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이 기억하는 나의 모습
타인이 기억하는 나의 모습
  • 승인 2020.10.21 21:1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순호 BDC심리연구소장
일이 있어서 대구에 있는 경북대학교 병원 앞 도로를 바삐 걸어가고 있던 중이었다. 가을 오후 햇살은 너무 눈이 부셔 고개를 잘 들 수가 없었다. 그래서 땅과 앞만 주시하며 걷고 있었다. 그때 앞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다가오고 있음을 인지했다. 그들을 한 명씩 파악한다거나 한 것은 아니고, 그냥 실루엣처럼 여러 명의 사람들이 오고 있다는 것 정도만을 인지했다. 그렇게 그들과 나의 거리가 가까웠을 때, 무리 속에 있던 사람 중 한 명이 “어~”하며 내게 달려와 나를 와락 안는 것이었다. 순간에 일어난 일이라 상황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다. 나를 안고 있는 사람을 가만히 쳐다보니 그제야 그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그는 내가 예전에 근무한 장애인시설에서 생활하셨던 다운증후군 안동*씨였다.

시설과 거리가 많이 떨어진 곳이기도 하고, 또한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그와의 만남이라 어리둥절해하면서도 반가움에 예전처럼 그를 품에 안아줬다. 그는 다운증후군이면서 지적장애가 있다. 그리고 언어 장애가 있어서 말을 잘하지 못한다. 그냥 ‘어~’ ‘야~’정도의 소리로만 자신의 감정과 의사표현을 한다. 아마 나를 만났을 당시 그가 말했던 “어~”라는 말은 아마도 “선생님~”이라는 말이었을 것이다.

그가 내게 달려와 안겼고, 내가 그를 안아주고 있을 때, 그때 사회복지사로 보이는 한 젊은 청년이 내게 달려와 안동*씨의 행동을 급히 말리면서 우리 둘을 떼어놓았다. 그러고 나서 그 청년이 경계하는 말투로 내게 물었다. “아는 사람이세요?”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주위를 먼저 둘러보았다. 병원 앞에서 만난 것이라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외래 진료를 받으러 오신 것이라면 직원이 함께 있을 텐데’하는 마음에서였다. 내가 아는 얼굴이 없었다. 아마도 그는 새로 입사한 직원인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대답했다. “아~네. 예전에 ㅇㅇ재활원 사무국장이었습니다” 나의 말을 듣고, 또한 내가 장애인의 이름을 불러주고 난 뒤에야 경계를 풀고 안심하는 듯 안동*씨를 붙잡고 있던 손을 놓아주었고, 우리 둘은 다시 반가운 포옹을 했다.

예전에 나는 200명 가까이 되는 장애인시설에 사무국장으로 근무했었다. 그곳에서 5년 동안의 추억은 참으로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때 나는 시설에서 생활하시는 장애인 분들과 장난도 많이 쳤고, 손잡고 안아주며 포옹도 많이 했었다. 늘 아침에 출근할 때면 입구에서부터 반겨주고 달려와 안거나 손을 잡는 장애인 분들이 많았다. 안동*씨 역시 그중 한 명이었다. 아마 안동*씨는 그때의 우리가 나눈 스킨십을 좋은 기억으로 남겨둔 모양이다.

이런 생각지도 않은 장소와 생각지도 않은 순간에 만난 것이라 반가움은 배가 되었다. 키가 작으신 편이라 나를 안았을 때 그의 머리는 내 가슴 정도에 온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등을 쓰다듬어주었다. 마치 아기처럼 내 품에 머리를 비비고 있었다. 짧지만 기분 좋은 순간이었다. 지금 이렇게 글로 남기는 것을 보니 긴 여운이 남은 순간이었던 것 같다.

신기한 것은 내가 그곳 장애인 시설을 퇴사한 것은 2008년이다. 시간으로 따지면 퇴사한 지 13년이 다 되어가고 있는 긴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어떻게 나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을까? 또한 마스크를 쓰고 있는 탓에 내 얼굴은 절반 이상이 가려져 있었다. 그리고 도로가 옆이라 사람들을 살피며 서로에게 시선을 나눌 상황이 아닌 스쳐 지나가는 순간의 나를 그는 어떻게 한눈에 알아보았을까? 참 신기했다.

가만히 곱씹어 보니 아마도 그에게 나라는 존재가 좋게 기억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참 기쁜 일이다. 무엇보다 감정표현이 솔직한 사람한테서 받은 환대라 더 기쁘다.

그때, 그와의 만남을 다시 떠올려보니 순간의 포옹이 가을 햇살처럼 따사롭다.

누군가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는 건 참으로 기쁜 일이다. 그리고 내가 나 자신을 좋아하게 되는 순간이다. 머문 자리가 아름다운 사람이 되길 다시 한 번 소망해본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