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예술발전소, 기획전 ‘수창동 스핀오프’ 초대작가 윤우진
대구예술발전소, 기획전 ‘수창동 스핀오프’ 초대작가 윤우진
  • 황인옥
  • 승인 2020.08.06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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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렁이는 파도에 희로애락 담았다”
변화무쌍한 삶의 감정 극대화
다양한 선·색상 사용 ‘시그니처’
인간관계의 복잡한 측면 전달
16일까지 윈도우 갤러리 설치
윤우진_수창동스핀오프2
윤우진 작가의 전시가 열리고 있는 예술발전소 1층 윈도우 갤러리 모습. 윤우진 작품 ‘Life’연작이 걸려 있다.

바람과 공기의 흐름에 의한 하나의 현상에 불과한 파도에서 금방이라도 물비늘이 뚝뚝 떨어질 것 같다. 저와 같이 생물처럼 퍼득이는 파도를 본 적이 있던가? 그야말로 기세가 등등하다. 거대한 용(龍)이 승천을 앞두고 땅에서의 마지막 기운을 끌어 모으는 형국이다. 작가 윤우진의 작품 ‘Life’.

작가가 “삶보다 생(生)으로 해석해 달라”고 주문했다. “삶보다는 생이 더 역동적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생(生)에서 현재진행형의 역동성을 느낀다고 할까요?” 해석컨대 파도가 곧 생이라는 의미였다.

시인 김춘수는 자신의 시 ‘꽃’에서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꽃이 되었다”고 노래했다. 서양화가 윤우진에게 꽃은 풍경이다.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을 스쳐 지나는 풍경, 그 중에서 파도를 자신만의 조형언어로 번역하며 강렬한 존재감을 부여한다. “계속 변화하는 인간의 생을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파도에 이입하고 싶었어요.”

파도를 그리고 ‘Life’라는 제목을 달았다. 파도에서 인간의 삶을 발견했다는 반증이다. 작가도 같은 맥락의 말을 했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변화무쌍한 삶의 모습과 다양한 감정들을 파도를 통해 표현하고 싶었다”고.

특히 생의 추동력으로 관계에 주목하고, 인간관계의 다양한 측면을 선과 색채에 은유하려는 쪽에 공을 들인다. 밀려갔다 밀려오는 출렁이는 파도의 움직임에 솟았다가 가라앉는 인간의 희노애락을 이입하려 한 것.

하나의 파도에 수십 개의 운집된 선(線)은 수많은 인간관계로 점철된 우리 삶의 동의어다. “40대가 되고 보니 개인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살았다고 생각했던 것이 뿌리 채 흔들렸어요. 좋은 작용이든, 나쁜 작용이든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성장하고 단단해졌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죠.”

작품 ‘Life’를 윤우진답게 하는 요소는 선 드로잉과 색채. 소용돌이치는 파도를 한 덩어리의 공간감으로 접근하기보다 많은 선들의 운집과 군무로 드러낸다. 선들의 집적으로 기운을 모아가는 듯한 형국에 다채로운 색채가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강렬한 기세로 얹힌다. 이는 관념화된 풍경의 전형이다.

작가가 “짙은 선과 강렬한 색채는 나의 시그니처”라고 했다. “사실적인 풍경의 형상과 색채의 묘사보다 관념적인 이미지에 새로운 색채와 움직임, 생명력을 불어넣으려 했어요. 그런 점에서 제 그림은 ‘주관적 풍경화’라 할 수 있죠.”

작가가 “선과 색은 내 회화 작업의 기질”이라며 선과 색에 대한 선호를 태생적인 기질과 연관 지었다. 대학 재학 때 사실주의 인물화를 그렸는데 유난히 많은 색이 표현되었다. 선 역시 마찬가지였다. 선을 썼을 때 훨씬 강렬한 존재감이 드러났다.

“심리적으로 힘들 때는 어두운 색과 강렬한 선을, 평화로울 때는 밝은 색과 부드러운 색을 쓰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그림과 제 인생이 같이 간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서양화이지만 동양화적 느낌이 짙다. 작업 과정도 동양화의 일필휘지를 떠올리게 하는 방식으로 단숨에 끝낸다. 내면 속 꿈틀대는 기운을 순간적으로 잡아내기 위한 방편이다. 선과 색의 즉흥성도 그 연장선에 있다. 이는 동양의 관념화와 정확히 일치한다.

작가가 “서양화가 대상을 관망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동양화는 화자와 대상과의 합일시”라며 “나는 후자 쪽이다. 정제된 화려함”이라고 밝혔다.

윤우진이 대구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대구예술발전소가 코로나19를 겪는 ‘대구’의 청년 작가들의 예술활동 기회 제공을 위해 기획한 ‘수창동 스핀오프’에 초대되고 제목을 ‘Life(생)-밀려오는 파도처럼’으로 정했다. 제목처럼 ‘Life’ 연작들을 마치 거대한 두 개의 파도가 반대 방향에서 밀려와 서로 등을 맞대고 있는 형국으로 작품을 걸었다. 윈도우 갤러리라는 집중도 높은 공간에 설치되어 존재감은 한층 높아지고 있다.

강렬한 형상과 독특한 표현방식에서 적지 않은 내공을 떠올리지만 사실 이 연작을 시작한 지 채 2년이 되지 않는다. 개인전을 2011년 이후 9년 만에 개최할 만큼 긴 휴직기를 가졌다. 작품활동이라야 지난 9년 간 단체전에 간간이 초대받는 것이 전부였다. ‘Life‘는 작가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작업과 멀어진 것은 경제적인 여건 때문. 대학원 재학시절부터 가창창작스튜디오 1,2기 작가로 활동했지만 전업 작가로 채 이름을 알리기도 전에 다른 선택지도 염두어 두어야 하는 상황 앞에 놓였다. 미술학원을 열고 내친김에 심리공부까지 한 것. 작업과 일을 병행하는 것이 힘에 부치는 것을 느끼고, 과감하게 일을 선택한 결과다.

하지만 “경제적인 독립을 이룬 후 그 기반 위에서 작업을 계속하겠다”는 작가로서의 꿈은 놓치지 않았다. 그 덕에 지금은 작업에 제대로 열정을 쏟고 있는 중이다. 다시금 작업에 매진할 수 있게 된 자극제는 역시 아이들이었다. “가르치던 아이들이 쓰고 버린 크레파스를 분쇄해 문지르면서 작업에 대한 불씨가 되살아났어요.”

지금은 파도가 주인공이지만 작가가 바라보는 대주제는 풍경이다. 산이든 나무든 사람이든, 어떤 자연이든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그가 “최근부터 또 다른 소재의 풍경을 시작했다”며 작업의 확장 가능성을 언급했고, 내친김에 “입체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고 했다. 입체는 버려진 나무 표면에 그림을 그리는 방식으로 드러난다. 지금은 자화상에서 확장해 타인을 대상으로 하는 인물화를 시작할 엄두도 내고 있다.

“움츠려 있었던 시간들이 아쉬웠던 만큼 새로운 시도도 마다하지 않고 열정을 더 불태우는 중이에요.”

작업에서 다양한 시도를 마다하지 않지만 공통으로 견지하는 분모는 역시 ‘선 드로잉과 색채’다. 이 두 요소를 통해 ‘생의 흐름과 순간들’을 기록한다. “작업을 하면서 10년 전보다 성숙한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되면서, 작업도 유연해진 것 같아요. 작업이 곧 작가 자신이라는 말은 진리인 것 같아요.”

전시는 16일까지 예술발전소 1층 윈도우갤러리에서.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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