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한 소년에 대한 추억
[문화칼럼] 한 소년에 대한 추억
  • 승인 2020.05.13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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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수성아트피아 관장
강풍이 불 땐 산불이 쉬 잡히지 않는다. 꺼질 듯 했는데 날이 밝은 후 보면 산불은 다시금 맹렬히 타오른다. 최근 코로나19 지역 감염이 며칠째 보이지 않았다. 특히 대구에서 사흘, 나흘 연속 추가 확진자가 나타나지 않아 모두들 희망에 부풀었다. 그러나 강풍에 노출된 산불마냥 또다시 지역 감염자가 발생해 우리를 실망케 하고, 걱정에 들게 한다. 글로벌 전문가들의 예측이 아니더라도 이런 드센 코로나로 인한 우리의 삶은 지금까지와는 다를 거라는 걸 알고 있다. 결국은 극복되리란 건 역사가 증명한다. 그러나 이전과 이후의 문화가 달라지리란 것 또한 알고 있다.

내가 이탈리아로 유학을 간 90년대 초반은 음악해서 사는 것이 지금보다 훨씬 나았다. 그래서 웬만하면 다들 유학을 갔다. 유로화 탄생 전 유럽은 환율까지 좋아 다들 유학생활 황금기(?)를 누렸다. 시간이 지나 부와 명예가 기다릴(?) 한국으로 돌아왔으나 곧 IMF사태가 닥쳤다. 사회는 소용돌이 쳤고 그야말로 거품이 빠졌다. IMF 이전과 이후의 가치 기준과 살아가는 길이 달라진 것이다. 그전의 황금빛이 거품의 굴절작용으로 실제보다 훨씬 크게 빛난 줄 뒤늦게 깨닫게 됐다. 많은 어려움이 사회 곳곳에 있었지만, 일정부분 비정상의 정상화도 사실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시절에 최적화 된 삶을 찾아 나가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치부하기에는 교육, 경제, 문화 전반적으로 공황상태에 가깝다. 그래서 아주 힘든 시간을 다들 보내고 있다.

소설가 김훈의 글을 두고 누군가는 말했다. “명문장에 밑줄을 긋노라면 그의 글 대부분에 그렇게 해야 된다”. 그의 글이 결코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나로서는 읽기가 결코 쉽지가 않다. 왜냐하면 표현이 너무나 현란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찬란한 글이지만 이야기 전개가 궁금한 나에게는 곱씹으며 읽어야 하는 시간이 오히려 답답한 것이다. 이제 나처럼 성미 급하게 달려들게 아니라 김훈의 글을 하나하나 되새기며 음미하며 살아야 하는 문화로 접어드는 것 같다. 성장지상주의, 성공 지향적 가치관은 거대한 벽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이제는 소박함에 대한 것, 작은 것에 대해 그리고 천천히 흘러가는 것에 눈을 뜰 수밖에 없다.

꽤 오래 전 몽골에서 한 소년이 한 말이 생각난다. 청년기에 접어 들 때 쯤 다들 원대한 꿈을 꾼다. 그런데 이 소년은 소박하고 가난한 삶의 행복에 대하여 이야기 했다. “여기에서는 돈이 없어도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 같다. 단순하고 소박하게 자연에 순응하며 사는 게 참 평화로울 것 같다”, “몽골을 사랑한다.”며--- 이 소년은 척박해만 보이는 몽골에서 무지개를 발견했나 보다. 아무것도 없는 초원에서 풍요를 보고, 거센 모래바람이 끝없이 부는 사막에서 희망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능력은 가난한 마음, 소박한 심성을 가진 자 만이 보고 들을 수 있겠지. 이런 것을 이 소년은 일찍 깨달았나 보다.

미니멀 라이프, 소확행에 대한 찬사를 다들 했다. 이제 이런 것들과 많이들 친해진 것 같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이런 생활 패턴을 통해 오히려 새로운 가치를 찾기 시작했다고 느낀다. 많은 이들의 말에서 그런 것을 느낀다. 책읽기의 즐거움에 대해 얘기들을 한다. 나 역시 사놓고 몇 년간 책꽂이에 그냥 꽂혀만 있던 것들을 읽게 됐다. 그것도 과거보다 천천히 읽어 나가게 된다. 집에서 스스로 요리하는 기쁨을 찾아가는 사람들 얘기도 많이 들린다. 어쩌면 생존의 기로에 서 있을 수밖에 없는 사람에게는 참 한가한 소리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어쩌겠는가, 우리는 길을 찾을 수밖에 없고 가보지 못한 길이라도 희망과 담대함으로 갈 수 밖에.

소박하고 가난한 심성을 가진 사람은 욕심이 없으니 두려움도 없을 거라 생각한다. 경험해보지 못한 지금의 세상을 살아가면서, 힘든 가운데 이런 가치를 찾아 희망의 싹을 띄운다는 것은 지혜로움이다. 몽골에서의 그 소년처럼 낮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희망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것은 작은 것을 크게 만들어 주는, 무심히 지나치던 사소한 것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능력을 가진 아름다운 눈이다.

한 소년에 대한 추억을 회상하며, 나 역시 가난하고 소박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앞으로 닥칠 일, 내가 살아가야 할 노정에 두려움을 느끼지는 않을 것 같다. 황량한 몽골 초원에 무지개가 피는 것처럼 여기 우리 곁에도 무지개가 떠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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