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것의 힘
사소한 것의 힘
  • 승인 2021.02.03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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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BDC심리연구소장
어느 날 삶이 완전히 꼬인 듯, 숨이 '턱'하고 막힐 때가 있다. 그 순간을 해결해보려 별의별 짓을 다 해보곤 하지만 아무리 발버둥 쳐봐도 문제 해결은커녕 아픔만 더 해지기도 한다. 평상시 하고는 전혀 다른 일들이 펼쳐진다. 만나는 사람과의 마찰이 잦아지고, 신경질은 더 심해지고, 몸도 마음도 지쳐간다. 어디서부터 잘 못 되었는지를 도무지 알 수 없어서 울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런 절망의 순간에 정신 차리고 잘 생각해보면 아주 간단한 곳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원인이 큰 것에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대부분 사건이 아주 사소한 것에 원인이 있고, 그 사소함을 해결함으로써 문제가 한순간에 해결되기도 한다. 사소한 것이 가지는 힘이 결코 작지 않다.
하루는 포도밭에 목이 긴 작업화를 신고 나간 적이 있었다. 비가 오고 난 뒤라 땅이 질어서 일반 운동화를 신고서 일을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런데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발목 부위가 따갑기 시작했다. 움직일 때마다 따가움이 전해졌다. 걷는 자세도 불편해졌고, 일의 능률도 오르지 않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 원인이 딱딱한 작업화에 있다고 생각했다. 괜히 목이 긴 작업화를 신고 와서 이런 고생을 한다고 구시렁대며 일을 하다가 어느 순간 발목의 따가움이 작업화 때문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원인은 작업화가 아니라 작업화 속에 있는 내 맨살 때문이었다. 평상시 같으면 등산화 같은 목이 긴 양말을 신고 왔을 텐데 그날따라 목이 짧은 발목 양말을 신고 왔던 것이었다. 그 결과로 발목 부위는 맨살이 되었고 걷는 족족 목이 긴 작업화와 스치면서 따갑기 시작한 것이었다. 아무리 자세를 고쳐보고 천천히 걸어봐도 따가움은 더 심해갔다. 신을 벗어보니 스친 부위가 빨갛게 달아올랐고 곧 물집이 잡힐 판이었다.
안 되겠다 싶어서 집으로 연락해서 목이 긴 양말을 가져와 바꿔 신었다. 완전히 딴 세상이었다.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정말 언제 그랬냐는 듯 통증이 사라졌다. 이런 사소한 것 하나의 차이가 이렇게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 새삼 신기했다.
양말을 바꿔 신고 난 뒤 많은 것이 달라졌다. 더 이상 작업화 탓을 하지도 않았고 걷는 자세를 고칠 필요가 없었다. 그냥 맘대로 다녀도 스치는 부위가 전혀 아프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는 딱딱한 작업화가 일하기에 불편하다고 생각했는데 도리어 그 딱딱한 작업화가 밭에서 일하기에는 훨씬 더 좋은 신발로 바뀌어 있었다. 작은 것을 결코 시시하게 보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이미 경험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군대에서 행군을 할 때 발바닥에 작은 모래알 한 알로 인해 죽지 않아도 이승에서 지옥을 경험할 수도 있다. 등에 짊어진 무거운 배낭보다 발바닥에 작은 모래 한 알이 더 힘들다는 것을 경험해본 사람은 안다. 작은 모래알 하나가 뭐 그렇게 큰 영향을 주겠냐 싶지만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 삶도 이렇듯 작은 것 하나가 삶을 곪게 할 수 있다. 하찮게 생각했던 작은 것 하나가 우리 삶을 송두리째 앗아가기도 한다. 그냥 무심코 던지는 말 하나, 평상시의 작은 습관 하나, 결코 우습게 볼 수 없다. 그런 것들을 방치해뒀다가 삶이 무너질 수도 있음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피부가 까지고 살이 곪아 갈 때는 이미 많은 시간을 되돌아가야 한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라는 속담이 딱 그 말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것을 해결하는 사람보다는 미리 문제가 발생 되기 전에 예방하는 사람이다.
사소한 것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은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다. 우리 삶에 발생된 많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큰 차원에서의 대대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아주 사소한 것의 해소로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별것 아닌 것 같은 아주 사소하고 작은 것이 우리 삶을 완전히 망칠 수도 있다. 작은 것을 잘 해결하면 복잡했던 일이 한순간에 해결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양말 하나 바꿔 신었는데 많은 변화가 생긴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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