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산문화회관 유비호 ‘영원한 기억’展
봉산문화회관 유비호 ‘영원한 기억’展
  • 황인옥
  • 승인 2018.04.19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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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난민서 떠올린 ‘한반도의 아픔’
가족 두고 떠나온 그들의 상실감
20대 난민→70대 분장시켜 촬영
앞으로도 지속될 문제임을 암시
사회문제 담론화 통해 이상 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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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호
사건에 대한 직접 언급 없이 장소의 풍경만으로 처절했던 사건이 눈앞에서 그려졌다. 사연을 모르고 영상을 봤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감정이입이 얼마나 근접했으면 이처럼 먹먹해질까도 싶었다. 영상에는 2015년 9월 2일 세살배기 시리아 난민 아일란 셰누(Aylan Shenu)의 시신이 발견된 터키 남부에 위치한 보드룸의 아키알라 해변 풍경이 11분 분량으로 담겼다. 아이와 관련된 직접적인 이미지는 배제하고 해변가의 파도, 모래톱, 나무, 버려진 오브제, 이름 모를 개, 쓸쓸한 풍경만 담담하게 촬영됐다. 그러나 어렵잖게 아이의 비극이 연상됐다.

작가 유비호가 “개인의 비극적인 운명에 감정이입하고, 그것을 보편 의식으로 아우르려 한다”고 명쾌하게 설명했다. “당면한 사회문제를 포착하고, 상황에 개입해서 또 다른 방식으로 재현하며 사유를 이끌고, 문제의 흐름에 변화를 주고자 하는 방향으로 작업을 하고 있어요.”

작가 유비호의 ‘영원한 기억’전이 봉산문화회관 4전시실에서 시작됐다. 아일란 셰누의 시신이 발견된 해변을 촬영한 영상과 사운드 작품, 노인으로 분장한 8명의 사진이 ‘영원한 기억’이라는 주제로 꿰어졌다. 모두 시리아 난민 이야기다. 지난해 유비호가 독일 베를린 소재 국제 예술가 레지던시 ‘퀸슬틀러하우스 베네티엔’에 참여하며 독일 사회의 최대 난제인 난민 문제를 보고 착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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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호 전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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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호 전시작. 봉산문화회관 제공

두 작품 중 특히 사진 작품은 한반도의 이산가족을 모티브로 했다. 이산가족이라는 공통분모로 이들이 소통했다. 작가는 80년대 초반 KBS에서 진행한 이산가족찾기 프로그램에서 봤던 이산가족의 가족에 대한 지극한 그리움의 눈빛을 독일 시리아 난민에게서 봤다. 그리고는 독일에 정착한 20~3O대의 시리아 난민을 60~70대로 특수 분장해 사진을 찍었다.

“50년 한국전쟁 난민과 오늘날 난민문제를 동일선상에 놓았어요. 전쟁과 분쟁 그리고 난민문제는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 미래의 문제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죠.”

유비호는 70년생, 90년대 학번이다. 민주화에 대한 갈망에서 개인주의 대학문화까지 격변기를 살아온 386세대다. 그런 만큼 시대의 문제를 사유의 장으로 시각화해 각성으로 이끌어내는 것을 예술가의 역할이라고 믿고 있었다. 시리아 난민을 주제로 한 이번 작품도 뿌리는 같다.

“대학 때부터 현실적인 문제를 보편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을 고민했죠. 이런 점에서 전시장은 내 의식과 무의식과 감정이 공유하는 공간이자 동시대 문제를 담론화해 사유로 이끄는 공간이죠.”

작가로 데뷔한 시기는 2000년이다. 데뷔 초기에는 개인적인 사유를 은유적으로 드러냈다. 고독, 집단 속 개인 소외, 우울 등 개인이 느끼는 무거운 주제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그 질문과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무의식적 공간에서 꼴라주 기법의 영상 등의 다매체로 표현했다. 2015년부터 개인에서 사회문제로 주제를 넓혀오고 있다.

“지난 2006년부터 작업활동을 통해 개인적인 사유를 10년 이상 했어요. 그런 수행의 기간이 사회 문제에 개입해서 흐름을 바꾸거나 변화를 주고자 하는 보다 확장된 작업의 기반이 됐죠.”

주제를 풀어내는 방식은 차용이다. 시나 설화, 신화 등 실존하는 문학을 차용한다. 이번 작품 중 사운드 작품인 ‘보이드’가 대표적이다. 작품은 그리스 신화 속의 비극적 인물 중 하나인 오르페우스를 토대로 했다. 지하세계의 사랑하는 애인의 영혼을 지상으로 데려오려는 오르페우스의 공포와 불안, 기대, 희망 등의 심리를 가족과 애인을 죽음의 세계로부터 탈출시키고자 하는 시리아 난민과 동일시했다.

그가 주제를 부각하는 연출법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물질과 감성의 균형. 불편한 정서를 편하게 보여주기보다 감정이입의 상승작용을 돕는 장치들을 적극 활용한다. 이번 전시에는 방수포가 활용됐다. 시리아 난민들의 임시거처에 사용된 방수포가 이번 전시에서는 공간을 나누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선명한 영상 화면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하며 작품의 정서를 터치한다.

“방수포는 시리아 난민의 아픔을 매끈하게만 바라볼 수는 없다는 사회적 메시지의 상징성에 해당되죠.”

2015년에 현대의 고려장 이야기를 언급했고, 이번에는 시리아 난민을 다뤘다. 소재적인 상황은 각기 다르지만 작가적 감정이입은 그야말로 탁월해 보인다. 그가 “아버지가 청각장애였고, 소작농이었다”고 했다. 개인의 부재나 소외를 일찍부터 작가 자신 뼈저리게 경험했다는 것.

“사회문제를 다루면서 궁극에는 이상적인 것에 대한 기대, 상상, 희망을 기대하죠. 문제를 포착하고 질문을 던지고 사유하고 하는 과정에 성장기의 정서가 맞물려 있다고 봐요.” 전시는 7월 1일까지. 053-661-3500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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