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이 포기한 것들 - 왜 남성성을 버렸을까
새들이 포기한 것들 - 왜 남성성을 버렸을까
  • 승인 2021.02.18 20:4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심후섭 대구문인협회장·교육학박사
대개의 야생 동물들은 수컷이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노력을 합니다. 부지런히 먹고 힘을 길러 경계를 서며, 몸집을 크고 화려하게 가꾸기도 합니다.

새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수탉이 암탉을 차지하려는 노력은 눈물겹습니다. 수탉은 맨 먼저 눈을 뜨고 홰를 칩니다. 그리고는 목청껏 소리를 지릅니다.

여기는 내 땅! 함부로 넘보지 마라! 꼬끼오오오!

이리하여 하루가 시작되고, 수탉은 암컷과 함께 마당에 나가 먹이를 찾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도 가끔씩 담에 올라가 사방을 향해 외칩니다.

- 나 여기 있다! 가까이 오지 마라!

이처럼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수탉이지만 암컷과의 짝짓기 행동은 매우 짧습니다. 1,2초 만에 모든 게 끝납니다. 우선 수탉은 암컷 가까이 다가가 날개를 끌거나 머리를 주억거리다가 마침내 암컷 위에 올라탑니다. 그러나 교접 행동은 허무하게 보일 정도로 순식간에 끝납니다.

수탉뿐만 아닙니다. 다른 새들도 거의 같습니다. 암컷의 허락을 받기 위해 물총새는 먹이를 잡아다 주고, 바우어새는 집 안팎을 온갖 색깔 있는 물건으로 화려하게 꾸미지만 짝짓기 행동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그칩니다.

이렇게 새들의 짝짓기 행동이 짧은 데에는 신체적 구조에 비밀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따로 생식기가 구분되어 있지 않고 총배설강에서 모두 담당하기 때문입니다. 즉 새들의 교미는 암수가 총배설강(總排泄腔, cloaca)을 열어 서로 접촉하는 순간 수컷이 정자(精子)를 넘겨주는 것이 전부라는 것입니다. 암수 모두 종족 보존을 위한 의무 밖에 다른 것은 없어 보입니다.

총배설강은 특정 동물들에게서만 나타나는 기관으로, 소화(대변 배출), 배뇨(소변 배설), 생식(새끼나 알의 출산)을 총괄하는 하나의 구멍을 말합니다. 모든 양서류, 조류, 파충류는 총배설강을 가지는데, 포유류의 경우에는 황금두더지를 비롯한 몇몇 단공류(單孔類)만이 가지고 있습니다.

필자가 어렸을 때에 병아리감별사가 되면 미국으로 취업할 수 있고 그러면 잘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적 있습니다. 당시는 6.25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매우 궁핍한 시기였으므로 이 말이 매우 솔깃하게 들려왔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병아리감별사란 이 총배설강의 모양으로 암수를 구분하는 일이 아니었는가 싶습니다.

그렇다면 새들은 왜 생식기가 발달하지 않았는지 궁금해집니다.

약 97%인 1만여 종의 조류에서 수컷의 돌출 생식기는 완전히 퇴화하여 그 흔적만 남아 있는데, 같은 조류라 할지라도 육상조류와 분류학적으로 가까운 오리, 고니, 거위 등 물새류 수컷은 대체로 생식기가 완전하게 발달해 있다고 합니다.

이에 선진 연구진은 수정란인 달걀과 오리알이 발달하는 과정을 자세히 조사하면서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닭이나 오리는 나중에 생식기로 자라날 부위가 알에서는 똑같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생식기의 ‘싹’이 오리는 정상적으로 발달하지만 닭은 며칠 안에 성장을 멈추고 곧 사라져버린다고 합니다.

연구진은 처음 생식기를 발달시키는 어떤 기관이 오리에게는 있고 닭에게는 없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결과는 뼈를 형성하는 단백질4(BMP4)이 닭에게만 ‘죽음의 신호’를 내보냈던 것으로 분석되었습니다. 즉 이 단백질이 ‘세포 죽음(apoptosis)’을 일으키는 인자(因子)로 작용하여, 나중에 생식기로 자랄 세포가 자살하도록 이끌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닭의 생식기 세포가 스스로 성장을 포기하도록 한 것은 과연 누구의 뜻일까요? 닭 스스로의 선택일까요, 아니면 신의 섭리일까요? 만약 신의 섭리라면 날기를 포기한 조류들에게 내린 천벌일까요, 아니면 복잡한 세상 단순하게 살라는 신의 인도일까요?

어쩌면 포유류에서 하늘을 날기까지 진화하는 과정에서 모든 신체 기관을 가벼이 하지 않으면 안 되는 하나의 필연적인 업보인 것일까요?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