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를 찾아서> 마음의 빈터
<좋은시를 찾아서> 마음의 빈터
  • 승인 2009.02.11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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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현 태

아내는 나를 빈병이라 했습니다
알이 빠져나가고 빈 속의 빈 병은
밤에 바람이 불면 뜨락에서 웁니다
처음엔 아니라고 했고
다음 번엔 시뻘겋게 해서 다시 마시겠다고 했기 때문에
이제 아내는 빈 병을 보면 내 눈치만 살핍니다
얼핏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곰곰할 때는 더욱 부아가 솟아났습니다
어느날 나는 비틀거리는 취기에서도
한아름의 빈 병을 소중히 껴안고 귀가했고
선물인가 하여 팔을 벌리는 아내를 밀치고
한밤을 머리맡에 두고 잠들었습니다
한 병에는 술이
한 병에는 돈이
한 병에는 여자가
또 한 병에는 새가 있어 새가 날아
온 방을 메우고 하늘을 날아서 나도 어느새 새가 되고
세상 태어나 가장 아름답고 신나는 꿈을 꾸었지요
(이하 생략)

▷경북 청도 이서 출생. 동아대학교 졸업. 1972년 시집「미완의 서정」을 김광섭 선생 추천으로 등단. 현재 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 군포문인협회 회장. 경기문인협회 고문. 시집으로「마음의 빈터」(문학예술사·84) 등 다수 있음.

박현태의 `마음의 빈터’ 는 표제가 말해주고 있듯이 빈 마음, 즉 공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술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남편의 고뇌를 잘 보여준다.

`세상 태어나 가장 아름답고 신나는 꿈을’ 꾸었다는 빈병과의 귀가에는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남편이 지니고 있을 법한 어두운 그늘을 엿보게 된다. `밤에 바람이 불면 뜨락에서’ 운다는 빈 병의 울음과 함께….

이일기 (시인 · 계간 `문학예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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