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꼽친구
소꼽친구
  • 승인 2021.02.0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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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란 주부
홍희와 상희는 같은 마을에 살았다. 여름이면 잠자리를 잡으러 뛰어다닌다. 빗자루를 한 손에 들고 잠자리가 못가의 풀위에 앉으면 살금살금 다가가 휙 잡는다. 잠자리보다 손놀림이 더 빠를 때는 한 마리를 잡고 잠자리가 더 빠를 때는 잠자리가 쌩 날아가 버린다. 잡은 잠자리는 몸통을 굵고 하얀 실로 묶는다. 기다란 나무막대기 끝에 매달아 날아가게 돌리면서 노래를 부른다.
"저리 가면 죽고, 이리 오면 산다."

잠자리가 그 노래를 알아들었을까. 신기하게도 잠자리는 막대 끝에 매달린 잠자리에게로 온다. 어린 나이엔 그게 참 신기했는데 나중엔 알게 되었다. 잠자리가 노래소리를 알아들은게 아니라 본능적으로 암잠자리에게 날아든 것이라는 것을. 어쨌거나 열 한 살 어린 나이에 사랑이 뭔지 이성이 뭔지 모를 때에는 자기가 부른 노래소리를 듣고 오는 것이라고 여기며 노래를 부를 때면 목청을 가다듬고 크게 부른다. "이리 오면 살고 , 저리 가면 죽는다. 요요 붙어라." 잡은 잠자리가 다섯 마리쯤 되면 실을 묶어 막대기에 매달아 놓으면 제각각 날개짓을 한다. 잠자리에게 자기몸이 딸려 날아올라 갈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잠자리 중에는 잡기 힘든 잠자리가 있다. 까맣고 튼실하고 커서 이름붙여졌을 '장수잠자리'다. 장수잠자리는 까만 꼬리를 물에 탁탁치며 못둑 가까이로 날아다닌다. 나 잡으려면 잡아봐라는 듯 거드름 피우며 느리게 유유히 날아다닌다. 조용히 홀로 위엄있게 나는 모습에 유심히 바라본다. 함부로 할 수 없는 놈이다. 홍희와 1m 떨어져있을 때는 천천히 온다. 이번엔 한 번 잡아볼 수 있으려나 싶어 침을 꼴깍 삼키며 기다리고 있는데 바로 앞에서는 쌩하고 지나간다. 혹시나 잡을 수 있을까 마음을 졸이며 기다리고 있다가 뒤통수를 맞은 꼴이다. 벌렁나자빠져 어디갔나 보면 벌써 저 멀리 가 있다. 홍희와 상희는 장수잠자리는 제쳐둔다. 저놈은 잡을 수 없는 놈이다. 장수의 이름값을 한다.

둘의 잠자리 잡는 모습을 보면 이렇다. 주로 홍희가 빗자루를 들고 다닌다. 상희는 잠자리가 매달린 줄을 들고 약간 뒤에 있다. 간혹은 상희가 빗자루를 잡는다. 그러다가 한 마리 잡으면 씩 웃는다. 키는 홍희가 작고 상희가 큰데 말이 많고 행동이 재빠른 건 홍희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처럼 홍희는 다부지다.

고무줄넘기를 할 때도 그렇다. 다리에 까만 고무줄을 건 아이가 양 쪽에 멀리 서서 줄을 잡아당긴다. "아버지가 나귀타고 장에 가시면..... 고추먹고 맴맴, 달래먹고 맴맴." 노래에 맞춰 고무줄넘기춤을 춘다. 작은 체구의 홍희는 줄에 걸리지 않고 잘도 넘는다. 큰 키의 아이들이 손 끝에 잡으면 뒤집어넘기를 하면서 훌쩍 뛰어넘는다. 그럴 때의 자신감과 쾌감이 좋다. 작은 키를 뛰어넘는 기분이다. 고무줄에 걸려야 위치가 바뀌는데 홍희는 잘 걸리지 않아 한 번 시작하면 끝까지 간다. 그래서 놀이가 즐겁다.

땅따먹기를 할 때면 손끝이 매워 톡톡 세 번 튕겨 제 집으로 들어와 땅을 넓힌다. 까불까불거릴 때는 천상 어린아이같은데 놀이를 할 때는 말수가 없고 어떻게 해야 적을 치고 이길까 작전을 구상하는 장군마냥 신중하다. 홍희는 땅이 넓어져 갈수록 희색이 돈다. 가슴으로는 시원한 바람이 분다. 마치 넓은 대지가 자기 땅이라 바라볼 때의 대부호의 넉넉한 마음과 같다.

홍희는 아침마다 머리를 감으며 무너진 담장 너머에 있는 상희네 집을 본다. 상희도 일어나 세수를 한다. 아침부터 봐도 또 보고 싶은 반가운 친구다. 아침을 먹고 못둑 느티나무아래에서 먼저 온 사람이 기다린다. 둘만의 말하지 않아도 지켜지는 약속이다. 그 친구는 홍희의 소꼽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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