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과 시작
끝과 시작
  • 승인 2020.12.30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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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BDC심리연구소장
2020년 경자년의 끝이 왔다. 흔히 우리는 끝이라는 말을 듣게 되면 슬픔의 감정이 먼저 든다. 끝이 되면 다시 돌아갈 수 없고, 다시 볼 수 없으니 '끝'이라는 단어에 우리가 느끼는 슬픔의 감정은 당연한 것 같다. 졸업식 날 흘리던 눈물, 이별하는 연인들이 보였던 눈물이 모두 끝의 단어가 가진 슬픔이란 감정 때문이다.

하지만 끝이라는 단어는 슬픔의 감정만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라는 기쁨의 감정도 내포하고 있다. 학창 시절 하기 싫었던 숙제를 끝낸 후 책을 덮으며, '끝~'이라 외치고 나면 이제는 밖에서 나를 기다리는 친구들과 놀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 찾아왔다. 또한 재미있는 TV도 마음껏 시청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고통 끝 즐거움 시작이었다. 열심히 공부하며 한 학기가 끝이 나면 방학이라는 즐거운 휴식의 시간이 찾아왔다. 방학식 날 선생님의 당부 말씀을 끝으로 우리는 "야~방학이다"라며 모두 천국을 경험하는 순간을 경험하기도 했다.

남자들의 군 복무의 끝은 슬픔보다는 기쁨이 훨씬 크다. 힘들었던 2년여 동안의 시간이 끝나면 전역이라는 기쁨의 시간이 찾아온다. 일주일 열심히 일하고 나면 휴일의 시작을 알리는 금요일 저녁, 불타는 금요일도 시작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결혼을 하게 되면 '혼자'라는 시간이 끝나고 '함께'라는 시간이 시작된다. 그러고 보니 끝과 시작이라는 말이 다른 듯하지만 같은 말인 것 같다. 혹자는 결혼을 '행복 시작'이라 하고, 혹자는 '지옥문을 열었다.'라고 표현하는 것을 보니 말이다.

무언가를 '시작한다.'라는 말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실은 무언가를 '끝낸다.'라는 말이 된다. 그래서 시작의 단어 속에는 기쁨만이 아닌 슬픔의 감정도 함께 담겨 있다. 일주일이 시작되는 월요일은 휴식의 끝이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 회사에 가기 싫고 학교에 가기 싫어서 생긴 병, 월요병도 시작의 슬픔 때문에 생긴 병이다. 예전에 한 설문조사에서 대한민국 국민들이 가장 듣기 싫어했던 음악이 개그콘서트 엔딩곡 이라는 발표가 있었다. 개그콘서트라는 프로가 지금은 폐지가 되었지만, 예전에는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했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기 전에는 TV가 가장 볼거리가 풍성했다. 그래서 일요일 저녁이면 안방에 가족이 모두 모여 개그콘서트를 시청했다. 개그맨들이 준비한 다양한 개그 콩트를 보며 한바탕 신나게 웃다 보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방송의 끝이 왔다. 프로의 끝을 알리는 개그콘서트 앤딩 곡이 나오는 순간 물밀듯 밀려오는 슬픈 감정 '아~휴일이 이렇게 끝나는구나.' '내일이 출근이라니'. 이 감정은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이 모두 공감하실 거라 생각한다. 그때 그 신나는 음악은 우리 귀에는 전혀 신나는 음악이 아니었다. 다시 일주일의 시작을 알리는 세상 가장 슬픈 음악이었다.

끝나서 슬픈 것도 아니고 시작해서 기쁜 것만도 아니다. 끝나서 기쁘기도 하고, 시작해서 슬프기도 하다. 동전의 양면처럼 늘 우리 삶에는 두 가지가 공존하는 법이다. 그래서 시작도 끝이고 끝도 시작이다.

하나의 문이 닫혔을 때는 반대편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나의 문이 닫힌다는 것은 하나의 문이 열린다는 뜻이다. 신(神)께서는 하나의 문을 닫을 때 꼭 하나의 문을 열어두고 닫으신다고 한다. 그런데 인간이 어리석고 무지해서 열린 문은 찾지 못하고 닫힌 문만 계속 쳐다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신께서 얼마나 안타깝고 답답하실까? 짐작이 간다. 조금 더 지혜로울 필요가 있다. 그리고 유연할 필요가 있다. 하나의 기회를 잃었다고 좌절하고 슬퍼하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 눈물부터 닦고, 아쉬움, 섭섭한 마음을 거둬야 한다. 그리고 반대편을 돌아볼 용기가 필요하다. 닫힌 문도 하나요, 열린 문도 하나다. 그런데 누구는 닫힌 문만 보고 있고, 누구는 열린 문을 보고 있다. 선택은 각자가 해야 한다.

코로나 때문에 참으로 힘들었던 한 해였다. 그 2020년도가 이제 끝나고 있다. 2020년의 마지막 해가 서쪽으로 기울면 다시 2021년의 새로운 해가 동쪽에서 인사를 해올 것이다. 하나가 끝이 나고 하나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끝'이라고 쓰고 '시작'이라 읽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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