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의 불합리 꿰뚫고 미래 방향 제시하는 게 문인들이 해야 할 일”
“현실의 불합리 꿰뚫고 미래 방향 제시하는 게 문인들이 해야 할 일”
  • 대구신문
  • 승인 2018.03.13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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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석 대구문학관 초대 관장

문학관은 ‘선배 문인들의 집’

시민과 소통 가교 역할 할 것

글쓰는 형식 보다 내용이 중요

시인 꿈 꿨지만 전공은 사회학

‘근대문학 태동지 대구’ 계승

市·문화재단 적극적 지원을

환경 등 사회문제 객관적 표현

고희 됐어도 첨단성 유지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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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석 대구문학관 관장은 “대구문학관이 선배 문인들과 시민들이 소통할 수 있는 장소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대구에 살면서 늘 빚진 마음으로 살았다. 대구의 일이기 때문에 우리가 기억해야 한다.”

이하석(69) 시인이 지난해 대구 10월 항쟁과 죽음을 말한 시집 ‘천둥의 뿌리’(한티재)를 발간했을 때 한 말이다. 이 말 속에 시인의 철학이 오롯이 녹아있다면 비약일까? 그가 한 마디를 보탰다. “문학은 현실을 언어로 드러내는 장르다. 나는 평생 현실에 발을 딛고 시를 썼다.”


최근 이하석 시인이 대구문학관 초대 관장으로 선임됐다. 그의 선임 소식에 대구문학계는 “될 인물이 됐다”는 긍정 일색의 반응을 보냈다. 문화기관장 임명에 호불호가 갈리는 현상과 대조적이었다. 시류에 편승해 양심 없이 살려하지 않았던 그의 여정에 대한 문학인들의 인정이라고 이해했다. 그가 맥락이 비슷한 말을 했다 “문학은 그 시대의 가장 첨단이다. 불합리한 사회현상을 미세하게 들여다보고 그것과 맞서는 장르다.”

대구는 근대문학의 태동과 발전에 선두적인 역할을 했다. 민족시인 이상화, 사실주의 소설의 대가 현진건, 감각 시의 지평을 연 이장희 등 한국 문학사를 대표하는 걸출한 문인을 배출한 근대문학의 태동지다. 6.25 전쟁을 전후해서는 전란을 피해 전국의 내로라하는 문인들도 예외 없이 대구로 모여들었다. 신라와 가야, 조선시대로까지 거스르면 대구 문학의 역사는 유구하다. 현시대에도 걸출한 선배들의 계보를 잇는 시인들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대구문학관은 그 역사적 지류의 중심에 있다. 대구문학관에는 기라성 같은 문인을 배출한 대구문학의 얼과 향기가 압축적으로 녹아있다. 대구문학관 초대 관장의 어깨가 무거울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그도 부담감을 인정했다. 그러나 분명한 방향성은 가지고 소신 있게 운영하겠다고 했다. “일주일에 이틀 출근하는 비상근 명예직이다. 한계는 분명히 있다. 그러나 대구문학인들 간의 소통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대구문학관은 대대로 내려온 대구 얼의 탯줄이자 대구문인들의 정신의 본산이다. 대구가 한국문학의 황금 광맥임을 증명하는 공간이다. 이하석은 대구문학관을 한마디로 “죽은 문인들의 집”이라고 했다. “문학관에는 죽은 시인만 들어올 수 있다. 그들의 작품에 살아있는 우리가 새 숨을 불어넣어야 한다. 그런 후에 현세의 문인은 물론이고 시민들과 소통하도록 가교 역할을 해야한다. 향후 대구문학관의 방향성은 여기에 맞춰진다.”

대구문학관은 대구문화재단 산하기관이다. 대구시가 재정을, 대구문화재단이 운영적인 지원을 한다. 이러한 시스템 아래서 중요한 것은 세 기관의 철학 공유와 원활한 소통이다. 그래야 대구문학을 제대로 정립·계승할 수 있다. “대구문학관은 특정기관 특정단체 중심으로 흐르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자체·자발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대구시와 대구문화재단의 보다 확실한 지원을 희망하고 있다.”

이하석은 대구문화예술 기획 프로그램인 ‘대구문화와 함께하는 저녁의 시인들’을 2년여 동안 20회 진행했다. 이 프로그램은 대구·경북지역에서 활동하는 시인들이 직접 자신의 시를 읽고 문학 이야기를 들려주는 토크쇼로 참여 인원을 20여 명으로 제한해 밀도감을 높였다. 행사 결과가 곧 책으로도 출간될 예정이며, 대구문학의 현재를 조감할 자료로 활용될 예정이다.

이하석이 예술 감독을 맡았던 이 프로그램은 대구문학계 전반에 자극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하석은 ‘저녁의 시인들’의 형식과 내용을 대구문학관에도 도입한다는 방침이다. “이상화, 이육사, 김춘수 등 70년대 뛰어난 시인들이 대구에서 활동했다. ‘저녁의 시인들’에는 그 아래 세대들이 출연해 그들과 선배 세대의 문학을 논했다. 소규모로 진행해 밀도가 아주 높았고 호응도 높았다. 대구문학관은 앞으로 보여주기식 행사보다 밀도 있는 결과를 만들기 위한 내실 있는 기획을 해 나갈 것이다.”

이하석 시인은 대구에서는 원로다. 지금까지 ‘투명한 속’을 비롯해 10권의 시집과 4권의 시선집, 산문집 등을 출간했다. 시와의 인연은 일찍 찾아왔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 교사의 권유로 대구시 초등학생 대상 백일장에 학교 대표로 나가 덜컥 상을 타면서 시인의 꿈을 키웠다. 중학교에 진학하자 읽기와 쓰기를 본격적으로 병행했고, 고등학교 2학년 때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잡지 ‘학원’에 시를 발표하기도 했다.

“초등학교 때 담임교사가 백일장에 나가 보라고 하시면서 직유법 등의 시 짓는 이론을 일주일 동안 집중 가르치셨다. 첫 출전에 상을 타게 되니 ‘글을 써도 되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때 이후 시인 외의 다른 꿈을 꾼 적은 없었다.”

등단은 대학 2학년 때 했다. 일찍이 시인을 목표로 했지만 전공은 사회학을 선택했다. 글 쓰는 형식보다 어떤 글을 쓸 것인지에 대한 내용적인 측면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한 결정이었다. 군 제대 후 매일신문에 입사를 결정했다. 정확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역사와 사회발전을 이끄는 것이 기자의 역할이라면 시 쓰기의 연장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있었다. 그는 영남일보와 매일신문 기자를 거쳐 영남일보 논설실장을 역임했다. “기자와 시인을 병행했다. 자칫 충돌할 여지도 없지 않지만 내 경우는 상승작용을 했다.”

첫 시집 ‘투명한 속(80)’은 기자 등단 후 10년 만에 나왔다. 철, 아스팔트, 알루미늄, 치약 튜브, 타이어 조각 등의 산업쓰레기를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그의 1집은 시각이 달랐다. 차갑고 강인한 무생명의 금속성 이미지의 소재와 주관적 감정을 배제한 극사실주의적 묘사법도 그랬다. 당시 비평가들은 ‘광물성의 시학’, ‘도시시’, ‘하이퍼 리얼리즘’, ‘주관이 거세된 객관 묘사’ 등으로 그의 시를 평가했다.

“일찍부터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당시 환경문제가 사회문제가 될 것이라는 예견을 했다. 환경에 대한 문제제기를 드라이하게 시로 표현해 보려 했다.”

1집에 실린 시들은 시어로 쓴 풍경화 같았다. 사실화를 보듯 대상을 보이는 대로 묘사했다.풍경의 구도와 묘사할 대상을 정하는 것이 시인의 몫이라고 보면 감정 개입이 전혀 없다 할 수 없지만 묘사법에서 철저하게 객관성을 유지했다. 이러한 묘사법은 미술의 영향으로부터 왔다고 고백했다. 그는 당시 문화부 미술 담당 기자로 활약했다.

“70년대 대구현대미술제 현장에서 작가들을 만났다. 당시 미술사조가 ‘하이퍼 리얼리즘’이나 ‘팝 아트’가 유행했다. 그런 영향을 받아 시의 소재도 일상에서 구했고, 사물을 드러내는 방식은 드라이하게 했다.”

시는 언어의 정수다. 감각과 감성의 실루엣이 언어에 실린다. 그러나 이하석의 결은 좀 달랐다. 시를 짓기보다 제작했다.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찍은 사진을 토대로 단어들을 골라내고, 그것들을 시로 엮었다. 그 과정에 감성보다 논리가 더 크게 작용했다.

2집 ‘김씨의 옆얼굴(84)’도 사물을 인간으로 대체한 것만 달랐을 뿐 인간소외라는 사회문제를 객관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은 동일했다. “정면보다 이면, 도시의 중심보다 변두리를 포착해 카메라 렌즈로 바라보았다. 감정을 배제를 위한 방법론이었다.”

90년대로 넘어오면서 그의 시가 변했다. 의도성은 옅어지고, 자연스러움은 강화됐다. 고희를 바라보는 지금은 삶과 죽음도 다룬다. 그러나 여전히 예술의 ‘첨단성’은 유지한다.

“시대의 변화를 꿰뚫고 한 발 앞선 세계를 제시하는 이들이 시인이다. 고통스럽고 질기게 싸우는 자만이 진정한 시인이 될 수 있다. 나는 시인으로서 계속해서 첨단의 길을 걸어갈 것이고, 대구문학관장으로서도 그런 정신을 유지해 갈 것이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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