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무제
[문화칼럼] 무제
  • 승인 2020.04.29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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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수성아트피아 관장
요즘 날이 많이 길어져 저녁 7시가 되어도 해가 남아 있다. 아직 하늘이 훤한데도 아파트 주차장엔 차 대기가 마땅찮다. 모두들 일이 끝나면 바로 귀가를 하는 게 자연스러워 졌다. 그건 불금이라도 마찬가지. 저녁상을 물린 금요일 밤의 심심한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즐거움이 생겼다. 돌아온 ‘팬텀싱어’ 시즌3. 2017년 이후 3년 만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이기에 약간의 스릴이 있다. 게다가 시즌1, 2와 비교해 참가자들의 커리어가 눈에 띄게 화려하다. 어느 프로듀서(심사원)의 말마따나, 앞 사람의 노래를 잊게 만드는 힘. 앞사람뿐이 아니다. 팬텀싱어 시즌1, 2는 물론이고 최근 우리를 웃고 울렸던 ‘미스터 트롯’마저 기억 속에서 지우는 힘을 가진 참가자들이 많다.

이 프로그램의 주를 이루고 있는 성악가들의 면면이 대단하다. 아직 정상에 서지는 않았지만 그 길로 접어들었고, 목표점이 멀지않게 보이는 친구들도 있다. 그리고 뮤지컬 무대에서 활동하는 몇몇은 가창력은 물론이거니와 표정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힘을 가졌다. 게다가 국악계 소리판에서 확실히 자리 잡은 젊은이도 눈에 띈다. 그 중 나는 카운터 테너 윤진태의 노래에 큰 감동을 받았다. 내 귀에 그는 흠잡을 곳이 없었다. 경쟁에서 끝까지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바로크 음악 무대를 비롯하여 자신의 영역에서 발군의 활약을 할 것이다. 뮤지컬 배우 신재범은 잘 갖춰진 노래 실력에 감정전달력이 특히 대단하다. 소리꾼 고영열은 이미 자신만의 컬러를 갖춘 실력자답게 예의 자신의 주특기인 본인 피아노 반주에 맞춰 판소리 한 대목을 선보여 우리음악의 새로운 맛을 보여 줬다.

다만 나의 입장에서는 마냥 즐겁게 볼 수만은 없다. 도전하는 젊은이들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씁쓸? 의문? 미안함? 여러 가지 복잡한 심정이었다. 이미 자기 영역에서 앞서 있는 젊은 음악인들 입장에서는 이런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거다. 흔히 말하듯 잘해야 본전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하는 자세는 칭찬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자신의 영역에서 벗어나 크로스오버 무대에 서고자 하는 것에 마냥 박수를 칠 수 만은 없었다. 각종 권위 있는 콩쿠르에 입상한 전도양양한 유망주, 그 어려운 관문을 뚫고 시작한 유학생활을 접는 것이 바람직한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에게는 무대가 간절하다. 그래서 공연장에서 일하는 나 같은 입장에서는 무대를 찾아 도전하는 젊은이들이 멋있게 보이기도 하지만 미안한 마음이 함께 든다. 또한 오롯이 자신만의 길을 가지 않고 살짝 비틀어 가고자 하는 것에 우려의 마음도 든다. 크로스오버에 어울리는, 그길로 가야만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많은 젊은 음악인이 이러한 무대를 자신의 목표로 삼고 있지나 않은지 걱정이 든다. 왜냐하면 어느 분야든지 잔이 차고 넘쳐 풍성해 질 때, 진정한 크로스오버가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기초예술에 천착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어렵고 힘든 길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우리 때에 비하면 확실히 노래를 잘 한다. 내가 학교에 다닐 시절에는 고음을 잘 내는 사람이 많지도 않았지만(일반적으로), 소리가 좁아지지 않고 통으로 높은 음을 내는 사람은 더 귀했다. 그런데 지금은 대학생들도 거침없이 소리를 잘 내고, 게다가 기름지기 까지 하다. 음악도 많이 세련되었다. 우리 때에 비해서 각종 영상 자료도 이제는 정말 쉽게 구할 수 있어 그런가? 라고 생각해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세기 초반의 카루소, 티타 루포, 샬리아핀 같은 전설들은 말할 것도 없고 5~60년대 오페라 황금시대의 테너들 ‘디 스테파노, 델 모나코, 코렐리’ 같은 대가들을 지금 동서양을 막론하고 찾기 어렵다. ‘카루소의 재래’라는 격찬을 받던 사람도 어느 샌가 사라지고 없다.

넘치는 정보와 좋은 영양상태 그리고 체계적 교육 시스템에도 불구하고 과거를 뛰어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음은 왜일까. 요즘 세대처럼 영상자료·녹음 등, 자기 내면이 아닌 다른 무엇을 통해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매우 객관적인 마음의 눈으로 스스로를 깊이 응시할 줄 아는 능력. 즉 고요히 자신을 관찰할 때 생기는 힘을 그 시절에는 다들 가졌었다. 그런 눈을 가진 예술가가 힘들지만 한길로 묵묵히 나아갈 때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위대함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3년 만에 돌아온 팬텀싱어, 축적된 시간만큼 뛰어난 노래꾼이 많다. 이러한 프로그램을 통해서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기를 선배의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응원한다. 그런 한 편 외로이 한길만 가고 있는 선·후배 동료들이 고맙고 더 마음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너무 잘하는 팬텀싱어들을 보노라니 공연히 드는 걱정. 나이가 든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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