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행복 기원 부모 마음 담은 ‘동양의 정물화’
자녀 행복 기원 부모 마음 담은 ‘동양의 정물화’
  • 윤덕우
  • 승인 2020.09.09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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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온의 민화이야기]기명절지도(器皿折枝圖) -행복을 담는 그릇-
옛 그릇·꽃 섞어 그린 그림
수복강녕 염원 길상의 의미
19세기 중반쯤 본격적 유행
청나라서 유입된 ‘박고도’
해학 등 한민족 정서 담아
독창적 화풍으로 발전시켜
바야흐로 결혼의 시즌이 돌아왔다. 시절이 수상하여 청첩장을 받고도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스럽기도 하다. 예전에 어머니들은 딸을 시집보내기 위해 혼수 장만에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다.

모란꽃이 수놓인 목화솜 이불에 유기그릇에 은수저에… 너무 옛날 얘기인가? 지금은 간편화되고 소재가 다양해져 요새 사람들이 보면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이야기이고, 꼰대스럽다고 핀잔을 받을 만 하겠다.

그래도 어머니가 자식의 행복과 건강, 평온을 기원하는 마음이야 지금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림 1>

민화- 기명절지도
<그림1> 작가미상 ‘민화-기명절지도’ (비단에 채색 각 폭 138.5X53.5cm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기명절지도란 보배롭고 귀중한 옛날 그릇을 그린 기명도(器皿圖)와 꺾어진 꽃, 풀, 채소 등 각종 화훼류를 그린 절지도(折枝圖)를 함께 그린 그림을 말하는데, 대게는 여러 소재들이 상징하는 다산(多産), 수복강녕(壽福康寧)을 기원하는 길상의 의미로 그려진다.

책가도에 등장하는 중국의 오래된 청동기, 도자기 꽃병, 찻주전자, 수석분재, 붓이 꼽혀진 필통 등에 모란, 장미 가지, 각종 열매가 달려 있는 나뭇가지, 잎채소나 열매채소들을 그렸는데, 이를 화병에 꼽거나 바닥에 늘어놓은 형식으로 나타내었다. 한마디로 지금의 정물화(靜物畵)라고 할 수 있다.

기명절지도가 본격적으로 그려지기 시작할 때는 19세기 중반 쯤 이었다.

이때는 진경산수화도 쇠퇴했고, 사의성(寫意性)과 즉흥성이 강한 중국의 남종화가 유행을 했다.

오원 장승업(張承業, 1843∼1897)은 중국에서 들여온 남종화 화첩을 보면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형식의 기명절지도를 창안하였고 근대 화단에서 크게 유행하였다.

장승업은 여러 쟝르의 그림을 두루 잘 그렸지만 특히 기명절지도를 잘 그렸다고 알려져 있다. 화가이자 미술사학자인 김용준은 「오원일사(吾園事)」에서 “그때까지 기명과 절지는 별로 그리는 화가가 없었던 것인데, 조선 화계에 절지, 기완 등 유(類)를 전문으로 보급시켜 놓은 것도 오원이 비롯하였다.”라고 하였다. 장승업은 자신을 후원하였던 오경연(吳慶然)의 집을 드나들며 중국의 여러 그림을 소화하여 조선의 기명절지를 하나의 유형으로 창안하여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림 2>

안중식-기명절지도
<그림2> 안중식 작 ‘기명절지도’ (19세기 후반 비단에 채색 각 46.2 X 211.4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심전 안중식은 오원 장승업의 제자로 알려져 있다.

고종의 총애를 받는 화가이면서 마지막 궁중화원이었다. 안중식은 도화서에서 전통 진채기법을 익혔고 중국에 가서 서양화법까지 배웠다.

화원풍의 그림도 그렸지만 스승의 영향으로 기명절지도도 많이 그린다.

이러한 흐름은 안중식의 화풍을 이어 받은 이도영까지 연결되다 조선시대가 끝나고 서양의 정물화가 들어오면서 아쉽게도 사라졌다.

기명절지화의 기원은 중국의 박고도(博古圖), 청공도(淸供圖)에서 찾을 수 있다. 박고도는 그릇에 꽂힌 꽃을 그리는 병화도(甁花圖)에서 비롯되었는데 북 송대에 고동기와 더불어 옛 도자기, 괴석 등이 더해지면서 박고도(博古圖)의 도상이 정립되었고 독립적인 화목(畵目)으로 발전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에 송으로부터 제기도(祭器圖)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으며, 조선 중기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박고물(博古物)과 박고취미(博古趣味)에 대한 인식이 나타나며 병화도(柄花圖)나 소과도(蔬果圖)가 그려지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기명절지화가 그려지게 된 데에는 조선 후기에 유입된 청대의 박고도(博古圖)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뜬금없지만 이번 주 문화계의 이슈는 방탄소년단(BTS)의 싱글앨범이 미국 빌보드 차트에 2주 연속으로 1위를 차지했다는 기사였다. 동양의 대중문화가 서양의 대중문화 시장에서 인정을 받았기에 그 의미가 남다르다. 미국을 필두로 서양에서 유행하던 곡조를 한국적인 특색으로 K-POP이라는 독창적인 장르로 발전했다는 점에서 이러한 근원은 우리의 그림 기명절지도에서 그러한 기류였다고 할 수 있다.

작년 봄 우연한 기회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된 조선의 근대 회화 명품전을 참관한 적이 있었다. 민화 역시 근대회화의 장르라는 것이 근대 화가들의 그림에서도 알 수 있었다.

특히 안중식은 섬세한 필치, 단정한 구성, 감각적인 채색을 사용하여 세련된 화풍의 기명절지화를 그렸고 지금의 눈으로 봐도 잘 그려진 한 폭의 정물화 같았다. 안중식이 발전시킨 공필 채색화풍의 기명절지화는 궁중회화로도 제작되면서 후대의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고 민화에서도 그러한 영향이 나타났다.

기명절지도의 화폭에 담기는 소재는 매우 다양한데, 크게 나누면 ‘고동기古銅器’로 불리는 중국 고대의 청동기와 꽃을 꽂는 화병花甁, 그리고 다양한 종류의 꽃과 밤이 달린 나뭇가지, 무와 죽순 같은 뿌리채소 등이 등장한다, 여기서 고동기古銅器는 중국 상(商) 주(周 )왕조 때 제례에 쓰이던 청동 기물로 그 중에서도 항아리처럼 생진 정(鼎)은 황제의 권위와 위엄을 상징하는 가장 상서로운 소재이다. 화병(花甁)은 보배로운 보병〔寶甁〕으로 음이 비슷한 ‘보평(保平)’, 즉 평안을 보존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기명절지도에 등장하는 꽃을 비롯한 식물은 매우 다양하다. 모란(부귀), 난초(자손), 국화(은일, 장수), 연꽃(다산, 군자), 복숭아(장수), 석류(다산) 등이 가장 자주 보이는 식물이다. 동물로는 물고기, 게 등 어해류가 있는데, 잉어(출세). 쏘가리(관직), 게(관직)가 자주 보인다. 그밖에 문방구류로는 벼루, 붓 등이 있는데, 이는 모두 출세나 선비의 고상한 문방취미 등을 상징한다.

자 이제 오늘날의 기명절지도를 보자.

<그림 3>

곽수연-당구풍월
<그림3> 곽수연 작 ‘당구풍월’ (장지에 채색 182 X 122cm 2010년 개인소장)

전통 민화의 기명절지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 된 곽수연 작가의 그림이다. 민화 안에 있는 기물의 상징성을 통해 옛 선조들과 현대인들이 소망하는 것이 어떻게 다르고, 시대가 변하면서 우리에게 소중하고 간직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져다주는지 생각하게 만드는 그림이다. 또한 옛날 조상들의 해학과 우리민족 고유의 정신, 현재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그림이기도 하다.

다시 결혼과 어머니의 혼수 장만 이야기로 돌아 가보자.

이제는 결혼풍속도 바뀌어서 스몰웨딩이니 셀프 혼수니.. 새로운 신조어가 등장하고 어머니의 혼수 장만도 예전처럼 과하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그래도 자식이 새로운 가정을 꾸려 자신의 독립된 인생을 살아간다는데 그 축하와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누구보다도 클 것이다.

<그림 4>
 

박승온- 채움1
<그림4> 박승온 작 ‘채움I’ (2016년 작 지본 채색 2016 부산국제아트페어 출품작)

필자의 현대적 기명절지도를 소개하고자 한다.

예전의 기명절지도에 등장하는 도상들의 의미를 사랑과 행복을 담는 오늘날의 그릇으로 수박과 석류, 포도의 자손 번창 의미로 채운다의 현대적인 정물화의 구도를 차용해 소품으로서 우리의 공간을 장식하고자 했다.

시대가 변하고 트랜드가 바뀌었지만, 그래도 우리의 가정은 사랑과 행복이 가득하게 담아야 되는 인지상정(人之常情)은 변하면 안 되지 않을까?

<박승온ㆍ사단법인 한국현대민화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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