업 방식은 행위와 환경에서 오는 우연성을 필연적으로 가지고 갈 수 밖에 없다. 이런 현상에서 유기체적인 느낌을 받는다. 그것은 내 작업을 즐기는 포인트다.”

형상 없는 색 추상이 먼저였다. 물방울 느낌의 형상 작업은 최근 변화된 작업이다. 사실 물방울을 가두지 않고 캔버스 바깥으로 끝까지 밀어내면 이전 작업인 색 추상이 된다. 변화됐다고는 하지만 작업의 기본은 연결되고 있는 것.

그녀가 ‘유기체’와 ‘개체’와 ‘상처’와 ‘배려’ 등의 단어들을 퍼즐의 조각처럼 뱉어냈다. 속내는 유기적으로 맞물려 있는 개체가 서로에게 스며드는 과정 속에서 상처받고, 받아들이고, 소화하고, 그럼으로써 진화된 개체성으로 재생산되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유기체 두 개를 겹치면 서로 기대는 것 같고, 떨어트려 놓으면 배려하는 것 같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더욱 견고한 자신의 색과 형태를 발현해 내려 한다. 최근에 하나의 형상에 여러 층을 겹치는 작업은 좀 더 온전하고 강한 존재로 세상과 진정한 소통을 원하는 열망의 표현일지 모른다.”

전시는 31일까지 서울 종로구 안국동 갤러리 담에서. 02-738-2745.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