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 없는 여당
브레이크 없는 여당
  • 승인 2020.07.01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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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형
행정학 박사, 객원논설위원


국회 법사위원장을 쟁취하기 위한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간의 기 싸움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 지난 30년간의 관행을 무시한 채 수적 우세를 바탕으로 밀어 붙인 민주당의 일방통행으로 끝이 났다. 즉 원구성 협상이 시작된 1988년 이후 32년 만에 총선에서 승리한 민주당이 통합당과의 협상결렬을 핑계 삼아 승자독식의 형태로 민주당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야당 몫의 국회부의장과 국회의장이 임의로 위원을 배정할 수 없고 국회부의장 및 각 교섭단체 대표가 협의해서 선임해야하는 정보위원장을 제외한 17개 상임위원장 모두를 차지한 것이다. 이번 더불어민주당의 일방적인 국회 원구성은 그동안 소위 정치판에서 규정과 원칙보다 협상이라는 미명하에 소중이 여겨져 왔던 관행 · 전통 · 소통은 실종되고 대립과 갈등만 상존하게 되었다. 민주화가 이룬 30여 년 국회의 전통이 민주화 세력을 자처하는 민주당에 의해 무너졌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된 책임을 여야가 서로 상대방에게 전가하고 있으나, 향후 국민들의 삶이 어떠하냐에 따라 냉엄한 역사적 심판이 내려질 것이다. 민주당은 176석에 범여권까지 포함하면 190석에 육박한다. 이러한 수적 우세를 바탕으로 민주당은 소위 ‘일하는 국회’를 만들겠다는 의욕으로 넘쳐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옛말과 같이 일하는 것도 좋지만 지나치게 졸속으로 처리하거나 잘 못된 일은 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국회상임위원장을 독식한 후 민주당의 행보는 마치 브레이크 없는 것과 같아 우려스럽다.

정부가 독촉한다고 해서 행정부 견제가 그들 자신의 존재이유인 것을 망각한 채, 국회 예산정책처가 여러 가지 문제점을 지적한 35조3천억 원 규모의 3차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한 예비 심사를 하루 만에 정부 원안보다 3조1천억여 원이나 증액시켜 끝낸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알 수 없다. 아무리 정부를 믿는다 하더라도 국민들의 피와 땀이며 우리 후대들의 고혈이 될지도 모르는 수조원에 달하는 국채를 발행하면서 편성한 예산을 국민들이 보기에 아무런 고민 없이 단시간에 심사하고 통과시키는 행태는 민주당 국회의원들의 존재이유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오죽하면 범(汎)여권으로 분류되는 정의당 의원이 졸속 심사에 항의해 중간에 회의장을 박차고 나오기까지 했겠는가?

일반적으로 처음 상임위가 구성되면 소관부처로부터 주요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의원들이 상임위활동을 하는 것이 통례이다. 하물며 이번 21대 국회는 초선의원의 비율이 과반수를 넘고 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35조가 넘는 추경을 심사하면서 많은 상임위에서 업무보고도 없이 불과 한두 시간 만에 그 많은 예산안을 심사하고 통과시켰다고 하니 예산안을 한번 읽어보기나 했는지 알 수 없다. 이러하니 거수기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과거 유신시대도 아니고 참 민주적이다.

이번 추경안 처리 과정을 보면 앞으로의 민주당에서 국회운영이 어떠하리라는 것은 불 보듯이 뻔하다. 무엇이든 힘으로 밀어붙이고, 방해되는 것이 있으면 법을 개정해서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공수처 출범에 대해서도 그러한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7월 15일까지 공수처장 후보를 추천해달라는 공문을 국회의장에게 보냈지만, 작금의 국회 사정을 보면 유일한 야당 교섭단체인 통합당에서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 2명을 추천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이에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통합당이 공수처 출범을 방해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신속하게 공수처를 출범시키겠다”고 하고 있다. 또한 민주당은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로 여야 간에 추천의 몫을 배분해 놓은 헌법재판관, 방송통신위원회 등 국회가 추천하는 헌법기관과 행정부 산하 위원회의 여당 추천 몫을 높이겠다고 한다. 즉 이 기관들에 대한 국회 추천권을 여당이 장악하겠다고 하고 있다. 과히 무소불이의 힘을 가진 정당이다.

우리는 지금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위기 속에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코로나로 인한 마이너스 경제성장과 고용대란, 심리적 불안에 시달리고 있고, 비핵화 해법 없이 표류 중인 남북, 북·미 관계, 백약이 무효인 부동산 정책 등등 국민들의 불안과 분노는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되어 있다. 건들이면 터질 지경인 것이다.

따라서 그 어느 때보다 국정의 파트너인 야당과의 대화·타협이 절실한 시점이다. 여권에선 차기 대선 정국이 시작되기 전에 정책성과를 내야 할 시간이 1년도 남지 않았다고 보는 조급함이 있을 수 있지만, 힘으로만 밀어붙이다가는 결국 그 힘에 스스로 무너지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북한 정권 대하듯 야당을 대하면 모든 것이 만사형통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은 왜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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