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우 칼럼]진정한 극일(克日)의 길
[윤덕우 칼럼]진정한 극일(克日)의 길
  • 승인 2019.07.2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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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우 주필 겸 편집국장
1986년 1월 현대자동차가 포니엑셀을 처음으로 미국시장에 수출했다. 필자는 당시 현대자동차 자재관리실에서 근무를 했다. 엑셀 부품은 2만2천여개 정도다. 그 때만 해도 국내 자동차 부품 산업이 불모지였다. 주요부품 대부분은 일본산이었다. 엔진과 트랜스미션은 미쯔비시 제품, 오디오는 파나소닉, 차체 철판은 가와사키제철이나 신일본제철 제품을 썼다. 포항제철 철판은 내수용 차체로 썼다. 미국 수출용 차체로는 쓸 수가 없었다. 철판이 너무 물렀기 때문이다. 국산 자동차 엔진은 아예 없었다. 오디오도 국산이 있었지만 품질 문제로 수출차량에는 장착하지 못했다. 수출 차량 가격의 70% 정도가 일본산 부품이었다. 사실상 미국 수출용 엑셀은 조립한 일본자동차나 다름없었다. 오늘날 현대자동차의 세계적인 위상을 생각해보면 격세지감이다. 수직계열화 노력으로 현대·기아차는 소재·부품 국산화율이 90%에 달한다. 일부 일본산 부품의 경우도 대체재가 충분하다. 만약 국내 자동차 부품산업이 발달하지 못했다면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규제와 마찬가지로 자동차 산업도 일본의 경제보복 직격탄을 맞았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오는 2일 일본 각의에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는 법령 개정이 확실시되고 있다. 그리 되면 기존 규제 품목인 반도체 핵심 소재 외에도 1100여개 품목의 수출규제가 강화된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이고 자강불식(自强不息)이다. 어찌보면 일본의 반도체 핵심소재 수출규제는 그동안 태무심하고 경제성만 앞세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우리나라 반도체 대기업의 자업자득이다. 경제성만 내세워 국내 반도체 산업의 수직계열화 등 관련산업의 생태계를 충분히 키우지 못한 잘못도 크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24일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국내에서 제품을 생산할 능력이 충분한데도 일본의 협력에 안주하고 변화를 적극 추구하지 않았던 것 같고, 중소업체가 개발에 성공해도 수요처를 못 찾아 기술 등이 사장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각종 규제와 지원 미비로 반도체 핵심 소재·장비산업을 키우지 못한 정부의 책임도 적지 않다.

이번에 일본 수출규제 품목으로 지정된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 중소기업인 충남 금산의 씨엔비산업(C&B산업)(주)이 반도체 공정에 쓰이는 초고순도 불화수소 특허를 2011년에 출원, 2013년에 심사를 통과해 등록했다. 이 회사의 특허 내용을 살펴보면 일본제품보다 불화수소 순도가 훨씬 높다. 하지만 자금력과 인력부족으로 이 기술을 지금까지 상용화하지는 못했다. 때마침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지난 12일 경기도 화성시 동진세미켐 연구동에서 열린 현장최고위원회에서 “당정은 연 1조원 규모를 집중 투자해서 수출규제품목과 제재가능품목의 자립화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투자를 집중할) 주요 소재를 파악중”이라면서 “올 추가경정예산(추경)안에 3000억원을 우선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또 “업계 숙원인 테스트베드 구축도 산업통상자원부에서 구축 중”이라면서 “빨리 진행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중소기업을 육성하겠다는 말을 한두번 했는가. 만시지탄이다. 위기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빈말이 아니길 빈다.

문대통령은 “이번 기회에 부품·소재 국산화의 길 가야한다”며 일본의 부당한 조치에 대한 정면 대응 기조를 천명했다. 부품·소재 분야를 비롯한 산업 전반에 대한 ‘탈(脫)일본’ 방침은 말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인력양성과 끊임없는 연구개발이 절실하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국산화에 성공한 중소기업들의 제품을 수출규제 대항마로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 문 대통령의 지적대로 중소업체가 개발에 성공해도 수요처를 못 찾아 기술 등이 사장되기도 한다. 중소기업인 SR테크노팩은 일본제품이 100% 독점하고 있는 즉석밥 포장필름을 개발했다고 한다. 오뚜기·동원 등 국내유명 식품 대기업들조차도 즉석밥 포장필림은 전량 일본제품을 쓰고 있다. 반도체 핵심소재는 고사하고 국민들 주요먹거리 포장재마저 일본기업들이 완전 장악하고 있다. 한국콜마도 일본에 의존하던 화장품 원료를 지속적으로 국산화하는 기업으로 손꼽힌다. 벨벳 섬유 전문업체 영도벨벳도 일본제품이 석권하고 있는 섬유소재 국산화에 성공해 기업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일본 경제보복에 대한 반발로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일고 있다. 그러나 일본 3대 경제단체 중 한 곳인 경제동우회 사쿠라다 겐고 대표가 한국의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22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일본의 수출규제 조처 뒤 한국에서 일고 있는 일본 상품 불매운동에 대한 질문을 받고 이같이 답했다. 진정한 극일의 길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실천이 따르지 않는 불매운동은 공염불이다. 이왕 시작했으니 이번기회에 확실한 본때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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