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연장의 딜레마
고용연장의 딜레마
  • 승인 2020.02.1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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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형 행정학 박사·객원논설위원
문재인 대통령은 11일 고용노동부의 신년 업무보고 자리에서 고용연장의 필요성을 언급하였다. 그동안 정부 부처 간에 급격한 저출산 고령화로 경제 동력이 상실될 우려로 인해 현재 60세로 정해진 법정 정년의 연장 논의가 있었으나, 이로 인한 청년 실업의 증가문제와 맞물린 찬반의 논란으로 수면아래 가라앉아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대통령이 직접 고용(정년) 연장 본격 검토를 언급하면서 작년 9월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사실상 정년 연장 방안인 계속고용제도 논의가 다시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당초 기재부는 “이 제도를 당장 도입하는 것은 아니고 2022년부터 도입 여부와 시기를 논의하겠다는 것”이였지만, 대통령이 이날 본격 검토를 지시함으로써 그 논의의 시기가 앞당겨질 전망이다.

정년 연장의 일환인 계속고용제도는 기업에 60세 정년이후 일정 연령까지 고용 연장 의무를 부과하는 일본의 제도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초고령사회인 일본에서는 노인 빈곤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자 ‘고령자 고용안정법’을 개정해 2013년부터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즉 기업이 재고용(퇴직 뒤 재계약), 정년 연장(정년을 65세로 연장), 정년 폐지(정년 없이 계속 고용) 중 하나를 골라 원하는 근로자 모두 정년을 연장해줌으로써 법정 정년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60세지만 실제로는 65세까지 정년을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 제도는 권고가 아닌 의무 조항으로 규정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을 때 50만 엔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고 있는데, KOTRA에 따르면 일본 대기업의 99% 이상 이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일본에서 이 제도가 나름 성공을 거두게 된 이유는 청년 실업문제가 해소된 상황 속에서, 정년 이후에도 일할 여력이 있는 근로자들은 이직(移職) 걱정 없이 계속 일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업은 소위 단카이 세대(1차 베이비붐 세대. 1947~1949년생)의 대규모 은퇴로 부족해지는 일손을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는 정년이 늘어남에 따라 연금 지급시기 또한 늦출 수 있어 복지비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이 서로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제도가 비록 일본에서는 나름 성공한 제도로 우리가 벤치마킹을 해왔지만 적용하기에 앞서 우리의 사정은 일본과 다르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는 2020년부터 10년 동안 생산인구가 연평균 32만 5000명씩 감소하는 반면, 65세 이상의 고령 인구는 연평균 48만 명씩 늘어나 2029년에는 노인인구가 1252만 명에 달해 전체 인구 5명 중 1명은 노인인 ‘초고령사회’가 될 것으로 통계청은 전망하고 있다. 이 경우 기초연금이나 노인장기요양보험 등 고령층에 대한 재정 의무지출은 연평균 14.6%씩 늘어나게 된다. 따라서 노인 빈곤문제와 이들에 대한 재정 의무지출을 감소시키기 위해서라도 계속고용제도는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제도의 당위성이나 명분에만 치우쳐 무조건 시행할 것이 아니라, 시행에 앞서 먼저 해결할 우선과제가 없는지 대해 고민하고, 우선순위를 정해야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즉 고령자들에 대한 직무설계나 임금체계 개편 등과 같은 문제들이 선행적으로 해결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계속고용 연장을 통해 정년만 연장할 경우 오히려 고용시장에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특히 청년 고용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게 되어 세대 간의 갈등을 가져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는 우리의 경우 2016년 정년 60세 의무화를 시행한 뒤 청년실업률이 7%대에서 9.8%로 급등하였다는 통계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호봉제로 대표되는 임금체계의 개편 논의도 마찬가지이다. 나이와 연차에 따라 연공서열 성격이 강한 현행 임금 체계에서는 기업이 인건비 부담을 이유로 단지 분기별 1인당 30만원 지원금을 준다고 해서 계속고용제도에 적극 동참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출산장려금을 준다고해서 출산율이 높아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어찌되었던 대통령이 고용 연장제도를 언급한 만큼 정부에서는 일단 ‘정년 연장’과는 무관하다며 기업의 정년 후 ‘계속고용’을 적극 장려하는 쪽으로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저출산 고령화와 4차 산업 시대의 도래에도 불구하고 우리 경제가 동력을 잃지 않고 지속적인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고령화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방안으로 정년 연장과 함께 계속고용제도의 도입 논의는 필요하다.

그러나 불과 총선을 두 달 남짓 남겨두고 있는 시점에서 대통령이 이를 언급한 점에 있어 많은 국민들은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대북문제가 교착상태에 빠져 있고, 청와대의 많은 참모들이 지방선거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되는 등 정치적으로 난관에 빠지게 되자 국면 전환의 일환으로 언급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만약 그러하다면 우리 경제의 기본 틀을 변화시키는 중차대한 문제를 단순히 정치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정책실패를 가져오는 우를 범하게 될 뿐이다. 아니기만을 믿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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