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異端)의 범절(凡節)
이단(異端)의 범절(凡節)
  • 승인 2018.04.15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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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윤 시인
재미있는 세상이다. 하나둘 불거지는 사건들이 알고도 모른 척 지나온 시간들 가운데, 여러 매체를 통해서 밝혀질 때마다 이를 전하는 이들은 ‘충격적’이라고 보도를 한다. 물론 처음 접하는 이들은 그리 느낄 수도 있겠다만, 대개 재벌가의 ‘갑질 논란’따위나 ‘위계에 의한 성폭행’등은 우리가 전혀 몰랐던 사실이 아니지 않는가. 좀 더 솔직해보자. 주류반입이 불가한 청소년 출입업소인 노래연습장에서도 맥주와 안주를 주문하고, 더 나아가 일반 남성들은 소위 ‘보도’라고 칭하는 도우미까지 불러서 음주가무를 즐기는 행태를 처음 들어보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다가 단속에 걸려 방송에 나오게 되면 앵커는 청소년들이 가방을 메고 들어서는 장면과 선정적인 장면을 번갈아 내보내며 충격이 아닐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이를 지켜보는 시청자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역시 새롭지도, 충격적이지도 않은 만민중앙성결교회 이재록 목사의 성폭행의혹과 관련해서 JTBC ‘뉴스룸’의 보도를 접했다. 놀라운 건 교회 측의 신속하고 구체적인 사후 대응 방식이었다. 지난 10일에 처음으로 성폭행의혹 보도가 나간 후 교회 측은 추가보도가 나갈 수 없게 해달라고 법원에 ‘방송금지 가처분신청’을 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미약하나마 정의의 심장이 뛰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이단으로 판정받은 이 종교단체의 신도수가 13만 명에 달한다고 하니 그에 상응하는 조직력도 필요로 할 것이다. 해당 교회의 홈페이지를 방문해보니 어지간한 대기업의 조직력보다 다양하고 방대하다. 방송국은 물론이고 신학교에 이르기까지 과연 신도들이 그를 신(神)으로 모실만한 영향력을 가진 것임에는 분명하다. 만약 잃을 것이 많은 사람은 ‘건드리지 않는 편’이 나을는지도 모르겠지만, 필자는 그의 도움을 받은 적도, 받을 일도 없는 덕분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

이단(異端)은 정통종교의 교리에 어긋나는 이론이나 행동, 혹은 그런 종교를 의미한다. 또 다른 의미로는 오랫동안 묵은 관습이나 세속에 물들지 않고 혁신한다는 의미도 있다. 흔히 후자의 경우에 해당하는 사람을 이단아(異端兒)라고 부르기도 한다. 종교개혁을 통해 형성된 개신교도 정통 가톨릭으로부터는 당시 이단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전 세계의 민족 종교를 비롯한 수많은 종교들은 한 때 대부분 이단이었다. 이단은 어떤 시대에서고 꼭 필요한 과정이다. 악습을 그대로 답습하며 대를 물려 향유하는 적폐들을 청산하자는 시도는 모두 이단아들의 용기였고 항거였다. 대한민국의 80년대는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광주라는 한 지역 전체를 이단으로 몰아 세상으로부터 격리시킨 공분(公憤)의 시간들이었다. 이단이 문제가 아니라는 소리다. 문제는 ‘약자들의 믿음“을 자양분(滋養分)으로 삼아 그루밍(Grooming)범죄를 저지르는 ’악한 자‘들의 방치다. 과거 ’범죄와의 전쟁‘ 운운할 때에도 ’종교단체와의 전쟁‘이 더 시급하다고 생각했었다. 종교는 절대자나 성인들을 숭배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신(神)의 존재를 인정한다면 겸손을 먼저 배우고, 사람이 사람에게 예(禮)를 다하여 ’인간답게 살아가는 법‘도 꼭 필요함을 함께 인정해야 한다.

흔히 이단과 함께 쓰이는 것이 사이비(似而非)다. 하지만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 이단은 상기한 바와 같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질서에 순응하고 물들어가기 시작하면 어느새 ‘고인 물’이 되고 썩어가게 마련이다. 여기에 새로운 물꼬를 트고 맑은 영혼과 교류하는 마중물이 되어 주는 것이 이단아의 역할이 되어왔으니 말이다. 반면 사이비는 말 그대로 겉은 비슷하나 속은 완전히 다른 사악한 의미에 가깝다. 한때 환경문제와 맞물려 중소기업의 공장들을 돌아다니며 오폐수 처리시설이나 폐기물 무단 소각 등을 빌미로 돈을 요구하는 환경관련 신문사의 사이비기자들이 무더기로 적발된 사례들도 있었다. 이들이 왜 나쁜가 하면 불법행위의 고발을 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고발하지 않고 개인의 사욕을 채우려했기 때문이다.

이재록 목사는 해외출국이 금지되었다. 그의 말대로라면 해외에서 더욱 인정받는 사람인데 출국해버리면 돌아오지 않을 것임에 분명하니 출국을 막는 것이 먼저일 수밖에 없다. 어떤 경우에도 이번에는 반드시 사이비종교의 ‘끝’을 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교회 행사 자료들을 보니 그는 형형색색의 양복을 입고 카퍼레이드를 비롯해서 고운 한복을 입은 신도들로부터 큰 절도 받고 그야말로 그에게는 더 이상의 신(神)의 존재가 필요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그는 놀라운 능력을 가진 사람인지는 모르나, 피해자들에게는 여전히 추악하고 사악한 노인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교회 측에서는 그가 ‘거동조차 불가하기 때문에 성폭력’은 불가능하다고 밝혔지만, 필자는 그의 최근 건강상태에 대해서는 궁금하지 않다. 하루라도 빨리 쾌유하여 그의 에덴동산에서 잠시라도 하산해서 조사에 응하고 진실을 밝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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