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덕후의 하루
행복한 덕후의 하루
  • 여인호
  • 승인 2021.03.08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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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배달되는 ‘하루’라는 선물을 받아들면 그 하루가 고마워 감사 기도로 거창하게 시작하지만 출근하고 나면 어느새 그 마음은 옅어지고 어제와 별다르지 않은 딱! 그 정도의 느낌으로 하루를 채워갑니다.

오늘도 별 기대 없이 여느 때의 하루처럼 물 흐르듯 조용히 마무리되는 그저 그런 하루입니다.

저녁 7시! 저녁을 먹은 후 설거지로 마무리하고 잠시 숨을 돌리려는데 “카톡~” 경쾌한 소리와 함께 가족 단톡방에 올려진 아들의 반가운 문자 한 줄!

“8시 기차 타고 내려갈게요.”, “오늘! 지금?”, “네~”

흙 속의 금덩이를 발견한 듯 소스라치게 반갑습니다.

“그래, 그럼... 조심해서... 오렴...”

무심한 듯 메시지를 보내지만, 순간 마주친 부부의 눈에는 터질 듯 탱탱한 생기로 광선을 뿜어내기 시작합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들의 방 난방부터 확인하고 집안 여기저기를 정리하며 무엇을 먼저 먹일까 살피느라 식재료들을 들었다 놨다 두 사람의 손놀림은 분주하기만 합니다.

멀리 떨어져 있느라 먹고 입을 것 제대로 챙겨주지 못해 새까맣게 속만 태우며 시름을 견뎌내고 있던 터라 아들이 온다는 소식은 빈 골짜기의 발자국 소리처럼 가뭄의 단비같이 뜻밖의 반가움이 되어 메말랐던 하루의 끝자락을 촉촉이 적셔가기 시작합니다.

받아둔 시간은 왜 이리 길고 지루한지 고장 난 시계처럼 벽시계 초침은 늘 제자리에 멈춰 서 있는 듯 애가 탑니다.

“띠띠띠띠~”

요란한 소리를 따라 벌컥 열린 현관문으로 커다란 아우라에 둘러싸인 아들이 훅 들어섭니다. 해사한 미소를 지으며 두 팔 가득 깊이 안아 주니 넓은 품에 안긴 덕후의 눈에는 참았던 그리움, 서러움, 고마움으로 울컥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키는 컸는지, 살은 붙었는지, 피부는 거칠어지지 않았는지, 머리는 어느 만큼 자랐는지, 옷은 무엇을 입었고 건강은 어떤지 위아래 찬찬히 훑어보며 그간의 놓친 시간을 챙기느라 눈길이 바쁩니다.

새끼와 접촉하는 어미의 뇌에서 주로 분비되며 특히 아이의 웃는 얼굴을 보고 있는 엄마의 뇌에서 분비가 증가되는 도파민 호르몬에 의해 엄마가 행복감을 느낀다고 하는데, 그런 까닭에서인지 아들 생각만 해도 눈이 먼저 웃으며 입꼬리가 절로 올라갑니다.

가까이 볼 수 있어 좋고, 곁에 함께 앉아 있어 좋고, 눈이 빛나서 좋고, 선해 보여 좋고, 빙그레 웃어서 좋고, 콧날이 오뚝해서 좋고, 오물오물 잘 씹어서 좋고, 꿀떡꿀떡 잘 넘겨서 좋고, 손가락이 길어서 좋고, 발이 크고 넓어서 좋고, 떡 벌어진 어깨가 튼튼해 보여 좋고, 불끈 힘이 넘쳐 좋고, 멍하니 앉아 있어도 좋고, 앞모습도 뒷모습도 어찌 그리 근사한지, 큰소리로 허탕하게 웃어도 좋고, 가볍게 미소 지어도 좋고, 이마를 살짝 찌푸려도 무조건 다 좋습니다.

보고 있어도 그립고 그립다는 말에 격하게 동감하며 늘 아들을 그리며 살고 있으니 누가 뭐래도 아들 바보임이 틀림없습니다.

평소에는 양지바른 꽃그늘 아래 까박까박 졸고 있는 병아리처럼 초저녁부터 여러 번 꾸벅이며 졸음을 쫓아내다 시들해질 시간에 잠자리에 드는 것이 일상이었건만 오늘은 왠지 깊은 밤인데도 불구하고 잠은커녕 새 아침을 맞듯 눈 안 가득 생기가 넘칩니다. 아우라의 눈부심으로 잠을 설칠 것 같은 설레는 예감에 깊은 밤은 행복하게 여물어갑니다.

이제는 어엿한 성인이 되어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부모의 품에서 따로 떼어 생각해야 하건만 여전히 그 끈을 놓지 못하고 가슴 가득 아들을 품고 사는 아들 바보 덕후의 오늘 하루는 찬란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배은희 대구도림초등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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