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과 도피
선택과 도피
  • 승인 2018.04.19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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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 심정아
심정아 구미시선거
관리위원회 지도홍
보주임
대학생 시절 정치학 수업을 들으며 겪었던 일이다. 교수가 강의 도중 자신은 최근 십여 년간 투표를 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앞으로도 투표를 하지 않을 거란 말과 함께. 후보자들이 비슷비슷해 투표하는 것이 무의미하고, 선택에 앞서 이것저것 찾아보는 시간이 아깝기 때문이란다. 학생들 사이에서 평소 존경받는 분인 데다 나 역시도 여러 차례 강의를 수강할 정도로 따랐던 탓에 교수의 이야기는 다소 당혹스러웠다.

무언가를 선택할 때 적지않은 수고와 노력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점심 메뉴를 결정하는 데도 ‘아무거나’를 외치며 다른 누군가가 결정해주길 바라는 사람들이 많을 테다. 하물며 후보자만 수십 명이고 공약과 선전이 쏟아지는 선거에 있어서라고 다를까.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일찍이 “미래의 사람들은 자유의 부재가 아니라 자유의 과잉으로 고통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유는 개인이 외부의 구속에서 벗어나 스스로 판단·행동하고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것을 의미한다. 흔히 외부의 통제에서 벗어난 상태를 소극적 자유,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을 적극적 자유라고 한다. 하지만 개인이 주체적으로 무언가를 결정해야 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지식이 생산되는 무한대의 속도에 맞춰 필요한 정보만을 선별하고 무용지식은 덜어내는 작업은 우리를 피로하게 한다. 때문에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으로부터 종종 도피하는 습성이 발휘된다.

허쉬만의 항의·이탈 이론에 따르면 소비자가 시장에서 불만족을 느낄 때 그를 표현하는 방식으로는 항의(voice)와 탈출(exit)이 있다. 예컨대 단골 중국 음식점의 짜장면 맛이 이상해지면 우리는 짜장면 맛이 바뀌었다고 주인에게 이야기를 하거나 다른 음식점으로 갈 수 있다. 문제는 정치의 경우 탈출의 방식으로 도피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중국 음식점 주인은 단골손님을 다시 확보하기 위해 음식의 맛을 바꾸겠지만, 정치는 그러한 자기조절능력을 가지지 못한다.

정신분석학자 에리히 프롬은 1941년 발표한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통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유와 권리를 포기하는 이유로 사회경제적·정치적·심리적 요인을 분석하고, 적극적인 자유를 실현하는 방법으로 개인의 자발성을 제시했다. 선거는 정치 참여의 기본이다. 일반 국민이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정치가 투표라 할 수 있다. 어느 후보자에게 투표할 것인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함으로써 우리는 적극적인 자유의 필요조건을 충족할 수 있다. 투표해도 큰 변화가 없고 당장 자신의 삶에서 바뀌는 것이 없더라도 투표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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