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성군청 휠체어테니스단 이하걸·오상호·한성봉 선수
달성군청 휠체어테니스단 이하걸·오상호·한성봉 선수
  • 김정석
  • 승인 2015.03.26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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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의 아픔 딛고 의기투합…전 세계 코트 평정

맏형 이하걸 선수-고교시절 교통사고로 장애, 기득권 없는 '새 판'서 운동

둘째 오상호 선수-성서산단 특례병 근무중 사고, 군청 테니스선수단 '창단멤버'

막내 한성봉 선수-군전역 25일 남겨두고 사고, 병원서 재활중 테니스와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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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달성군 논공읍 청소년센터 인근에 마련된 전용 테니스 코트에서 왼쪽부터 오상호·한성봉·이하걸 선수가 오는 5월 열리는 터키 월드팀컵 세계휠체어테니스선수권대회 승리를 다짐하고 있다. 김정석기자
1990년대 대구에 처음 휠체어테니스단이 창단될 때만 해도 선수들은 ‘똑딱볼’ 수준의 플레이를 했다.

평소 운동을 즐겨 했던 이들이라고는 하지만, 국내에서는 제대로 된 휠체어테니스 경기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던 시절이어서 선수들은 제자리에 서서 공을 주고 받는 경기밖에는 할 수 없었다.

창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출전했던 재팬 오픈에서 선수들은 경악했다. 전 세계에서 모인 휠체어테니스 선수들이 지금껏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역동적이고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펼치고 있었던 것이다.

이리저리 코트를 종횡무진하는 휠체어, 울끈불끈 요동치는 어깨와 팔뚝, 거친 숨을 내뿜으며 라켓을 내리꽂는 선수들을 보면서 그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 줄을 몰랐다.

지금은 국제 휠체어테니스 대회를 1년에 몇 번이고 평정하는 그들이지만, ‘진짜’ 휠체어테니스를 처음 접했을 때는 그랬다.

달성군청 휠체어테니스단 소속 선수는 이하걸(42)·오상호(35)·한성봉(30) 선수 등 모두 세 명이다.

나이 순서대로 우리나라 휠체어테니스 랭킹 1위부터 3위까지를 차지하고 있는 선수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이들 세 명의 선수는 한 코트 위에서 한 솥밥을 먹고 있지만, 이들이 함께 뭉치게 되기까지의 길은 멀고도 지난했다.

세 갈래의 길에서, 한 갈래의 길에 올라서게 된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편집자주>

◇‘새 판’ 만들어진 휠체어테니스에 뛰어들다

선수단의 맏형인 이하걸 선수는 우리나라에 휠체어테니스 종목이 태동하던 시기부터 활동했다.

대전에서 나고 자란 이 선수는 고등학교 재학 중이던 지난 1988년 울산을 찾았다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잃었다. 사고 당시 몹시 위험한 상태였던 이 선수는 앰뷸런스를 타고 서울로 향하다 대구에 내려 긴급 수술을 받았다.

이후 대구 동산병원에서 장기 입원해 재활치료까지 받게 된 이 선수는 그 이후부터 대구에 쭉 살기 시작했고 가족들도 이 선수를 따라 모두 대구에 내려왔다.

이하걸 선수는 다치기 전부터 운동을 참 좋아했다. 어느 정도 재활치료가 이뤄지고 난 뒤 이 선수는 장애인체육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릴 때 우리나라에 장애인올림픽이 처음 소개되면서 장애인체육이 주목을 끌던 때였기에 이 선수에게는 나름 호기(好機)였다.

처음에는 휠체어탁구나 휠체어농구 등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들 종목의 선수단 운영 방식은 이하걸 선수의 처음 기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자신의 청춘을 운동에 매진하며 보내기로 마음 먹었던 이 선수는 1년 정도 대구를 떠나 울산의 한 금은세공 공장에 취직했고, 선수의 꿈도 접는 듯했다.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던 이하걸 선수에게 어느 날 기쁜 소식이 날아들었다. 우리나라에 휠체어테니스가 도입됐다는 소식이었다.

이 선수는 기득권 세력이 없는 ‘새 판’에서 다시 운동을 시작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부푼 가슴을 안고 다시 대구로 올라왔다.

처음으로 테니스 라켓을 잡기까지 휠체어테니스를 대구에 뿌리내리도록 힘쓴 박은수 변호사(전 국회의원)부터 향토기업인 동남무역, 지금 대구장애인체육회 사무처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곽동주 처장 등 여러 사람들의 열과 성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고 이 선수는 당시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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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스리랑카에서 열린 리감보 오픈에서 이하걸·오상호 선수가 복식 우승을 차지하고 기념촬영하고 있다. 이날 오상호 선수는 단식에서도 3위에 올랐다. 달성군청 휠체어테니스단 제공
◇인생의 새로운 전기…“좁은 우물 빠져나온 계기”

달성군청 테니스선수단의 둘째 오상호 선수는 이하걸 선수보다는 한참 후배지만, 지금 선수들 중 유일한 달성군청 테니스선수단의 ‘창단멤버’다.

지난 2001년 대구 성서산업단지의 한 공장에서 특례병으로 복무하던 중 지게차에 실려 있던 파렛트가 무너지며 흉추를 다쳤다.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2년간 재활치료를 하다 병원에서 알게 된 동생으로부터 휠체어테니스의 존재에 대해 전해 듣게 됐다. 대구 달서구 문화예술회관 인근에 마련된 테니스장에서 휠체어테니스 선수들이 정기적으로 훈련을 한다는 것이었다.

궁금증이 일었던 오상호 선수는 직접 차를 몰고 문화예술회관 주차장으로 간 뒤 멀찍이서 그들이 훈련하는 장면을 유심히 지켜봤다.

그렇게 멀리서 훈련 모습을 지켜보길 몇 차례, 하루는 차에서 내려 선수들에게 다가가 “휠체어테니스 훈련 장면을 보러 왔다”고 말하고는 선수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10분 정도 테니스를 쳐보기도 했다.

그리고 그날 밤 오 선수는 잠을 청하려고 누웠다가 천장에 그려지는 테니스 코트를 봤다. 당구를 처음 배울 때처럼 테니스 때문에 잠 못 이루는 밤이 된 것이다.

“그날 이후로 본격적으로 테니스를 쳐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테니스가 ‘내가 할 수 있는 것’의 경계를 무너뜨렸죠. 부모 입장에서는 장애를 가진 아들을 평생 품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하셨겠지만, 테니스를 만나고 저는 자신감이 높아져 독립도 하게 됐고, 결혼도 하게 됐어요. 좁은 우물에서 나올 수 있는 계기가 됐죠.”

그렇게 매일같이 테니스를 치고 자비로 1천만원씩 들여 외국 시합도 나가던 오 선수는 2006년 6월 대구 달성군청 휠체어테니스단이 창단하면서 선수 인생의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

선수단 생활을 하면서 이하걸 선수와도 호흡을 맞추게 됐고, 선수단이 창단한 그 해 쿠알라룸푸르 아·태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에서 한국 최초로 금메달을 따기도 했다.

◇“휠체어테니스, 평생 하려고 마음 먹었죠”

선수단의 막내 한성봉 선수의 원래 꿈은 ‘늙어 죽을 때까지 축구를 하는 것’이었다.

사무실에 갇혀 평생을 보낸다고 생각하면 끔찍했던 한성봉 선수는 활동적이고 자유롭고, 무엇보다 평생 할 수 있는 일로 ‘축구’를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군 전역을 불과 25일 남겨둔 지난 2007년의 어느 날 한 선수는 춘천에서 교통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차량 뒷좌석에 앉아 봉변을 당한 한 선수는 뒤집힌 차량 안에서 자신이 장애를 갖게 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불과 몇 분 만에 앞으로 자신이 살아갈 길이 예전과는 달라지겠다는 생각을 했다.

서울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한 선수는 인터넷 검색으로 대한장애인체육회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럭비, 농구, 테니스, 탁구 등 휠체어에 앉아 할 수 있는 경기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그 중에서 눈에 띄는 것은 단연 테니스였다. 몸을 많이 움직이며 할 수 있는 종목 같았고, 평생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까닭이다.

“하루는 병원에 대한장애인체육회 직원들이 찾아와 장애인스포츠에 대한 설명회를 갖는 기회가 있었어요. 담당자에게 휠체어테니스에 관심이 있다고 하니까 주말에 한 번 한강 고수부지 테니스장으로 와보라고 하더군요. 직접 해보니 그간 쌓였던 답답함이 싹 풀리는 느낌이 났어요. 그렇게 시작하게 됐어요.”

2년간의 오랜 병원생활을 마치고 퇴원한 한 선수는 대학교에 복학해 공부를 하면서도 꾸준히 테니스를 즐겼다. 하지만 서울에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 한 선수는 감독에게 테니스를 ‘직업’으로 삼고 싶다고 했고, 그렇게 감독이 소개해 준 대로 달성군청 휠체어테니스단에 훈련생으로 입단했다.

◇장애인 체육 저변 넓혀야 명맥 유지한다

세 명의 선수 모두 다른 나이, 다른 체격, 다른 인생의 길을 갖고 있지만, 이제는 대구 달성군청 휠체어테니스단에서 호흡을 맞추고 있다.

또 이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테니스를 해온 경험은 없지만, 이제는 각자의 노력으로 전국 최고의 기량을 갖춘 선수들이 됐다.

뛰어난 기량과 높은 성적으로 장애인 체육에 이바지하고 있는 이들은 장애인 체육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바로 인프라에 대한 문제다.

이하걸 선수는 “일반 테니스의 경우 2진에서 1진으로 올라가기만 해도 화제가 되는데, 휠체어테니스는 세계대회에서 경이적인 기록을 세우고 와도 아무도 모른다”며 “국내에서 장애인 체육을 바라보는 인식 수준과 관심이 너무 떨어지기 때문에 빚어지는 문제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들이 지적하는 문제에는 전용체육관의 부재 등 각종 시설 문제도 있지만, 무엇보다 화급한 문제는 선수 수급이 어렵다는 점이다.

오상호 선수는 “대구가 지금은 ‘장애인 체육의 메카’라고 불릴 정도로 실력있는 선수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지만, 궂은 날씨에 운동할 수 있는 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것은 물론 전반적으로 장애인 체육에 대한 관심과 인식이 너무 떨어져 외려 있는 선수들마저 이탈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우리 세대는 척박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테니스가 좋아서 버티고 견뎠다. 하지만 이제는 장애인 체육의 저변 확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이들의 목소리는 휠체어테니스에 대한 열망만큼이나 절실하게 들렸다.

김정석기자 kjs@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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