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을 딛고 선 사내, 삶을 온몸으로 받아내다…수성아트피아, 조각가 이강훈展
돌을 딛고 선 사내, 삶을 온몸으로 받아내다…수성아트피아, 조각가 이강훈展
  • 황인옥
  • 승인 2021.04.12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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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은 사람, 가슴 펴고 선 사람…
다양한 모습으로 희로애락 표현
10년 만에 개최하는 7번째 전시
돌·청동으로 만든 신작 ‘오롯이’
돌 빌려와 아름다운 자연 표현
전통 재료로 현대 생존법 모색
이강훈작-오롯이
이강훈 작 ‘오롯이’

이강훈의 조각은 친근하다. 적어도 근육질 몸매의 완벽한 아름다움으로 각인된 미켈란젤로의 조각 앞에 섰을 때의 주눅은 들지 않는다. 고개를 숙이고 좌절하는 그저 그런 남자와 가슴을 열어젖히고 희망을 향해 포효하는 깡마른 남자의 모습들에서 특별하지 않은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조각가 이강훈 초대 전시인 ‘오롯이’전이 열리고 있는 수성아트피아 전시장이 ‘맑았다’, ‘흐렸다’ 한다. 깡마른 남자가 어깨를 움츠리며 고뇌에 차 있거나, 바닥에 주저앉아 망연자실 하거나, 하늘을 향해 파이팅 하는 모습을 취하고 있는 등 조각에서 뿜어져 나오는 다양한 감정들이 전시장을 휘감고 있기 때문이다. 인체에 밀착된 목도리나 나무, 구름 등의 오브제 또한 남자의 감정상태를 부추기는 은유적 장치들로 목도된다.

다양한 인간군상 조각들에서 여실히 드러나는 작가의 메시지는 하나다. 인생의 희노애락. “이번 전시는 마냥 불행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오롯이 행복하지만도 않았던 나의 삶에 대한 고백이자, 인간의 보편적인 삶에 대한 서술이다.”

작품 제목이자 전시 제목인 ‘오롯이’는 작가가 전하려는 메시지다. ‘오롯이’의 사전적 의미는 ‘외롭다’와 ‘부족함 없이 온전하다’라는 서로 다른 의미를 가리킨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두 의미를 중의적으로 사용한다. 그는 “삶 속에서 다양한 감정들이나 상황들을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삶 자체가 오롯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한다.

인생의 단면을 조각으로 구현하기까지 10년이란 세월이 필요했다. 대학 졸업 후에 가진 첫개인전을 시작으로 6회의 개인전을 열었지만 지난 10여년간 그의 작품을 전시장에서 볼 수는 없었다. 그는 지난 10여년 간 공공 조각에 집중해왔다. “지난 10년은 세 아이의 아버지로서의 무게를 감당해온 시간들이었다.”

공공 조각을 하며 가장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었지만 가슴 한켠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을 막을 수는 없었다. 전업 조각가로 활동하는 동료들에 대한 부러움은 커져갔고, 그럴수록 알 수 없는 부끄러운 감정들이 밀려왔다. 하지만 그의 30대를 괴롭혔던 당혹스러운 감정들은 불혹을 맞으면서 조금씩 잦아들었다.

“불혹이 되면서 나 역시 작업을 계속해 오지 않았는가? 왜 부끄러워 해야 하나?”라는 자각이 일었고, “세 아이의 아버지로, 제자의 스승으로, 누군가의 아들로 살아온 부족함 없는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자신의 삶 자체가 예술이었다는 현실을 발견하고 그것에서 위로를 받게 되자 “이제는 조각가 이강훈으로 세상과 소통해도 되겠다”는 확신이 차올랐다.

이번 전시는 지난 10년간의 변화 과정을 보여주는 섹션과 이번 전시의 주제전에 해당하는 신작을 소개하는 섹션으로 구성된다. 신작 ‘오롯이’는 자연과 작가 자신과의 협업의 산물이다. 작품은 자연석 위에 인체 조각이 한 몸처럼 어우러진 형태를 띤다. 작업은 자연에서 작품에 활용할 수 있는 크기의 자연석을 구하고, 자연석의 형태에 맞는 사람형상을 조각하는 순으로 진행된다.

자연석과 조각과의 만남은 공공 조각이 준 영감이다. 공공조각품 주변에 있는 소나무의 완전무결한 아름다움을 접하면서 “인간의 예술작품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따라 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 깨달음이 자연과의 합작으로 연결되었다. “내 조각이 자연물과 싸워서 살아남고 가치를 인정받을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자연물의 힘을 빌려오게 됐다.”

자연에 기대고픈 심리는 자연석을 재료로 채택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돌의 단면을 잘라 바닥에 설치하며 흡사 돌이 식물이나 나무가 땅에서 성장한 자연물같은 효과로 구현한다. 돌이 바닥에 뿌리를 내리면서 안정감이 담보됐고, 안정감은 전시장과 작품과의 이질감을 상쇄시키는 장치로도 기능했다. 이는 곧 내부와 외부 공간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효과로까지 이어졌다.

“외부의 자연을 전시장으로 끌어들이는 것을 목적으로 했지만, 막상 돌이 전시장 바닥과 한 몸이 되자 전시장이 자연인 것 같은 효과가 나타났다.”

작품 ‘오롯이’는 전통 조각으로의 회귀에 대한 선언적인 작품이다. 6회의 개인전 동안 추구했던 스티로폼과 모피 등의 현대적인 재료의 사용에서 벗어나 조각의 전통 재료인 돌과 청동으로 회귀했다. 이 또한 공공 조각이 준 선물이었다. “돌과 청동 등의 전통 재료가 품고 있는 견고함이나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공공조각을 하면서 경험하게 되어 이번에 재료로 선택했다.”

돌과 청동은 이제 조각가 이강훈의 숙제다. 특히 체취나 기법적인 면에서 한계를 노출하는 자연물의 속성을 극복하는 것이 그의 과제다. 작가는 “앞으로 자연적인 재료를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지를 과제로 남겨두고 있다”고 했다. “전통적인 재료를 사용한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이유를 찾아 갈 것이다. 이것은 곧 가장 전통적인 재료로 현대작가로 살아남는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과도 연결된다.”

이번 전시는 조각의 전통 재료로 회귀했다는 점에서 전환기적 사건에 해당된다. 그가 지금까지 선보였던 초기 작품들은 ‘반 아카데미’에 집중됐다. 그 첫 시작이 1회 개인전이었다. “대학에서 배운 조각의 정석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조각을 하겠다”는 의지로 조각의 전통 재료에서 탈피해 스티로폼이나 모피를 채택했다. ‘반 아카데미’는 아카데미에 대한 반발이라기보다 조각가로 살아남기 어려운 현실에 대한 비틀기에 해당됐다.

“대단한 선배들도 첫 개인전 이후에 생활 전선으로 뛰어드는 것을 보고, 나 역시 그런 수순을 밟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자 기왕 한 번 하는 전시인데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보자는 결론을 내렸다.”

재료적인 측면에서 제약을 경험했지만 주제적인 면에서 자유를 추구했다. 조각에서 익숙하지 않은 이야기 구조를 적극 활용한 것. 첫 전시의 이야기 구조는 시놉시스로부터 출발했다. 간단한 시놉시스를 쓰고, 시놉시스 속 등장인물들을 형상화하는 방식으로 전시가 꾸려졌다. 첫 개인전의 주제는 인간세상을 동물세계에 의인화하는 방식으로 구현됐다. 의인화는 사람의 얼굴을 한 동물의 형상으로 추진됐다. 사랑이나 희생, 또는 희망과 같은 순수하고 고결한 의미들을 세련된 이야기 구조 속에서 동물형상으로 의인화됐다. 첫 번째 시놉시스 속 등장인물들은 2회부터 4회까지의 개인전을 거치면서 다양하게 확장, 발전됐다. 주인공이 토끼에서 지혜의 신령인 사슴으로 그리고 작은 전령으로 변화를 거듭했다.

이전 전시에서 온전한 사람 형상이 완성됐지만 이미 2회 개인전부터 사람형상이 등장했다. ‘B동 612호 청년의 휴식’이라는 작품에서 어린왕자의 모습을 하고 있는 작가 자신을 형상화했다. “어린왕자를 닮은 형상은 그 시기를 감당해 내는 자랑스러운 내 모습이었다.” 청년인 어린 왕자가 성인으로 발전하고, 작품 ‘오롯이’에서는 일반 성인으로까지 확장됐다. 이번 전시의 두 번째 섹션에서 그의 인체형상들이 변화해온 여정을 소개하고 있다. “재료나 형태의 변화를 통해 작가가 어떻게 작품을 발전시켜왔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시놉시스로 구현한 이전 작업이나 삶의 희노애락을 구현한 신작이나 모두 서사 구조로 짜여있다. 이야기 구조를 선호하는 그의 성향은 이번 전시에 작품 전시 스타일로 드러난다. 전시장 입구에서부터 큰 작품을 배치하고, 뒤로 갈수록 작은 작품을 배치하는 방식으로 원근법을 구현한다. 순수하게 작업의 조형성이나 조형언어 또는 조형개념으로 작가로서의 희열을 누릴 수 있다고 판단하는 다른 작가들과 달리, 그는 이야기 구조 속에서 희열을 누리고 있다.

“과거 작품이 동화에서 시작했다면 지금의 작품은 짤막한 단편시다. 길지 않은 인생인데 내가 좋아하는 형상과 철학을 녹아내고 싶다.”

그도 조각가다. 형상에 대한 열망이 없을 수 없다는 의미다. 귀가 도드라진 토끼나 뿔이 인상적인 사슴, 또는 다양한 감정상태를 가진 인간의 모습 등은 조각가 이강훈의 형상에 대한 갈망 의지가 표출된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전시는 18일까지 수성아트피아 호반갤러리에서.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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