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 범 많이 그려도 범 가죽문양은 한국만 그렸다
동서고금 범 많이 그려도 범 가죽문양은 한국만 그렸다
  • 윤덕우
  • 승인 2021.03.10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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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온의 민화이야기] 호피도(虎皮圖)
줄범·표범 차별없이 호랑이로 통칭
표범 가죽그림도 ‘호피도’로 통용
붓자국으로 털의 질감 살리고
노란 바탕에 원형 반복해서 그려
호피 그림, 혼례용 가마 덮개로
잡귀 쫓는 액막·벽사용 역할도
호피장막도
이날치밴드 범 내려 온다. 한국관광공사 서울홍보영상 (출처: 한국관광공사 유튜브)

범 내려 온다... 범이 내려 온다. !!!!

작년 이날치 밴드라는 신생그룹이 만든 노래의 제목이다. 판소리 형식의 ‘범 내려 온다’라는 노래는 한국관광공사의 한국 관광 해외 홍보 영상으로 화제가 되었다.

소위 한 번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고 할 정도로 중독성 강한 노래로 지금은 멸종의 호랑이가 춤추면 도시 한복판으로 나타날 듯 흥겹다. 이 노래 덕분에 호랑이는 무섭고 두려운 존재이지만 친근하고,개구장이 같은 이미지로 다가온다.

우리의 전래동화는 “옛날 옛날에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에...” 라고 시작하지 않는가. 옛날 옛적을 하필이면 호랑이의 등장으로 비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군신화에서부터, 햇님과 달님, 우는 아이 달래는 곶감이야기 등에 단골로 등장함으로써 우리 조상들에게 도 매우 친숙한 동물이었나보다.

조선 시대에는 호랑이가 많았다. 그래서 호랑이 가죽을 다양하게 응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오늘은 이 호랑이 가죽 호피(虎皮)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죽은 동물의 뿔이나 이빨, 가죽 따위를 집안이나 몸에 지니는 풍속은 여러 나라에서 발견된다. 죽은 동물의 일부를 가짐으로써 그 동물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일종의 주술적인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특이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호랑이 가죽을 그림으로 그려 집안을 장식하였다.

호랑이 가죽은 호랑이의 분신과 같다. 살아있는 호랑이를 반려동물로 집에서 기르는 일은 불가능하니 그리하였고 호랑이 가죽이 워낙 고가의 사치품이다 보니 그림으로 그렸던 모양이다. 1746년(영조 22년)에 간행한 ‘속대전(續大典)’에서 면포 1필 가격은 2냥으로 책정되었다. 대짜 호랑이 가죽 한 장은 보통 100냥 정도였고, 이는 서울의 초가집 한 채와 맞먹는 액수였다. 호랑이 가죽은 그만큼 고가의 사치품이었다.

호랑이 가죽과 관련된 옛날이야기 하나 해볼까.

할 일 없는 늙은 호랑이가 입을 떡 벌려 하품을 하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먹고 자고 또 놀고 먹고 자고 아이 심심해라, 무료하면 하품만 나오고 요즘엔 하품하면 안 나오던 눈물까지 나오는구나. 그런데 신령님이 나를 호랑이로 만들었으면 무슨 소용이 있어서 그랬을 텐데…“

그러자 지나가던 늙은 여우가 낄낄 웃으면서 “암요! 아저씨가 입고 있는 옷(호피) 때문이었을 거예요!” 하였다 한다.

호랑이는 몸에 줄무늬가 있는 반면, 표범은 원형의 점무늬가 있어 서로 구분이 가능하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표범을 그리고도 호랑이그림(虎圖)이라 불리는 경우가 빈번했으며 호표(虎豹)를 따로 구분 없이 부르거나 ‘범’으로 통칭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실제 궁궐에서 시험을 본 후 신하에게 하사되는 예를 보면 1등은 말, 2등은 표피, 3등은 호피를 하사하는 모습에서 표피를 호피보다 귀한 것으로 인식하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호피는 두껍고 거칠어 덮개나 깔개 정도로 사용된 것에 반해 표피는 무늬가 아름답고 촉감이 부드러워 호피보다 인기가 더 높았다. 선적인 느낌이 강한 호피보다는 표피의 반점이 장식성이 뛰어나기 때문에 19세기 초에 집필된 만기요람(萬機要覽)에서는 표피의 값이 호피의 값보다 훨씬 높았다고 전한다.

호랑이 가죽은 그 무늬가 아름다울 뿐 아니라, 잡귀를 쫓아버리는 신통력까지 지녔다고 믿어 사람들이 호랑이 가죽을 애용하였다. 역사 속에서 보면 일찍부터 호피는 대개 조정에서 교역품이나 외국 사신들에게 보내는 예물, 또는 신하에게 내리는 호피 방석인 아닷개(阿多叱介)를 하사품으로 사용되었으며, 혼례 때 신부가 타는 가마의 덮개로 호피 그림을 사용했는데, 처음에는 진짜 생 호피를 사용하다가 호피무늬의 그림으로 바뀐 것으로 보이며, 여기에서 호피 병풍화가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표피도7폭병풍
표피도 7폭 병풍 수묵담채 176cm X 51cm, K-옥션 경매 소장

위의 그림 표피도 7폭 병풍은 최근에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환수된 작품이다.

1972년 에밀레 박물관 조자용 관장이 김포공항에서 국외반출이 불허된 압수 작품을 구매하였는데 1점은 사전에 판매 견본으로 이미 밀반출되었기에 한 폭을 기다리는 7폭의 병풍으로 화제가 되었던 실물이라고 밝혔다. 조자용은 많은 민화작품 중에서도 이 표피도를 가장 대표작으로 내세워 <韓虎의 美術 (1974)> 전시도록의 표지 전면을 할애하였다. 이후 이 표피도는 일본으로 귀화한 근대 1호 골동품 상인이자 컬렉터인 이영개(李英介, 1906-?)의 소장품이 되었고, 그의 친족을 통해 약 반세기 만에 2020년 12월 고국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붓 자국을 그대로 살려 털의 질감을 표현하는 동시에 먹의 농담만으로 등 쪽과 배 쪽의 명암 차이를 완벽하게 표현하여 마치 표범의 가죽을 실물로 보는 듯 한 착각이 들게 한다고 한다.

호피도는 호랑이 가죽을 펼쳐 놓은 형태로 그리는데 주로 병풍으로 꾸며서 집안을 장식한다. 그러니까 호피 문양을 조금씩 다르면서도 반복적으로 4폭, 6폭, 8폭을 그린다는 말이다. 하지만 호랑이 얼굴 부분은 그리지 않는다.

우리 민화에서는 호랑이와 표범은 따로 구분되지 않는다. 표범이 곧 호랑이이고, 호랑이가 곧 표범이다. 그런데도 점박이 표범 가죽을 많이 그린 것은 줄무늬보다는 점박이 문양이 아름답고 장식성이 높기 때문이다. 표범가죽 그림은 밝은 노란색이나 주황색 바탕에 검정으로 둥근 문양을 일정한 흐름에 따라 반복적으로 그린다. 세필로 꼼꼼하게 털의 느낌을 표현하고 강약을 조절하여 변화를 주었다. 반복된 둥근 문양은 시각적 중독을 일으키고 세밀한 털의 표현은 집중력을 높인다. 마치 표범가죽 문양을 이용한 최신 패션이나 가방 디자인을 연상케 한다. 이렇게 그려진 호피도는 양반 집안을 장식하고 혼례용 꽃가마의 지붕을 덮거나 이불로 만들어 사용하였다. 이런 특징으로 조선 말기의 중산층에게 큰 인기가 있었을 것인데 특히 정서상 무관 집안에 더욱 많이 걸렸을 것이다.
 

호피장막도
호피장막도 8폭 병풍 지본채색 19세기 제작 128cm X 355cm 리움미술관 소장.

표범 가죽이 휘장처럼 길게 드리워진 8폭 병풍. 가운데 장막을 살포시 들추니 선비의 방이 보인다. 펼쳐진 책과 안경이 서안(書案) 위에 놓였고 주변엔 촛대, 향로, 공작 깃털 등 화려한 기물이 널려 있다. 주인은 어디 갔을까. 청동 골동품과 장신구, 우아한 다기(茶器)를 보아 꽤 고상한 취향을 가진 선비인 것 같다.

한 사람 작품이 아니다. 표범 가죽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호피도’ 위에 누군가 일부를 뜯어내고 선비의 서재 풍경을 그려 넣었다. 독서에 열중해 있던 선비가 잠시 자리를 비운 순간을 사진가의 ‘스냅 샷’처럼 절묘하게 포착했다. 장막 뒤엔 뭐가 더 있을까 상상하게 만든다. 조선시대 말 신분제가 무너지는 혼돈 속에서 양반의 권위를 세우고 싶은 심정이 반영된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豹死留皮 人死留名)’는 속담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의 호랑이는 죽어서 호랑이 가죽 그림을 남겼다. 외국에는 진짜 호랑이 가죽을 장식하거나 호랑이 그림을 그린 경우는 많이 있지만 호랑이 가죽문양을 그림으로 그린 것은 찾기 어렵다.

호피무늬는 그 옛날 원시인부터 지금의 패션디자이너와 샐럽들이 매우 사랑하는 패턴이다. 소위 패션니스타의 핫 아이템에는 반드시 들어가 있으며 강렬한 인상을 돋보이게 하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아이템이기도 하다. 작년 겨울 여배우 엄정화가 호피무늬라는 곡을 발표했다. 가수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도 세지만, 노래가사의 내용도 우리시대 쎈 언니가 아직 죽지 않았음을 과시했다.

2021년 봄에 작정하고 호피장막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호피장막도
호피장막도.

호랑이 털 무늬를 그리다 보니 이날치 밴드의 노래 가사 속 범이 진짜 내려와 외치는 것 같다. “나 아직 죽지 않았어.. 나 아직 한창이야.. 나는 그 자리에 있어” 라고 외치는 것 같다.

<박승온ㆍ사단법인 한국현대민화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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