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철북 마을
양철북 마을
  • 승인 2021.01.25 20:4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순란 주부
아침 안개가 백학산 자락에 걸쳐 있다가 서서히 하늘로 올라갈 무렵 백학산 아래에 새둥지처럼 터전을 잡은 디실에 닭울음 소리가 들린다. 꼬꼬댁 꼬꼬... 누구네 집이랄 것도 없이 시작된 닭들의 합창은 아침햇살을 불러내어 안개를 걷어내고 마을을 밝힌다.

사방이 높고 얕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움푹하니 들어간 마을 가운데는 신작로 아래 강에서 길어올린, 비가 내리면 가둬두는, 빨래하는 둥근 못이 있다. 못의 물위로 김이 올라온다. 아침 햇살에 1미터도 못가 말라버리지만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된장찌개의 김같다. 투명한 유리 같기도 한 못에 용이라도 한 마리 살까? 용이 되다만 이무기라도 살까? 두꺼비라도 살까? 그네들이 하품하는 것이 김이 되어 나오는 것은 아닐까 싶을 만큼 크고 넓고 고요한 아침의 못이다.

마을 입구에 커다란 느티나무가 떡하니 벌어져 버티고 있다. 마을의 수호신처럼, 두 팔을 벌리고 환영하는 듯 늠름하고 푸근하다. 올망졸망 집들은 동네못을 가운데 두고 도란도란 어깨동무하고 있다. 집마다 옆집 담장너머로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하는 모습이 보이고, 아침밥상을 내가는 모습도 보이고, 일하러 가느라 채비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몇몇 집들은 산 아래에 고즈넉이 자리잡고 있다. 농사일을 할 때는 마을 아래로 내려와 사람들과 어울리다가, 밤이 되면 별과 달과 어둠처럼 고요히 집으로 돌아간다. 홍희네 집은 동네 입구에 자리잡고 있어, 그런 집의 고요함과 늘 거리가 멀다. 일하러 가는 사람, 장에 가는 사람, 대구로 가는 사람이 가고오는 것을 일일이 볼 수가 있다.
홍희는 초등학교 5학년, 학교를 간다. 할머니와 단잠을 자고, 할머니와 겸상해 밥을 먹고, 보자기를 책을 싸 어깨에 둘러메고 깡충깡충 뛰어 학교를 간다. 단짝 친구인 상희를 담장너머로 불러 함께 간다. 홍희와 상희는 손잡고 깡충거리며 마을 앞둑을 지나간다. 학교를 갈 때도 학교에서 집에 올 때도 손잡고 다니는 둘의 모습이 보기에 이쁘다. 더운 여름,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커다란 느티나무아래에 선선한 바람과 그늘을 맞으러 온 동네 어른들이 둘이 잘노네라는 표정을 짓고 반긴다. 집도 가깝고 마음도 가깝다. 이름도 비숫하여 혹시 쌍둥이가 아닐까 싶을 때도 있다. 그만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은 친구다.

홍희는 자주 고향에 가고 싶어한다. 객지 생활이 벌써 35년이 지났다. 아직도 객지에서 정을 못 붙인 탓인가? 주말에 일이 없을 때, 하루종일 집에 있으면 특히 고향집이 생각난다. 갈 곳이 없다. 억지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커피숍도 가고, 쇼핑도 가고, 외식도 하고, 가족 중 누군가를 만나기도 하지만 이유 모를 정서적 공허함이 마음의 중간에 생겨난다. 자신이 억지로 생각해서가 아니다. 저절로 몸의 일부인 마음에서 피어난다. 고향에 갔다온 시간을 몸을 안다.

언니는 고향에 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마을 어른들이 장승처럼 회관 앞을 지키고 있어 인사를 해야하는데 얼굴을 마주치지 싫단다. 그래도 얼굴을 보면 아주 반갑게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묻는다. 가난으로 인해 겪어야만 했던 언니의 10대와 20대, 지금은 금의환향해도 될 정도로 넉넉한 살림살이가 되었음에도 좋지 않았던 지난 일들이 기억나서 싫단다.

홍의도 늘 좋았던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때'가 머릿 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3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홍희는 말뚝에 매인 소처럼 '그 떼'에 멈춰있는 것 같다.
"오래전에 집을 떠나고 싶었는데 아직도 못 떠나고 있네..."
때로는 긴 줄에 때로는 짧게 맨 줄에 매여 말뚝 주위를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