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것-여백의 미
[문화칼럼]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것-여백의 미
  • 승인 2019.12.25 20:4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형국 수성아트피아 관장
경주 동궁과 월지(안압지). 신라의 흔적을 느끼며 산책하기에 참 좋은 곳이다. 야경이 특히나 아름답다. 잘 조성된 건축물과 연못이 야간 조명의 힘으로 더욱더 아름답다. 경주 여행의 필수 관람 포인트다. 정갈하게 다듬어진 길을 따라 걷노라면 이곳이 선경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리고 걷는 내내 은은히 들려오는 퓨전 국악음악. 이곳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이 음악은 조명만큼이나 이곳을 아름답게 변화 시키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한편으로 아쉽다는 생각도 든다. 아름다움을 극대화 시키는 것만큼이나 고요히 사색하며 걸을 수 있는 자유를 주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아무런 방해 없이 내 마음가는대로 바라보고 싶은 마음도 든다. 나를 계속 따라다니는 아름다운 음악소리가 뭔가 시선의 강요, 생각의 강요라는 느낌이 슬며시 난다.

신나는 댄스음악과 트로트를 언제나 무료로 들을 수 있는 곳. 그리고 음악에 맞춰 약간의 춤까지 자연스럽게 허용되는 곳. 바로 고속도로 휴게소다. 이런 음악이 싫다는 것이 아니다. 이런 퍼포먼스는 힘든 삶의 공간에서 벗어나 벗들과 함께하는 즐거운 여행길을 더 흥겹게 만들어준다. 운전에 지친 사람들에게 주는 즐거운 자극으로 졸음을 몰아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다만 왜 공공의 장소에서 그렇게 큰 볼륨으로, 원치 않는 사람까지 반드시 들어야만 하는가! 커피 한잔을 들고 휴게소 한켠에서 조용히 휴식할 권리를 누릴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너무 친절한 것 같다. 많은 공공시설물에는 이처럼 음악이 언제나 흘러나오는 곳이 많다. 이 공간에는 이런 음악이 있어야 한다는 과잉친절(?)의 서비스를 우리는 받는다. 몽골 여행 중 한국인이 운영하는 캠프(게르촌)에 잠시 머무른 적이 있다. 아무것도 없어서 아름다운 몽골. 초원의 나라 몽골에 자리한 그 캠프에는 경내 곳곳에 작은 스피커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곳에 머무르는 동안 나지막이 흘러나오는 몽골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는 음악을 들으러 간 것이 아니다. 그야말로 대초원에서 바람소리를 들으며 티끌 한 점 없는 하늘을 바라보고 쏟아지는 별빛을 맞으러 간 것이다. 우리의 친절하고 완벽해야만 하는 ‘그것’을 몽골의 한국인 캠프에서도 마주친 것이다.

나는 예전 여행길에서 소위 말하는 멍 때리는 시간을 참지 못했다. 모든 스케쥴을 꽉 채워야 했고 한곳이라도 더 보기위해 동분서주, 발을 동동 굴렀다. 그리고 기록을 남기기 위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에, 이렇게 애써서 다니고 모든 것을 사진에 담았지만 그 노력에 비해 남는 것이 훨씬 적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히려 유유자적한 여행의 여운이 훨씬 길고, 그냥 멍 때리다가 고요히 응시한 곳의 잔상이 훨씬 짙게 남았다. 눈을 감으면 다시금 그 시간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드는 여행은 후자였다.

본시 여백의 미는 우리의 것이었다. 그렇게 품격 있고 멋있는 문화 유전자를 타고난 우리가 이제는 비어있는 공간도 채워야만하고 비어있는 시간은 참을 수 없게 변화 된 것은 아닌지. 여백을 부족한 어떤 것! 미완성의 상태! 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지금 이 가치는 동서양에서 오히려 전도된 것 같다. 건축, 음악, 미술 등 문화전반에 걸쳐 바다 건너 그들이 여백의 미를 훨씬 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가끔씩 느낄 수 있다. 구글, 실리콘 밸리 등 첨단 산업이 있는 곳에서 명상공부가 활발하다. 오히려 우리가 이런 것에 대하여 더 보수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유전자 속에 있는 여백의 미를 다시 찾아와야한다. 이런 것이 자연스러운 우리의 문화다. 남의 떡만 크게 보고 상대적으로 우리의 여유를 너무 평가절하 했다.

음악에 있어 ‘노래하는 쉼표’라는 말이 있다. 모든 음을 꽉 채워서 노래하기보다 짧은 쉼표에서 소리는 내지 않지만 숨을 참고 다음 프레이즈를 노래하면 굉장히 선율이 아름다워진다. 라인이 훨씬 세련되게 들린다. 이처럼 쉼표는 음표보다 더 중요한 소리(?)를 낼 수 있다. 낮은 정적의 소리야 말로 참 소리라고 생각한다. 어디 음악뿐이겠는가. 비어있는 공간과 시간은 더 창의적 에너지의 원천이 될 수 있다.

그냥 가만히 두지 못하고 이렇게 해, 그건 안 돼 라고 아이들에게 ‘빈틈’없이 잔소리 해댄 나의 과거를 반성하며 가야금 산조를 듣는다. 진양조에서 한음이 덩 하며 흘러나오고 한참(?)이나 있어야 다음 음이 나온다. 음과 음 사이의 무음의 시간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 내 진즉에 알았더라면…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