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 또다른 시작
끝, 또다른 시작
  • 승인 2020.12.2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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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란 주부
한 해가 끝나가는 연말이다. 저마다 남은 며칠간을 잘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을 준비를 할 것이다. 올 해 목표를 이룬 사람도 있을 것이고, ‘작심 3일’처럼 흐지부지해지고 하루하루 맞닥뜨리는 일상을 살아내느라 바빴던 사람도 있을 것이다.

홍희는 ‘끝’이 있다는 것이 좋다. ‘끝’은 아쉬움이나 허무와 같은 슬픈 감정을 낳았는데, 올 해는 ‘끝’이 후련함이 있다. 올 한 해 아니, 20년간 긴 터널을 지나온 느낌이다. 스스로가 끝낼 수 없는 길고 긴 터널 안에서 터널이 끝날 때까지 가야만 하는 삶을 산 것 같았다.

쉼없이 달려오던 터널 끝을 빠져나오자 잠시는 어디로 가야할지 길을 잃었다. 밝은 빛이 비치나 갈 곳을 정하지 못해 그저 앞만 쳐다보았다. 그러면서 또다시 길을 찾아야 한다는 조급감을 느꼈다. ‘끝’은 또다른 시작이라는 말처럼, 하나가 끝나고 또다른 시작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강박감을 느꼈다. 그래서 다시 목표 두 가지를 세웠다. 아침부터 딸과 시간을 맞춰 출근 준비를 하고, 퇴근 후 시간에 홍희가 하고 싶었던 일을 했다. 주말에도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자신이 목표로 하는 것을 추구하기로 했다. 그것이 또다른 시작이었다.

그리고 엄마에게로 가는 시간을 만들어 다녀왔다. 엄마는 점점 기억이 희미해져 ‘딸’이라는 것은 알아보지만,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은 것 같았다. 기억해 내려 애쓰는 것 같았지만, 끝내 기억해 내지 못했다. 차를 타고 5분쯤 지나자 요양원 원장님이 전화가 와서 딸이 떠나간 뒤에 이름을 기억해 냈다고 전해주었다. 마음이 덜 아프도록 전화를 해 준 배려가 고맙다.

50대 중반이 되어가는 홍희도 점점 건망증이 심해진다. 엄마의 유전인자가 홍희 몸에 흐를 것이다. 혹시라도 건망증이 심해져서 치매로 이어질까 걱정될 때가 있다. 원하지 않아도 몸이 병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나는 안 그럴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건강을 위해 운동을 열심히 하고 식스팩을 만든 분도 갑자기 허혈성 뇌졸중 증상이 와서 병원에 입원했다. 정년후를 대비해 실버모델로 도전하고자 학원도 다닐 계획을 세우시던 건강해 보이던 분이었다. 항상 신체 나이는 20대후반이라고 자부했고, 뒷모습은 정말 20대 같은 분이셨다. 인생의 ‘끝’이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육체가 끝나도 영혼은 남아 또다른 세상으로 간다고 하고 증명하는 사람도 있지만, 홍희는 아직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다. 할머니가, 아버지가, 새언니가, 그들의 영혼은 살아있다고 해도 홍희가 직접적으로 인식하지 못해다.

언제 끝날지 모르고, 어떻게 끝날지 모르는 것이 인생이다. 그래서 나름대로 인생의 의미를 찾고, 어떤 목표를 세워 이룰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너무 허무할 것 같아서. 그렇지만, 과연 엄마의 인생이 허무할까? 엄마는 한글도 모른다. 국민학교도 가지 못했다. 결혼 전 연애도 못해봤을 것이다. 남편에게서 사랑을 받았을까? 농사일 하나는 최고다. 자식들에게서 존경은 받았을까? 돈 걱정, 자식 걱정 안 해도 되는 나이가 되어 편안히 보낼 수 있는데 치매가 걸렸다. 자식들이 존경을 할까? 자식들이 엄마의 삶과 지금 현재의 상황에 대해 마음아파하는 것만은 확실하다.

큰 목표를 설정하고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삶이 의미있다는 생각을 어릴 때 했지만, 아직 그런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래서 조급하다. 그러나 꼭 큰 목표를 이루어야만 의미가 있을까? 하루하루 일상을 잘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있는 것이 아닐까? 언제 인생이 끝날지도 모르는데 아직까지 허덕이며 이루지 못한 길만 가고자 하고, 도달하지 못한 목표에 안타까워하며 현재를 보내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이젠 그만 오늘 하루하루 삶에 충실하고, 즐겁게 사는 것으로 목표를 삼아도 좋지 않을까 한다. 끝은 또다른 시작이다. 오늘의 삶은 잘 사는 것이 홍희의 또다른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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