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단골집은 안녕하신가요
당신의 단골집은 안녕하신가요
  • 승인 2021.01.18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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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숙 시인
미처 놓쳐버린 틈은 없나 살피고 되돌아보는 하루의 가장자리다. 서녘으로 지는 해가 붉은 신호등을 켜 든 채 서 있다. 언제나 변함없이 그 자리 그대로다. 세상의 모든 집과 그 속에 깃들어 사는 사람들의 마음마저 찾아들어 온기를 더해준다. 노을이 지고 극월極月이 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좁은 골목을 들어선다. 한 집 건너 한 집, 빼곡히 들어앉은 가게마다 새어 나오는 불빛이 설렘과 불안으로 가득하다. 밤새 안녕이라더니, 요즘 들어 하루건너 하루 개업과 폐업을 반복하며 버텨내는 중이다. 그 중, 간판을 바꾼 일 없이 한자리에서 오랜 시간 살아남아 있는 점방 한 곳이 눈에 들어온다. 수십 년째 애용해 온 단골 가게다. 진열된 물건들이 대형마트와 비교해 턱없이 적다. 찾는 물건들이 있는 것보단 없을 때가 더 잦다. 그런데도 그 점방만 고집하는 이유가 있다. 그 곳에 가야만 구할 수 있는 특별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출입문 앞까지 나와 지나치는 발길을 멈추게 하는 품목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나를 맞이한다. 젊은 부부가 함께 꾸려가는 곳인데 그 특별함을 더해주는 물건을 공급해 주는 이는 그들의 부모님이다. 애지중지, 자식을 키우듯 심고 다독이며 손수 농사지은 작물들이다. 자식의 삶에 조금의 보탬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햇양파, 햇감자, 햇고추, 곶감 등 모두 햇것이다. 자식에게 먹이듯 정성을 들인 흔적이 곳곳에 깃들어있다. 물건도 물건이려니와 포장만 봐도 단번에 알아볼 수 있다. 신선하고 깨끗하며 가격도 저렴하다. 때론 그들의 부모님이 들인 공에 비해 지불하는 돈이 너무 약소한 것만 같아 미안함마저 들 때도 있었다.
얼마 전, 김장을 담그기 위한 재료를 사러 갔던 날 일어난 일이다.
"미안합니다. 어머님이 늙어버려 더는 농사를 지을 수가 없어…."
태양초를 달라는 말에 부부는 서로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는가 싶더니 고개를 떨어뜨리며 흐느껴 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점방 문을 내려야 할 것 같다고도 한다. 그동안 찾아주어서 정말 감사하다는 말까지 잊지 않는다.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한 체 할 말을 잃고 돌아서 나오던 그때의 상실감을 지금까지도 잊을 수가 없다.
"오늘 저녁은 뭐 묵을낀데?"
막냇동생이 보낸 배꼽시계의 알람이 카카오톡을 타고 흘러든다. 나 역시 딱히 먹은 것도 없는데 헛배가 부르다며 답장을 보냈다. 내가 해 주는 김치찌개를 유독 좋아하는 동생은 웬일인지 입맛이 없다며 큰언니인 내가 생각났다는 것이다.
"입맛도 봄 타나 보다. 입맛이 없으면 밥맛으로라도 먹고 살아야지"
아치고절雅致高節, 꽃눈 틔우듯 동생의 허기진 마음에도 온기가 가득차길 바랐다. "엄마가 해 주는 갱죽을 먹으면 입맛이 돌아올 것 같아."
문득, 엄마표 갱죽을 다신 먹을 수 없게 되는 날이 머지않아 올 것 같은 집채만 한 불안이 들어 던진 말이다. 동생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반문한다.
"그기 머라꼬 그렇게 먹고 싶다 카노 큰 성아"
그리움의 쓰나미가 나를 덮친다. 마음이 온통 먹장구름이 드리우듯 먹먹해 온다. 음식은 봉인된 추억을 불러내는 힘을 지녔다. 모든 시간 속에서 맛은, 그리움으로 변해 사람들의 뼈와 정서의 깊은 곳에서 태아처럼 잠들어 있는 듯 보인다.
그리움 가득 우려낸 육수에다 묵은지와 콩나물 그리고 찬밥에 엄마만의 손맛을 더해 푹 끓여내 주는 그 갱시기를 얼마나 더 먹을 수 있게 될는지 기약할 수 없다. 수타로 뽑은 면으로 짜장면을 만들어 주시던, 다시는 맛볼 수 없는 아버지의 손맛처럼.
쉽게 행복해지는 방법 중엔 '지금 나에게 없는 것을 떠올리는 대신 이미 가진 것을 잃으면 얼마나 아쉬울까'를 생각해 보는 것이라고 한다. 갈 수 없는 여행을 고집하기보다는 편히 쉴 수 있는 주말조차 없다면 얼마나 아쉬울까? 아니면 감사함까진 이르지 못하더라도 다행 정도에만 머물 수 있어도 괜찮은 것이라 위로 삼아 보는 건 어떨까 싶다. 행복은 더 좋은 일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더 나쁜 일이 안 생기는 것이라는 말을 더해보면서.
별일 없이 보낸 하루의 끝에 찾아온 소박한 평온에 만족해 보는 밤이다. 밤하늘에 꽃수를 놓으며 별들이 물어온다. 당신의 단골집은 안녕하신가요?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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