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파바로티 1
[문화칼럼] 파바로티 1
  • 승인 2020.01.08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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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수성아트피아 관장
#영화

새해 정초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음악과 인생을 담은 다큐 영화 ‘파바로티’를 보았다. ‘다빈치 코드’의 론 하워드 감독 작품이다. 그의 노래만큼이나 인간으로서의 장·단점도 비중 있게 다루었다. 가족, 동료의 인터뷰는 매우 가치 있고 신선했다. 특히 U2의 ‘보노’의 말에는 진심과 감동이 있었다. 하지만 노래를 먼저 정한 뒤 노랫말에 맞춰 그의 삶과 스토리를 조명하다보니 Hi-C의 제왕 파바로티를 제대로 그리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는 영화였다. 매우 특별했던 한 성악가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더 스페셜 한 뭔가가 있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카루소 이후 최고의 테너, 예술적 상업적 두 방면 모두 위대했던 성악가를 다시 한 번 추억하기에 이 영화는 더없이 적절했다는 생각이다.

#거장의 탄생

1960년대 초반 파바로티가 데뷔 할 당시 스칼라 극장을 지배하던 테너는 ‘Il Do di Petto-일 도 디 –Š또(흉성으로 높은 도를 내는 사람)’라는 애칭으로 유명한 쟌니 라이몬디 였다. 라보엠 등 리릭한 레퍼토리에 있어서 최고였던 그는 역할이 겹치는 파바로티의 등장으로 깊은 한숨을 쉬었다고 한다. 라이몬디는 인격적으로도 매우 훌륭한 사람이지만 떠오르는 새로운 태양의 존재는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파바로티는 연주 여행에서 돌아오면 언제나 소리가 더 좋아져 왔다고 한다. 타고난 천재성에다 대단히 성실하고 영민한 젊은 테너는 무대를 통하여 많은 것을 받아들이고 나날이 성장했다. 그런 그에게 음악적, 비즈니스 면에서 결정적인 도움을 준 사람은 무대에서 함께 노래하던 한 소프라노였다.

#베스트 파트너

5~60년대 이탈리아 오페라 황금기를 주도하던 성악가들이 있었다. 특히 그들은 최고의 파트너와 함께 함으로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었다. 디 스테파노와 마리아 칼라스. 델 모나코와 레나타 테발디. 테너와 소프라노로 이루어진 이 조합은 하나의 공식으로 자리 잡으며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그들은 수많은 무대와 음반을 통하여 오페라 황금기를 이끌었다. 훗날 카레라스와 카바예 커플도 대단했지만 역시 파바로티와 서덜랜드 이 두 사람의 ‘빛’은 너무나 밝고 찬란하다. 이탈리아 성악가로서는 자존심 상할 수도 있는 얘기지만 파바로티 자신의 ‘호흡’은 벨칸토의 나라, 그의 모국 이탈리아의 선배들이 아닌, 호주 출신의 세계적 소프라노 ‘조안 서덜랜드’의 도움으로 완성 되었다고 했다.

#다이어트

전성기의 파바로티는 여든 넘어서도 무대에 설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그만큼 그의 노래는 완벽하고 특별했다. 그런 그가 일흔하나라는 나이에 세상을 뜬 것은 아무래도 그의 거대한 체구와 관계있었다. 그래서 그도 한 때 다이어트를 시도 했다. 그 결과 목소리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고 느낀 그는 다이어트를 접었다. 체중과 파워는 직접적 상관관계가 있다. 그래서 성악가들은 기름지고 힘 있는 목소리를 위하여 잘 먹고 잘 자야 한다. 즉 아름다운 목소리를 위하여 외모는 희생 시킬 수밖에 없는 것이다(일반적으로---).

#에피소드

영화에도 나오지만 그는 무대에서 구부러진 못을 주워야만 그날 공연이 성공한다고 믿는 징크스가 있었다. 못을 찾지 못하면 그는 아주 불안해했다. 그래서 스탭들이 일부러 못을 구부려 무대 뒤쪽 여기저기에 뿌려 놓곤 했다. 이를 눈치 챈 파바로티는 그때서야 그 징크스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우리가 볼 때 그는 노래에 있어 신과 같은 존재다. 입만 열면 소리가 나고, 자다가도 일어나 Hi-C를 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 그가 겨우 구부러진 못에 자신의 성패를 가름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가 세상으로부터 받는 엄청난 압박감의 무게를 나타낸다고 본다.

아무리 파바로티라 하더라도 항상 베스트 컨디션 일 수 없다. 이에 대한 스트레스는 보통사람의 상상을 초월 할 것이다. 무대 뒤의 그는 보기에 안쓰러울 정도로 전전긍긍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무대에 오르는 순간 표정이 변한다. 자신만만하게 관객을 바라본다. 약점을 장점으로 바꾸는 능력을 가진 사람. 그런 사람이 ‘대가’인 것이다. 그는 엄청난 부를 거머쥐기도 했지만, 투쟁하듯 살아왔다. 모든 예술이 그렇듯이 그의 음악 역시 눈물과 고통 속에 만들어 졌다. 이렇게 탄생한 그의 노래로 인해서 우리는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이것이 우리가 그에게 감사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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