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거름
밑거름
  • 승인 2021.01.13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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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BDC심리연구소장
어떤 일을 시작함에 있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밑거름을 풍부하게 넣어주어야 한다. 밑거름은 어떤 일을 이루는 데 기초가 되는 아주 중요한 요인이기 때문이다.

밑거름이 풍부하면 어떤 일이든 결과가 좋을 수밖에 없다. 기름지고 밑거름을 충분히 넣어준 땅에서 자라는 나무와 메마르고 밑거름 없는 땅에서 자란 나무의 결실이 다르듯이 말이다. 그래서 일을 시작할 때는 항상 밑거름을 풍족히 넣어주었는가에 신경을 써야 한다.

필자의 아들이 작년(2020년) 2월에 군대를 전역했다. 전역하기 전부터 아들은 전역 후에 할 일에 대한 계획을 세워 두었다. 먼저 가족여행으로 베트남을 다녀올 계획이었다. 그리고 돌아와서 먼저 전역하고 전국에 흩어져 생활하고 있는 선임들도 만나보며 시간을 보내려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이게 웬일, 안타깝게도 전역과 동시에 코로나가 유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디 나가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집에만 있는 신세가 되었다. 진로를 결정하기 전 경험 삼아 몇 군데 아르바이트를 해보려 했는데 그것마저도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코로나가 유행하기 시작한 처음 몇 주는 집에서 지내다가 이후에는 산을 오르며 아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대화를 나눠보니 아들의 주된 고민은 자신의 진로 문제였다. 이제 성인이 된 아들의 진로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 온 것이다. 진로를 자신이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로 선택에는 부모의 역할도 중요하다. 필자가 아들과의 대화에서 그리고 그동안의 생활 속에서 아들이 가진 강점을 몇 가지 발견하였다. 그중에 하나가 몸 쓰는 일이었다. 그것은 아들이 먼저 자신의 강점으로 우리에게 알려준 부분이었다. 군대에 있을 때 대민지원을 나가서 땀 흘리고 일할 때가 보람되고 좋았다고 한다. 단순히 노동이 아니라 운동하듯이 힘을 쓰고, 일하고 나면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몸 쓰고 땀 흘리는 일? 무엇이 있을까 함께 고민하다가 '농사'로 정리가 되었다. 청년 농부, 앞으로 전망 좋은 일이라 생각이 들었고 아들에게 적극적으로 권유했다. 아들도 깊은 고민을 해보고 난 후 그렇게 아들의 첫 해 농사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장모님의 추천으로 감자를 심어 보았다. 땅에 구멍을 파고, 그곳에 작은 감자는 한 알을 그대로 넣고, 조금 더 큰 감자는 반으로 잘라 하나씩 나눠 넣고, 더 큰 감자는 4등분을 해서 땅에 심었다. 따뜻한 햇볕을 받고 감자가 쑥쑥 자랐다. 수확하는 날 감자를 캐는데 대박이었다. 이렇게 농사가 쉽나 싶을 정도로 감자의 씨알도 굵고 많이 수확되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감자가 잘 자란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감자를 심은 땅의 밑거름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아들이 감자를 심은 그 땅은 돌아가신 할아버지(나에게는 아버지)가 오래전부터 인분(人糞)과 음식물 쓰레기 등 퇴비를 잔뜩 넣고 잘 관리해오신 땅이었다. 말 그대로 옥토(沃土)였던 것이다. 옥토에서는 어떤 농사를 지어도 수확량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농작물에 공급될 영양분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농사 2년 차가 되는 올해부터는 '샤인머스켓'을 심기 위해 한창 준비를 하고 있다. 제일 먼저 우리가 준비한 것은 땅을 옥토로 만들기 위한 밑거름을 풍족하게 넣어주는 일이었다. 인근에서 소를 키우는 농장을 통해 소똥을 사서 그득하게 땅에 넣어둔 상태다. 이제 밑거름은 충분히 넣어 뒀으니 땅 위의 농사를 잘 지으면 된다. 물론 아들이 흘리는 땀방울도 열매를 위한 좋은 밑거름이 될 것이 분명하다. 땅은 정직하다고 했다. 속이지도 않고 배신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제대로 된 농부는 제대로 된 땅을 만드는데 시간과 비용을 많이 투자한다고 한다. 밑거름을 제대로 주지 않고 좋은 열매를 수확하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나무는 뿌리가 튼튼해야 하고, 농사는 땅이 중요하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뿌리가 튼튼하면 가지도 튼튼할 것이고, 열매도 많이 맺을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 삶의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무엇보다 근본 마음 밭(心性)에 좋은 밑거름을 많이 주어야 한다. 부모의 삶도 좋은 밑거름이 될 수 있지만 땀 흘리고 수고한 자신의 노력이 무엇보다 좋은 밑거름이 될 것이다. 그리고 고난의 경험도 아주 좋은 밑거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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