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상황, 다른 반응
같은 상황, 다른 반응
  • 승인 2020.11.25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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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BDC심리연구소장
수많은 선택의 순간이 우리를 찾아온다. 그리고 그 순간 속에서 선택할 수 있는 자유 또한 우리 앞에 함께 놓인다. 선택은 A를 할 수도 있고, B를 할 수도 있다. A와 B 둘 모두를 선택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운명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늘 머리가 아프다.

그런데 간단히 생각해보면 그렇게 머리 아플 일도 아니다. 둘을 다 가지려 하니까 힘든 것이지 하나만 가질 수 있고, 결국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빨리 인정해 버리면 맘이 편하다. 후회라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든 존재하기 마련이다. A를 선택해도 B를 선택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존재하고, B를 선택해도 마찬가지다. 이제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A를 선택할 것이냐? 아니면 B를 선택할 것이냐?

오늘은 같은 상황, 다른 반응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어린 남매가 있었다. 집에는 어린 남매와 아버지, 셋이 살고 있었다. 남매의 엄마는 술만 먹었다 하면 가정폭력을 일삼는 아버지를 견디지 못하고 집을 뛰쳐나가 버렸다. 엄마의 빈자리는 너무나 컸다. 밥이며, 빨래, 청소는 늘 남매 중 누나의 몫이었다. 남매의 아버지는 술을 먹지 않은 날에는 그런대로 대화도 되고, 자녀들을 생각했는데 술을 드시는 날에는 모습이 180도 바뀌었다. 집을 나간 엄마를 찾아오라며 고함을 지르기도 하고, 돌아가신 부모님이 물려주신 재산이 없어서 이렇게 어렵게 산다는 등의 신세 한탄을 하며 ‘꺼이꺼이’목 놓아 울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남매는 아버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 했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꼬투리를 잡아서 아버지는 자녀들을 훈육한다는 빌미로 매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 매질의 강도는 점점 날이 갈수록 심해져서 결국 맨손으로 뺨과 머리를 때리기도 하고, 발로 차는 등의 가정폭력으로 발전했다. 그런 아버지한테서 두 남매는 거의 매일 가정폭력에 시달려 왔던 것이다. 어릴 때부터 가정폭력에 시달렸던 남매의 삶은 그야말로 지옥과도 같았던 삶이었다.

여기서 남매가 경험한 상황은 하나였다. 매일 술을 먹고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 그 폭력을 참고 견디지 못하고 집을 나간 어머니, 그리고 가난. 이 하나의 공통된 상황에 남매는 다른 반응을 했고 결국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먼저 남매 중 남동생은 아버지를 원망하고 미워했다. 그리고 자신들을 버리고 집을 나간 엄마를 원망했다. 그 결과 학교생활도 순탄치 않았다. 학교에서 자신보다 힘이 약한 친구들을 괴롭히기 시작했고, 괴롭힘의 강도는 점점 더 심해져 학교폭력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중학생이 되면서 소위 ‘일진’이라 불리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거리를 방황하기 시작했다. 일찌감치 공부와는 담을 쌓은 상태였고, 싸움을 잘한다는 소문이 나면서 선배 형들에 눈에 띄어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하고 결국은 어둠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었다. 남동생의 삶은 그렇게 망가져 가고 있었다.

반면에 남매 중 누나의 반응은 달랐다. 물론 동생과 마찬가지로 가정폭력을 하는 아버지도 싫었고, 가난도 싫었지만 동생과 다른 반응을 선택했다. 상황을 탓하기보다는 자신과 같이 가정폭력에 있는 아동을 돕는 일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진로를 선택했다. 공부도 열심히 하여 자신이 원하는 대학의 심리학과로 진학을 하고 마침내 심리상담사가 되어 학대받는 아동을 상담해주는 일을 하게 되었다.

상황은 하나. 반응은 둘. 하나는 자신을 위해서도 타인을 위해서도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반응을 선택했고, 다른 하나는 자신을 위해서도 타인을 위해서도 좋은 길로 가는 반응을 선택했다.

우리 앞에 놓이는 상황은 우리가 선택할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상황을 바꾸기 위해 에너지를 크게 쏟고자 하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우리의 에너지는 상황에 대한 ‘반응’을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에 쏟아야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상황의 선택이 아니라 반응에 대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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