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삭한 사과에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아삭한 사과에 또 다른 의미가 있다?
  • 황인옥
  • 승인 2018.02.19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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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범전 27일까지 리안갤러리
본질에 내재된 양가성 주목
선악과로 정신적 가치 담아
김명범_Untitled_2017
김명범 작 무제. 리안갤러리 제공

하나의 산맥이 있다고 치자. 이 산맥은 수없이 이어진 작은 산들의 총합이다. 이때 독립된 각각의 산은 오르막과 내리막으로 구성된다. 이렇게보면 산맥은 수많은 오르막과 내리막의 상호연결이다.

그렇다면 헤겔의 변증법을 산맥에 대입해보자. 하나의 오르막은 정(正), 내리막은 반(反), 정과 반을 모두 정복한 상태는 합(合)에 해당된다. 헤겔은 세상 모든 존재의 유동 발전 과정으로 정과 반, 그리고 합의 3단계로 제시하며 존재 내에 내포하는 모순, 대립이 상호작용해 보다 높은 합을 이뤄낸다고 주장했다. 독립적이면서 상호 연결된 산맥과 맥락이 다르지 않다.

‘양가성(동일 대상에 대한 상반된 태도가 동시에 존재하는 성질 )’은 작가 김명범의 설치작업의 이론적 토대다. 그는 헤겔의 정과 반, 즉 모순상태를 그대로 따르면서 사물의 본질 탐구로 확장한다.

리안갤러리 성신영 전시감독은 “이번 전시는 본질에 내재하는 양가성에 주목하고, 진정한 본질의 의미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자 기획했다”고 했다.

양가성을 오롯이 녹여낸 작품은 ‘Invisible Island’. 이 작품은 시각장애인용 노란색 보도블록 위에 작가가 미국의 길거리에서 주운 동전이 놓여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노란 보도블록은 시각장애인에게는 필수불가결하지만 비장애인에게는 불필요한 성질을 가진다. 동전 또한 돈이라는 가치측면에서는 누구나 욕망하지만 길거리에 나뒹구는 1달러는 무가치에 가깝다. 하나의 존재 안에서 가치와 무가치라는 양가성이 상호충돌하고 있는 것.

양가성의 상호침투는 존재의 ‘본질’을 드러내기 위한 일종의 매염제다. 진정한 본질에 접근하는 방식으로 헤겔의 변증법적 과정을 차용한 것. 본질을 일의적(一義的)이 아닌 양가적인 다의성(多義性)으로 인식하며 상반되는 대립적인 본성의 사변적 계기로 통일, 즉 합일을 이루며 진정한 본질을 드러낸다. 생명의 본질을 생(生)과 사(死)의 공존으로 보는 태도가 대표적이다.

사과에 열쇠가 꽃혀 있는 작품 ‘무제’는 사과의 본성을 상징화했다. 사과를 물질적이면서도 동시에 정신적인 본질과 연결 짓는 것. 달콤하고 아삭한 물질로서의 본질에 고대 그리스·로마의 신화나 성경에서 규정한 선과 악이라는 정신적 가치로서의 본질로 포섭하는 것.

성 전시감독은 “이 작품은 사과의 본질을 물질을 넘어서 사물을 바라보는 열쇠를 가진 인간의 인식론적 자세에 의해 부여된 가치까지 본질로 포함할 수 있는지에 대한 사유를 제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본질 탐구는 그의 과제이자 관람객에게 부가한 과제이기도 하다. 그는 여기에 하나를 더한다. 새로운 시각의 제시다. 그는 풍선과 연필, 테이프, 차단봉 등과 같은 오브제를 통해 본질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해석이 존재함을 일깨운다.

이 점에서 그의 작품은 본질이야말로 관람객 스스로 그동안 본질이라고 생각했던 것에서 모순을 발견해 진정한 본질에 다가갈 수 있도록 이끄는 사변적 여정이다. 전시는 27일까지 리안갤러리. 053-424-2203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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