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우의 줌인아웃] 이 감독이 말하는 생명의 무게
[백정우의 줌인아웃] 이 감독이 말하는 생명의 무게
  • 백정우
  • 승인 2019.09.26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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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윤은 한국 독립다큐멘터리 감독 중에서도 유독 동물에 애착을 보여 온 인물이다. 데뷔작 ‘작별’은 동물원 동물들의 존재가치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서 시작됐다. 그가 아끼던 새끼 호랑이 크레인은 유독 외로움을 많이 탔다. 태어났을 때부터 몸이 약했고, 죽기 전까지 숲 한 발자국 밟지 못했다. 두 번째 작품 ‘어느날, 그 길에서’는 로드 킬에 관한 최초의 보고서이다. 이어 공장식축산방식에 대한 고민으로 시작하여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한 진지한 통찰에 이르는 과정을 바로 이 ‘잡식가족의 딜레마’에 담는다.

황윤은 먼저 돼지 사육공장을 찾는다. 헌데 외로움을 타는 새끼 호랑이보다 만나기 힘든 것이 돼지였다. 무슨 얘기일까? 2011년은 구제역으로 온 나라 소·돼지가 살처분 된 직후였다. 그는 당시 사육공장 방문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증언한다. 우여곡절 끝에 촬영 허락을 받아낸 사육공장 한 곳. 그곳에서 만난 돼지들은 귀와 꼬리가 잘려져 있었다. 주인은 스트레스로 서로의 귀와 꼬리를 물어뜯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돼지는 몸을 돌릴 수 없는 칸막이(스톨)에서 유전자조작사료를 먹고 6개월 만에 180kg 비육돈이 된다.

여기까지 읽고 황윤이 채식주의를 찬양하고 육식주의를 비난한다고 오해하는 분은 없을 것이다. 글쓰기를 계속하자면, 황윤의 다큐멘터리는 답을 제시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첫 번째로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잔인하거나 작위적으로 정의를 논하지 않는다. 보통의 다큐멘터리의 경우 도축장으로 끌려 간 돼지를 잡은 다음 숏 뒤에는 어김없이 도살하는 장면이 붙는다. 얼마간의 모자이크 처리 차이가 있을 뿐, 피는 바닥에 쏟아지고 비명소리는 여과 없다. 하지만 황윤은 도축장으로 끌려가는 돼지와 베란다 창밖으로 퍼붓는 눈을 바라보는 두 돌 된 아들의 뒷모습을 오버랩 시킨다. 두 번째로 동물인권에 대해 으름장 놓지도 않는다. ‘작별’에서 인간에게 동물이란 ‘자연적인’ 만족감을 채워주는 전시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려주었고, ‘어느날 그 길에서’는 개발로 인해 서식지와 유리된 동물이 만날 수밖에 없는 도로 위 살풍경을 무섭도록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잡식가족의 딜레마’는 이 두 개의 시선을 종횡하며 융합한다. 요컨대 개와 호랑이와 돼지의 생명의 무게가 다르냐는 것이다(인간과 비교하는 게 아니다). 황윤의 다큐멘터리가 보편적 호응을 얻는 지점이다. 목소리 높인다고 잘 들리는 게 아니라 발음이 정확할 때 뜻이 제대로 전달되는 법, 황윤의 영화는 정확한 발음의 성우와 다르지 않다.

동물만큼 가족과 아이를 사랑하고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황윤은 영화 중반 채식주의를 선언한다. 내가 먹을 걸 선택하는 권리가 내겐 더 중요하다며 아내의 채식주의에 반기를 들던 남편(그는 야생동물수의사다.)도 조류독감으로 인한 소용돌이 속에서 결국 ‘먹는 것에 대한 철학의 부재’를 지적한다. 공장식축산방식에 관한 고발보다 인간 사유의 부재를, 사유의 부재보다 생명 사랑을 앞에 둔 황윤에게는 오대산 첩첩산중과 가정 식탁 사이의 물리적 간극을 좁히는 것이 중요했다.

그로부터 8년, 경기도 파주를 중심으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시작됐다는 뉴스가 들렸다. 백신이 없어 격리 즉 살처분만이 유일한 방역이라는 전문가의 말도 보태졌다. 사람과 동물 할 것 없이 온 나라가 시끌벅적하다. 인간과 동물을 비교하고 가축과 야생동물을 비교하며 선후를 정하고 중요성을 논하기 십상인 화두 앞에서 여전히 황윤은 묵묵하다.

백정우ㆍ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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