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봄날에 그리운 맛
[문화칼럼] 봄날에 그리운 맛
  • 승인 2020.04.01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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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수성아트피아 관장
김치가 가장 맛있을 때? 배추가 너무 비싸 김치가 금치로 불릴 때! 밥 때면 자꾸만 젓가락이 가는 금치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반찬이다. 그리고 김치가 다 떨어져 갈 때! 요즘이야 사시사철 김치를 사서 먹는 사람이 많지만, 예전에는 김장 김치로 겨우내 그리고 이듬해 봄까지 먹었다. 이맘때쯤 김치가 다 떨어져 갈 때는 그 맛이 특히 각별하다.(봄에 먹을 김치는 소금을 많이 쳐 매우 짜다. 그래도 맛나다.) 이처럼 뭔가가 부족하고 귀할 때 그것은 언제나 평소 이상의 값어치가 된다. 요즘처럼 일상이 정지된 시절에는 평범한 하루가 너무나 소중하고 그립다. 가끔 혼자서 또는 벗들과 함께 봄날이면 찾던 그 맛들을, 지금 마음대로 찾아 갈 수 없기에 더욱더 그리워하지 않을 수가 없다.

# 구룡포 전복 도매집-전복 모둠

내 입맛에는 시내 이름난 횟집이라 할지라도 전복회는 별로다. 대부분 조금은 비리기 때문이다. 구룡포의 이집 전복을 처음 접했을 때, “그렇지 이거지” 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구룡포 부둣가 허름한 이 가게의 음식은 원칙에 충실하다. 구이도 특별하다. 짭조름하게 구워 접시에 생김을 깔고 내놓는 구이의 맛은 궁극의 미각이다. 이집의 특별함은 전복죽에 담겨있다. 전복을 큼직하게 썰어 아끼지 않고 듬뿍 담은 죽은 고소한 맛과 씹는 맛이 일품이다. 봄바람이 부는 바닷가, 봄 햇살에 은빛 비늘이 반짝이는 구룡포 바닷가의 이 집은 그리운 내 마음의 맛 집이다.

# 월포 해수욕장 15번 횟집-매운탕

물 회로 이름난 이집의 진정한 가치는 매운탕에 있다. 회를 주문하면 따라 나오는 매운탕은 제법 많은 살이 붙은 뼈, 머리 등이 푸짐하게 들어있다. 고추장을 베이스로 한 매운탕은 최고다. 국물을 남기는 사람도 여기서는 바닥을 보고야 만다. 회를 배불리 먹고 난 다음 뽀얀 쌀밥과 함께 먹노라면 화룡점정이라고 표현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김치 역시 쉽사리 맛볼 수 없는 시원함이 특별하다. 참가자미 회가 특히 맛있는 이집은 날씨에 따라 생선이 없을 때가 있기에 미리 전화로 확인해야 한다.



# 강릉 성원 식당-곰치국

이맘 때 쯤 되면 남해안에서는 곰치국을 더 이상 맛볼 수 없다. 철이 일찍 끝나 버린다. 그것도 모르고 남쪽바다를 찾았다가 헛걸음치기도 했다. 반면에 동해안에서는 여름철에도 먹을 수 있다. 십 여 년 전, 강릉에서 오페라 공연차 일주일 정도 머무른 적이 있다. 아직 먹어보지 못한 곰치국을 맛보고 싶어 물어물어 찾은 성원식당. 메뉴는 하나뿐이었다. 들어오는 사람 수대로 큰 그릇에 듬뿍 담아 내온다. 아! 그것은 꿈에도 잊을 수 없는 진미였다. 김치를 베이스로 싱싱한 물곰(물메기)이 가득 든 곰치국은 객지 생활에 지친 몸과 마음을 한 순간에 녹여버린다. 그 후론 가지 못했지만 가끔씩 전화는 지금도 한다. 영업은 계속하고 있는지.

# 곰소 항-주꾸미

곰소 항은 젓갈로 유명하다. 드넓은 곰소만 갯벌에는 온갖 종류의 해산물이 지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근에는 염전도 즐비하다. 그러니 좋은 젓갈이 많을 수밖에.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늘 나에게 위로를 주고, 힘을 북돋아 주는 한 스님을 만나러 부안을 가끔씩 들르곤 했다. 그래서 이곳을 다니러 온 김에 곰소 항에서 가끔씩 식사를 한다. 짠 젓갈은 별로 즐기지 않지만, 바지락 죽 등 비교적 가벼운 음식을 먹곤 한다. 그러던 어느 봄날 이맘 때 쯤 처음으로 제대로 된 주꾸미를 접했다. 탱글탱글하면서도 부드러운 살 그리고 알이 가득한 주꾸미는 잊을 수가 없다.

# 통영-멍게 비빔밥

올해는 코로나19로 취소되었지만 해마다 이맘 때, 통영에서는 국제음악제가 열린다. 세계적 연주자, 듣기 힘든 레퍼토리가 있기에 가능하면 때 맞춰 찾는다. 음악회와 더불어 이곳을 기쁜 마음으로 찾게 되는 것은 맛난 것이 가득한 고장이기 때문이다. 시장을 어슬렁거리다 이것저것 군것질도 하고, 공연이 끝난 후 지인들과 유명한 통영 다찌집에서 소주잔도 기울인다. 하지만 나에게 최고의 음식은 멍게 비빔밥이다. 집집마다 조금씩 그 맛이 다르지만 공통점은 멍게 젓갈이 아닌 싱싱한 활 멍게를 쓴다는 점이다. 바다향이 가득한 멍게 비빔밥으로 배를 불리고 봄바람이 산들산들 부는 통영 바다를 바라보노라면 가슴에는 행복이 가득해진다.

그러고 보니 죄다 해산물이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자중자애 해야 하는 이 시절에는 봄 바다가 더 아련하고 그곳의 싱싱한 갯것이 그리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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