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옥이 만난 작가] 극재 정점식, 학생 스스로 五感 느끼게 하는 동양 교육 실천
[서영옥이 만난 작가] 극재 정점식, 학생 스스로 五感 느끼게 하는 동양 교육 실천
  • 황인옥
  • 승인 2018.04.19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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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재는 떠나고 예술은 남고…
현실과 허상의 공존 체감하며
그의 저서 ‘현실과 허상’ 상기
살아 생전 ‘마사지’ 교육 실행
전신으로 체득하는 진리 강조
지식과 인격이 자산이라 말해
현실과허상
현실과 허상, 극재 정점식의 두번째 에세이집.
현실과 허상은 공존한다.「현실과 허상」은 故극재(克裁) 정점식(1917~2009) 선생(이하 극재)이 집필한 책 제목이기도 하다. 총 네 권의 저서 중 두 번째 에세이집(1985년, 도서출판 그루)이다. 문득 그의 책 제목을 떠올린 건 간밤에 꾼 꿈 때문이다. 이 글 연재를 시작한 다음 날에 꾼 꿈은 이랬다.

극재는 수필집 <화가의 수적>에 그의 거처를 자세하게 묘사해 놓았다. “나는 대구의 도심에서 벗어난 산마루에 세워진 아파트에 살고 있으며 비교적 한적한 곳이다. 남쪽으로 트인 창으로 대덕산이 마주보이고 산에 이르는 넓은 언덕바지는 공원부지로 지정되어 있어서 건물은 한 채도 보이지 않고 군데군데 인근 주민들이 관목이나 자갈더미 사이에 가꾸어 놓은 좁다란 채소밭이 보일 뿐이다.”(정점식, 화가의 수적(두려운 스승), 아트북스, 2002, p38) 그는 이 집에서 아침마다 대덕산에 올라 산책을 한 후 학교 가는 버스에 오르곤 하였다. 92세까지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지 싶다. 기억하건대 노년의 극재 선생에게서는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에게서나 날법한 특유의 채취는 없었다. 대신 선승처럼 산뜻한 에너지가 풍겨져 나왔다. 아마도 그 이유는 소식(小食)에 규칙적인 생활과 꾸준한 산책 덕이지 않을까 한다. 간밤 필자의 꿈에서도 극재는 남쪽으로 난 베란다 창문이 넓던 집, 대덕맨션에 머물렀다. 생전에 짓던 엷은 미소는 그대로였다. 낮은 목소리도 여전했고 큰 키에 약간 구부정한 노신사의 체화된 품위 또한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었다.
 

극재 여인드로잉 서영옥 제공
극재 드로잉. 서영옥 제공

아파트 방 한 칸을 작업실로 쓰던 극재는 작업실과 마주한 서재로 필자를 안내했다. 이어 책꽂이 한 중간에서 큰 책 한권을 뽑더니 “이 책은 가지고 있나? 없거든 가져가라.”고 한다. 책 표지 안쪽 빈 여백에 특유의 필체로 사인을 하고 남은 페이지엔 드로잉을 하였다. 여느 때처럼 능숙한 필력은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다. 순식간에 한 점의 연필드로잉이 완성되었다. 책(도록 같은)과 그 책 속 빈 여백에 그린 그림까지 받아든 필자는 감격에 겨워하다가 그만 잠에서 깼다. 장자의 호접지몽이 생각난 건 꿈에서 깨어난 직후였다. 찬 공기에 정신을 가다듬고 고인의 빈자리를 실감했던 간밤의 기억이다. 프로이드의 주장처럼 필자의 꿈도 스승을 그리는 무의식의 정신활동이었던 것일까. 한편 꿈은 이승과 저승을 잇는 교량이 아닐까도 생각해본다. ‘현실과 허상’이라는 극재의 책 제목을 떠올리게 된 배경이다.

“예술은 진리를 가장한 거짓이라는 말이 있다. 거짓이 이처럼 호소력을 가지고 있는 까닭은 예술이 진리보다 더욱 현실적으로 절실한 표현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정점식, 화가의 수적(평형을 잃은 생활), 아트북스, 2002, p14) “실은 우리들의 삶은 이 과학시대의 합리적이고 직선적인 논리만으로는 살아갈 수가 없는 것이며 그것만으로는 삶의 참뜻을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상상하고 꿈꾸는 세계, 각박한 이 현실에서 벗어나 이따금 우리의 꿈을 만들어 내는 낭만이 없다고 한다면 우리들의 삶은 질식하고 말 것이다.”(정점식, 선택의 지혜(내가 신비에 눈뜰 때), 미술공론사, 1993, p64) 극재의 지론처럼 예술은 시각적이지 않다고 없다고 할 수 없는 세계와 맞닿아있다. 예술가는 고인이 되었지만 예술정신은 남아서 우리와 함께 숨을 쉰다. 살아있는 예술정신이 현실과 허상의 공존을 체감하게 하는 것이다. 간밤에 꾼 꿈도 비슷한 범주는 아닐까. 비록 꿈이었으나 스승의 흐뭇한 표정은 이 글의 출발에 강한 기운을 실어준다.

극재는 평소에 유모어가 없는 편이었다. 대신 교훈적인 말은 쉬지 않았다. 말보다는 실천으로 가르쳤다. 부드럽고 낮은 톤의 음성이었지만 뉘앙스는 분명했다. 이러한 가르침에 대한 철학을 극재는 글로도 새겨두었다. “불립문자(不立文字)라는 동양의 전통은 진리는 말이나 글을 통해서가 아니라 전신으로 체득한다는 것이며, 위대한 사람들(스승)을 접하는 것만으로 성장한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교육은 ‘메세지’ 교육이며 동양의 전통적 교육을 ‘마사지’교육이라고 하는 말이 있다. 그것은 많은 학생들을 모아놓고 외치고 설교하는 교육과 마주 앉아서 말없이 오관으로 느끼고 깨닫도록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교육을 말함이다.(정점식, 아트로포스의 가위, 흐름사, 1971, p.124) 극재는 후자 쪽이었다. 극재를 기억하는 많은 제자들이 그를 존경하고 따랐던 이유이기도 하다. 바로 ‘마사지교육’의 실천 때문이다.

극제는 제자들에게 분명한 어조로 말한다. “창백한 인텔리켄자(Intelligentsia)라는 말이 있듯이 현실에 약고 모험을 하지 않고, 위기를 잘 피하는 지적인 족속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참 지식은 창백해서는 안 되며 사회의 대의를 위하여 불을 붙이는 용감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 (중략) … 여러분은 이런 근시안적인 약은 시야를 버리고 사회의 심층이나 미래의 지평을 바라보면서 걸어가야만 할 것입니다. 우선 여러분들은 사회나 집단의 룰을 존중해야만 하며, 그 다음으로는 그 사회나 집단에 적응하면서 잘못된 것을 개량해 나가야만 하며, 그 사회나 집단에 유용하고 필요한 인물이 되어야만 여러분들의 발언이 신빙성을 얻게 됩니다. 높은 지위나 돈을 탐내지 말 것이며 그것들은 다 헛된 것이며, 지식과 인격이 자산이며, 여기에 몇 사람의 뜻을 같이한 친구가 있다면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성공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안녕히…(1974)” (정점심 에세이 1, 아트로포스의 가위, 졸업생에게 보내는 글, 도서출판 흐름사, 1981, p226) 스승과 제자의 관계와 의미가 희미해진 요즘, 세상이 변했어도 극제의 제자라면 스승의 참 뜻을 헤아리고 실천할 것이다.

혹자는 앞서 기록한 극재의 말에 반론을 제기한다. 다 가진 자가 쉽게 하는 말이라는 것이다. 존중할 의견이나 필자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손가락이 아닌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을 보고 싶다. 극재의 생몰시기만 보아도 해답의 실마리는 찾아진다. 극재에게도 소년시절이 있었다. “내가 소년시절 전기료나 수도료를 받으러 온 일본인 징수원이 문을 들어서면서 마루나 방안의 기물들을 유심히 보고 그것들을 팔지 않겠느냐느니 물건이 좋다느니 하는 말을 들은 일이 있다.” (정점식, 정점식 에세이 1, 아트로포스의 가위, 흐름사, 1971년, p17) 이 글에서 알 수 있듯이 극재의 소년시절은 일재강점기였다. 역사적인 비극(6.25 전쟁)은 그가 장성한 후에도 겪은 일이다. 이러한 사실은 전쟁의 아픔과 가난에 맞선 시대를 조명한다. 경험한 세대라면 궁핍과 결핍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결코 다 가진 자가 될 수 없는 환경이었던 것이다. 혹자가 표현한 ‘다 가졌던 것’들은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나간 예술가의 의지와 투지라고 하고 싶다.

서영옥ㆍ미술학박사 shunna9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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