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호 경영칼럼] 눈의 시대, 콜라보와 데카르트
[박명호 경영칼럼] 눈의 시대, 콜라보와 데카르트
  • 승인 2021.04.11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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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호 계명대학교 석좌교수, 전 계명문화대학교 총장
며칠 전, 대구현대미술가협회가 주최한 ‘대구현대미술2021전’을 다녀왔다. 대구문화예술회관 전관에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이 전시되었다. 특히 미술에 음악을 접목한 ‘오케스트라 콜라보전’은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다. 오케스트라 단원 및 무용수와 작가가 1:1 매칭을 통해 음악과 악기 그리고 무용 동작을 표현한 ‘콜라보’ 작품에서 융합의 하모니, 예술적 독창성과 진정성이 보였다.

‘콜라보’란 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의 약자다. 우리말로는 협업이나 합작 또는 공동작업 등으로 표현될 수 있겠지만 통상 ‘콜라보’라고 쓰인다. 마케팅에서의 ‘콜라보’는 이미 매우 흔한 일이다. 주로 유통업계와 식음료업계에서 왕성한 ‘콜라보’가 이뤄졌다. 최근 가장 성공적인 것은 아마도 CU와 대한제분이 협업으로 탄생시킨 ‘곰표 밀맥주’일 것이다. 대한제분의 마스코트인 곰을 그려 넣은 수제맥주가 출시 일주일 만에 30만개가 완판되면서 큰 화제를 불렀다. 이후 ‘곰표 시리즈’ 상품들이 쿠션팩트, 클렌징폼 등 화장품까지 영역을 넓혀가며 10종 이상 출시되었다. 지금은 ‘콜라보’ 전성시대라고 할 정도로 영역과 경계를 허물며 전개되고 있다.

‘콜라보’의 매력은 ‘의외성’과 ‘놀라움’이다. 새로운 것과 재미에 열광하는 MZ세대의 취향에 초점을 맞춘다. 그들은 가격대비 재미가 큰 ‘가잼비’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인지 전혀 연결성이 없는 브랜드들이 브랜드 파워와 아이디어를 결합하여 소비자들을 공략하고 있다. 심지어 말표 구두약 통에 초콜릿을 넣어 판매하기도 했다. 참이슬 백팩, 죽떡먹 떡볶이, 슈프림 오레오, KFC 치킨 신발 등을 비롯해 음료와 문구류, 식료품과 화학약품, 주류와 디저트류, 제약업과 패션 브랜드의 협업까지 등장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소비자의 혼란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마케팅에서 또 다른 유형의 ‘콜라보’는 ‘아트마케팅(Art Marketing)’이다. 제품의 디자인이나 광고 등에 예술, 특히 명화를 이용하여 브랜드 이미지를 새로운 차원으로 승화시키는 감성마케팅이다. 예술을 담은 디자인 상품을 선호하는 ‘아티젠(Arty Generation)을 겨냥한다. 2000년대 중반부터는 기술(technology)에 예술(art)을 접목한 ‘데카르트 마케팅(Techart Marketing)’이 등장했다.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데카르트’와 발음이 비슷해서 ‘데카르트 마케팅’으로 바꾸어 부른다.

이 분야의 원조는 패션브랜드 ‘쌈지’다. 또한 대표적 성공 사례는 단연코 동원F&B의 ‘덴마크 우유시리즈’다.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피리 부는 소년,’ ‘리비에르씨의 초상’ 등의 명화를 도입하여 극적인 매출 신장을 달성했다. LG전자의 DIOS 냉장고도 꽃의 화가로 유명한 하상림의 작품을 활용한 아트디오스(Art DIOS)라는 제품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미술관을 집으로 옮긴 인테리어 TV’로 알려진 삼성전자의 더 프레임 TV도 매우 성공적인 협업 사례다. 나아가 약품, 과자류, 화장품, 금융 등에 이어서, 최근에는 자동차까지 거의 모든 업종에서 ‘데카르트 마케팅’이 널리 활용되고 있다.

해리 벡위드가 ‘언씽킹’에서 주장한 것처럼 우리는 ‘눈의 시대(age of eye)’에 살고 있다. 제품을 차별화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질수록 기업은 ‘시각적 차별화’를 시도한다. 더구나 성능이나 가격 등 합리적 요소들은 더 이상 소비자 선택의 최우선 조건도 아니다. 소비자는 주로 비언어적인 감각을 통해 소비현상을 일으킨다. 모든 감각 중에서 시각이 다른 감각보다 스무 배나 더 강하다고 한다. 전문가들조차 시각 때문에 싸구려 와인과 고급 와인을 구별하지 못한다. 시각을 통해 맛을 상상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람들은 눈으로 생각한다.

사람들은 언어가 생기기도 전에 이미 눈을 즐겁게 하는 도구들을 만들었다. 심지어 원시인들이 만든 손도끼에서도 심미적인 요소가 발견된다. 이렇듯 우리 모두는 아름다운 것을 갈망한다. 밀레의 ‘이삭줍기’ 고흐의 ‘해바라기’ 클림트의 ‘키스’ 드가의 ‘발레수업’ 등의 명화가 이미 생필품 디자인까지 파고들었다. 제품에 디자인과 예술 작품을 입히는 것은 이제 더 이상 겉치레나 사치가 아니다.

하지만 멋진 디자인과 아름다운 명화가 소비자의 눈길을 끈다고 해서 그들의 마음과 믿음까지 얻게 되는 것은 아니다. 시각적 차별화는 상품 속에서 예술적 아우라(aura)를 느끼려는 소비자의 심리를 충족하겠다는 기업의 약속이다. 결국 ‘나는 예술이다. 고로 나는 잘 팔린다’라는 명제가 성립되려면 기업이 이 약속을 신실하게 지켜서 소비자의 마음과 신뢰를 얻어야 한다. 즉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르네 데카르트의 명언처럼, 우리의 고객은 누구며 그들의 진정한 바람은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사유와 통찰이 최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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