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우의 줌인아웃] ‘아워 바디’ …​​​​​​​욕망을 욕망하는 카메라
[백정우의 줌인아웃] ‘아워 바디’ …​​​​​​​욕망을 욕망하는 카메라
  • 백정우
  • 승인 2019.12.12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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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여름, ‘타락천사’ 촬영장. 왕가위 감독은 콤비인 카메라맨 크리스토퍼 도일이 광고 촬영으로 시간을 낼 수 없자 촬영감독으로 리판빙을 부른다. 그러나 리판빙은 여주인공 마스터베이션 신에서 이가흔의 손가락을 잡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 장면은 결국 크리스토퍼 도일이 와서 한 번에 해결한다. 훗날 왕가위는 “크리스는 뱃사람이고 리판빙은 군인 같은 사람이었다. 리판빙은 훌륭한 카메라맨이지만 그의 본성이 이가흔의 손가락 있는 곳을 쳐다보지 못하게 했다.”고 술회한다.

8년째 준비한 행정고시를 포기하고 친구 회사에서 아르바이트생을 거쳐 인턴이 되었으나 한순간 모든 걸 접은 여성이고 딸이면서 언니인 서른한 살 청춘 자영의 이야기 ‘아워 바디’. 우리는 영화의 엔딩 시퀀스를 주목해야한다.

사회적 관계와 제약에서 마침내 자유로워진 몸. 감독은 아무도 침투하지 않을 공간에 들어온 자영의 몸에 카메라를 얹는다. 햇살 가득한 특급호텔 스위트룸에 홀로 선 자영이 브래지어를 벗는다. 고풍스런 카우치에 누워 자위에 빠져드는 자영의 손. 가슴을 파고드는 손과 청바지 지퍼를 내리고 속으로 들어가는 손이다. 두 손을 비추는 전신 쇼트에 이어 배꼽과 구부러진 발가락을 잡는 카메라. 햇살 가득한 창밖을 응시하는 자영을 잡은 뒤 턴하면서 정면 쇼트로 마무리한다. 자영의 몸이 하나의 풍경이 되는 순간이다. 여주인공 최희서와 이성은 촬영감독이 만들어낸 햇살 같은 엔딩이다.

한국영화에서 여성 자위 신은 여전히 구설의 대상이다. 심지어 신진 카메라맨이 자위하는 여배우 손까지 카메라를 밀고 들어간다는 것, 생각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때문인지 엔딩에 대해 불편함(굳이 필요했느냐는 의문)을 드러낸 글이 인터넷 곳곳에 있었다. 나는 되묻고 싶었다. 절망감에 회사 컴퓨터를 포맷하고 떠난 여성의 훼손된 자존심은 어떻게 치유될 수 있는지를. 그녀의 자위행위가 당신 내면의 근엄함을 난처하게 한 건 아니었는지 말이다. 한편으로 여성 신체이미지를 과도하게 소비한 건 아닌지 내 눈도 의심해야만 했다.

극중 시간을 되돌리면 성적판타지가 무엇이냐는 친구 물음에 고급 호텔에서 비싼 룸서비스를 시켜놓고 섹스하고 싶다, 고 대답한 자영이었다. 그런데 자영 옆에는 남자가 없다. 그녀와 관계한 남성들, 그러니까 남자친구는 낭만 없는 섹스 직후 이별을 통보했고, 달리기동호회 동생은 절망에서 비롯된 섹스 후에 영화에서 사라지며, 회사 부장은 인턴선발에 영향력 없는 평범한 인물로 기록된다(남자들은 각기 고시 공부와 달리기와 인턴선발과 연루되어 있으나 권력과 결부되진 않는다). 영혼까지 보듬고 교감할 남자가 이 사회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그녀가 자기 몸을 위로할 방법은 마스터베이션뿐이었을 터.

금욕을 강제하고 스크린에서의 노출마저 음탕하다 여기는 사회 통념 하에서, 관능의 만끽이 아닌 돈과 권력에 따라 욕망을 사고팔 수 있다고 믿는 우중충한 내면의 풍경 속에서, 자신이 무엇을 욕망하는지조차 몰랐던 인물이 처음으로 자기 몸에 주인 행세하는 ‘아워 바디’의 자위 신은 샛길로 빠진 모호한 이야기를 제자리로 돌려놓는다. 인간의 욕망을 욕망하는 카메라가 아니었다면 꿈꾸지 못했을 장면이다.

백정우ㆍ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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