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을 보러 가기 힘든 뜨거운 여름이었다. 한낮에는 엄두가 나지 않아 어둠이 내릴 때 연꽃을 보러 갔다. 구름을 담은 연못 속에 연꽃은 노을을 배경으로 서 있었다. 마치 내가 올 줄 알고 있었다고, 기다리고 있었다고, 어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는 듯 했다.노을 지는 연못 풍경을 이리저리 사진을 찍으러 다니다가 “어” 하면서 발걸음을 멈췄다. 쿠라피아(일명 겹물망초)가 토끼풀처럼 못 둑을 뒤덮고 있었다. 꽃집에서조차 보기 힘든 쿠라피아를 우연히 한국의 길가에서 만나다니 반가웠다.‘저 정도로 빽빽하게 퍼지려면 올봄에 심은 것은 아니야.

너무나 더웠던 여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도 한낮의 햇볕은 따갑기만 하지만 그래도 아침저녁으로 시나브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주면서 가을을 느끼게 됩니다. 정말 이제 좀 살것 같습니다.여름방학 동안 정말 얼마나 덥던지 감당하기 힘들 지경이었습니다. 땡볕에 일하던 사람들이 목숨을 잃을 정도였습니다. 날마다 폭염경보 문자가 사이렌과 함께 울리고, 실내에서도 하루 종일 에어컨을 틀어야 살 수 있었습니다. 기후변화, 기후위기 말로만 듣던 그런 것들이 이제는 내 발등의 불로 떨어져 느끼고 남을 지경으로 겪었습니다. 오랜 시간 인간이 병

2024 파리올림픽에서 한국 여자 양궁이 올림픽 10연패를 달성했다. 1988 서울올림픽에서 양궁 단체전이 처음으로 등장한 이래 올해 파리올림픽까지 단 한 번도 금메달을 놓치지 않은 것이다. 전 세계가 놀라는 한국 양궁의 위대한 성과에는 보이는 노력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노력이 무수히 많다.숨겨진 노력 중에서 한 가지를 소개하자면 마음 근력을 기르는 명상 훈련이다. 모든 운동에 있어서 정신력이 중요하지만, 특히 양궁의 경우 정신력 싸움이라고 할 정도로 심리적 훈련이 매우 중요하다. 올해 우리나라 양궁 대표 선수들은 연세대학교 김주

“호박잎을 많이도 따 왔네요?” “한 200장 정도는 딴 것 같아요.” “200장씩이나요. 이번 2박 3일 동안 호박잎만 먹어도 되겠어요.” “밥도 싸서 먹고 매운탕 끓이는 데도 호박잎을 비벼서 넣으면 좋을 것 같아요.” “평소에 호박잎을 먹을 기회가 많지 않으니 이번 워크숍에서 실컷 드세요.” “이렇게 둘러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니 어릴 적 생각이 많이 나네요.”영호와 네 명의 여성이 둘러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서 호박잎을 정리했다. 2024년 8월 2일 금요일 오후에 충북 괴산의 칠보산 쌍곡계곡의 어느 산장에서 12명

자연을 찾아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낯선 풍경 속에 꽃이 눈에 들어왔다 부겐베리아(부겐빌레아)가 만드는 골목길 꽃 터널도 있었고 가로수 밑에 지피식물로 심은 란타나도 보였다. 새벽꽃시장에는 카랑고에, 서피니아, 페츄니아 등 모종을 팔고 있었고 능소화가 담벼락을 넘고 있는 집도 있었다. 베이지색 담벼락을 배경으로 핀 무궁화가 예쁘기도 하고 이국에서 만나 반가운 마음에 주변 지인에게 무궁화 사진을 보냈다.꽃을 본 사람 중에는 “어 무궁화 아니에요? 외국에도 있어요?”“네, 한국에만 있는 꽃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릴 때 왜 그렇게 자주

‘엄마의 런닝구’라는 시가 있습니다. 너무나 유명합니다. 1987년 경산부림초등학교 6학년 배한권 학생이 집에서 있었던 일을 그대로 시로 썼습니다. 그리고 이 시는 우리나라 역사에 영원불멸한 최고의 동시 중 하나로 남았습니다. 가장 큰 이유가 뭐냐 하면 어린이 글쓰기에 엄청난 관심을 갖고 연구하신 글쓰기 지도의 선구자 이오덕 선생께서 이 시를 지도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오덕 선생이 생활에서 있는 일을 그대로 쓰는 것이 시라고 가르치셨기에, 이런 시가 세상에 나온 것입니다. 안 그랬으면 그 당시에 이런 시는 시 같지도 않은 시라고 누구

수업 시간 중에 떠드는 학생이 있었다. 다른 친구들의 수업을 방해하고 수업 분위기를 흐트러뜨린 학생을 살폈다. 수업 시간에 집중하자고 말하려는데 아이 주변에 떨어진 종이와 나뒹구는 연필이 눈에 거슬렸다.“수업 시간에 이야기하면 다른 친구들에게 방해가 되겠지? 자리 주변도 엉망인데 정리 좀 하자.”떠드는 행동을 지적하려다가 자리 주변 정리를 언급하면서 이야기가 분산 돼버렸다. 떠드는 행동과 자리 정리 정돈, 두 가지 모두 학생에게 가르쳐야 할 중요한 내용이다. 하지만 하나의 행동을 지적하면서 동시에 다른 행동을 추가로 언급하면 학생은

“김선생, 오셨는가?”“예, 형님. 오늘은 무슨 일 하시려고요.”“포도나무 죽은 게 몇 군데 있어서 묘목을 심을라고.”“예. 차 한 잔 하시고 시작하시지요.”“방금 전에 마을회관에서 먹고 나왔어.”“그래도 한 잔 하시고 하시지요.”“됐어요. 그보다 포도밭 문에 찍혀 있는 화양연화가 무슨 뜻인가?”“화양연화는 꽃이 피고 빛난다는 뜻인데, 저는 오늘도 참 좋은 날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그랬구나. 연화는 무슨 뜻인지 알겠는데, 화양이라는 글자가 무슨 뜻인지 잘 몰라서 물어봤지.”2023년 3월 11일 토요일에 김천시 아포읍

지난해 담장 너머 공터 산비탈의 흙이 유실될까봐 산철쭉과 지피식물을 심었다. 꽃잔디 30포트를 20센티 간격으로 심었지만 부족했다. 그래서 백리향을 심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찾았으나백리향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인터넷에 찾았더니 옥천 묘목단지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10개를 구해서 심었다. 그해 여름, 꽃잔디와 백리향의 포복이 빠르지 않았다. 꽃잔디는 금방 번지니까 20센티 간격으로 심으라던 꽃집 아저씨의 말이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그나마 백리향이 좀 더 빨리 퍼졌다. 여름이 다 지나가는데도 여전히 듬성듬성 맨땅이 크게 보였다. 백리향을

요즘 인공지능이 한마디로 난리입니다. 매일 인공지능 소식이 온갖 매체에 쏟아지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인공지능 도구인 챗GPT는 인공지능의 대명사답게 나날이 발전을 거듭하며 오만가지 신기한 것들을 다 해내고 있습니다. 한때는 유튜브를 안은 구글이 세상의 중심이었는데, 지금은 갑자기 엔비디아라고 하는 회사가 혜성처럼 나타나 인공지능으로 세상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날마다 새로운 인공지능이 눈만 뜨면 나타나서 발표 자료를 만들어주는 것,번역을 해주는 것, 그림을 그려주는 것 등 신세계가 펼쳐집니다. 세상이 도대체 어떻게 변하는 것일지

최근 몇 년 동안 트로트 열풍이 불면서 각종 매스컴에서 트로트 관련 오디션이 넘쳐났다. 트로트는 한국 민요의 영향을 받아 떠는 창법의 특징이 반영된 우리나라 고유의 음악 장르이다. 트로트의 가사를 살펴보면 남녀의 이별이나 사랑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나는 트로트 오디션에 나온 초등학생들이 남녀 간의 사랑이나 이별의 아픔을 절절하게 부를 때면 걱정스러운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물론 트로트를 좋아해서 자발적으로 오디션에 참여했고,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면서 행복하다는 것은 긍정적인 측면이다. 하지만 ‘말하는 대로 된다.’라는 말처

“교장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일찍 나오셨습니다.” 제일 먼저 출근해서 학교를 돌아보시는 교장 선생님께 인사를 드렸다. “김선생님 일찍 오셨네. 고속도로는 밀리지 않았나 봅니다.” 그렇게 성용제 교장 선생님과 아침 인사를 하고 한참 동안 학교 이야기, 집안 이야기 등을 나누다가 교실로 들어갔다. 대구교육대학교대구부설초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1999학년도 2학기부터 2년 6개월 동안 있었던 아침 풍경이다.성용제 교장 선생님은 1999년 9월 1일부터 2022년 2월 28일까지 대구교육대학교대구부설초등학교 제9대 교장으로 근무하셨다

맨땅에 스스로 피어나는 괭이밥이 좋았다. 노란 괭이밥의 선명함도 좋았지만 하트모양의 잎 모양도 좋았다. 노란색 괭이밥뿐만 아니라 사랑초라 부르는 핑크색 꽃과 흰색 꽃도 보기 좋다. 자주색 사랑초의 잎 모양은 나비 같다. 꽃만큼이나 잎이 아름다워 꽃이 진 후 잎을 보는 관상용으로도 사랑받고 있다. 꽃과 잎, 온몸으로 사랑해달라는 괭이밥을 어찌 싫어할 수 있을까?고양이 밥을 줄여서 부른다는 괭이밥 이름도 스폰지밥처럼 재밌다. 말을 못 하는 고양이가 배탈이 났을 때 먹는다는 이야기도 신기하다. 나당연합군이 격렬하게 전쟁을 치렀던 백제 땅

IB 학교, 그것도 인증을 완전히 마친 월드스쿨에 몸담고 있으면서 자의로 타의로 IB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IB를 잘 모르는 많은 사람들에게 쉽고 잘 어울리는 비유가 생각났습니다.우리가 지금 익히 사용하는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에 휴대전화만 되는 휴대폰이 있었습니다. 지금보다 당연히 크고 무겁고 불편했지만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통화를 바로 할 수 있다는 것은 획기적이었습니다. 당연히 휴대전화는 엄청난 인기를 누렸고 급속도로 발전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전화기니까 제일 우선순위가 전화 통화입니다. 그런데 그걸 바꾼 사

작년 2월이었다. 새로 이동한 학교에서의 낯선 생활이 시작되었다. 사람도 업무도 새롭게 익히려니 모든 게 낯섦 투성이었다. 2월은 신학기 교육과정을 짜고 학급 운영을 위한 준비를 하느라 분주했다. 게다가 개학 전이라 급식이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에 새롭게 구성된 동학년 선생님들과 점심 식사를 해결해야 했다. 바쁘게 일을 하다가도 함께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트며 조금씩 친분을 쌓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동학년 선생님들이 모두 출장이었다. 혼자서 점심 식사를 해결하기가 귀찮아서 간단한 간식을 챙겨 먹는 걸로 점심을 대신했다.“점심 식

“어르신, 시내이(고향의 자연부락명)의 김아무개 아들입니다.”“그래, 아버지를 닮아서 인물이 좋네.” “그러게, 어른은 훤칠했고, 모친은 마음씨가 참 좋았지.”2022년 5월 7일에 농약을 사려고 부모님 때부터 단골로 거래를 하던 김천의 중앙농약종묘사에 들렀다가 여든에 가까운 사장 부부에게 들은 말이다.2024년 5월 6일은 어린이날 대체공휴일이다. 2022년 3월 13일에 심은 복숭아는 올해 약간의 수확을 기대하고 있다. 그해 3월 9일 대통령선거일에 심은 포도나무도 잘 자라고 있다. 농사꾼이 된 영호는 오후에 아내와 고향에 있는

대구시교육청은 몇 해 전부터 IB 교육을 도입하여 급속도로 확대,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IB는국제바칼로레아(International Baccalaureate)의 약자로 스위스에 본부를 둔 비영리교육재단인 IBO에서 만든 국제학교에 적용하는 프로그램이 IB 교육입니다. 처음에는 외교관, 해외 주재원 등의 자녀가 다니는 국제학교의 교육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여러 나라의 학교를 자주 옮겨 다니는 학생들이 어디에서도 교육 결손을 입지 않도록 국제적으로 전부 통하는 최소한의 안정된 교육과정을 만든 것입니다. 어느 나라에서 무엇을 배워도 어려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학교 현장이다. 수업과 업무를 병행하다 보면 계절의 변화를 느낄 새도 없다. 해야 할 일들 치여 표정은 점점 더 굳고 일상이 무미건조해지기 십상이다.얼마 전, 팍팍한 일상 속에서 가뭄의 단비 같은 유머를 경험했다. 올해 맡은 업무 중에 영재 수업 계획서를 모으던 중이었다. 수업 내용을 살펴보다가 ‘한 분 그리기’라는 글귀에 시선이 갔다. 수학 수업이었는데 한 분을 그린다는 게 이상하다 싶었다. 옆 칸에 적힌 학습 제재를 살폈다. ‘한 붓 그리기’라고 적혀 있었다. 내용을 비교해 보니 ‘한 분 그리기’가 오타라

2024년 3월 31일 일요일에 화양연화 농장의 복숭아꽃이 피기 시작했다. 동네 형님들은 예년에 비해서 좀 늦은 편이라고 한다. 천도복숭아 계열의 신비라는 복숭아이다. 천도복숭아는 털이 없는 게 특징이다. 비가 잦고 흐린 날이 많아서 생각만큼 꽃이 피지는 않는다. 첫 꽃이 피고 5일이 지나니 절반 정도 꽃이 피었다. 신비복숭아는 동생과 함께 2022년 3월 13일 일요일에 15 그루를 심었다. 같은 날에 금봉복숭아 20 그루와 스위트퀸 20 그루도 같이 심었다. 스위트퀸은 천도복숭아 계열이고 금봉복숭아는 털이 있는 복숭아이다. 땅심

몇 해 전 그릇 가게가 모여 있는 서문시장 2지구 지하상가에 갔었다. 낮인데도 찬란한 조명 아래 빛나는 그릇들이 있었다. 똑같은 회사의 제품을 가게마다 나란히 진열해두고 있었다. 저 귀퉁이에는 스텐그릇을 팔던 상회가 있었고 저기는 목기점이 있었는데…… 더 이상 어릴 때 보던 한국의 유기그릇 가게나 질그릇, 사기그릇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한국인의 유행방식은 그릇에도 영향을 미쳐 특정 제품만 진열하게 했다. 영국에서 건너온 그 회사의 제품은 그릇 가운데 꽃 세밀화가 있고 패턴을 만든 줄기 테두리가 그릇을 장식한다.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