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전달하는 최소 단위
글자체 따라 분위기 천차만별
굵기·간격마다 이미지 달라져
대구지역 곱창집의 이미지 변신
영문 고딕체로 깔끔 로고 개발
화이트풍 인테리어· 네온사인
모던한 분위기로 ‘힙’함 강조
‘분식점’하면 떠오르는 어딘가 모르게 어수룩하고 친근한 분위기와 빨간색의 간판과 메뉴판 이라던지, ‘고깃집’하면 떠오르는 특유의 허름하고 소탈한 느낌의 간판과 촌스런 옛글씨체들, 간판집에서 일괄적으로 찍어낸 듯한 비슷한 양식의 디자인과 글자체들이 대부분이였다. 우리가 해당 업종을 떠올리면 뇌리 속에 그려지는 고정관념과도 같은 이미지의 것들이랄까.
지금의 트렌드는 미니멀이다. “가장 심플한 것이 가장 화려한 것이다.”라고 할 만큼 단순하고 미니멀리즘한 브랜드이미지가 되려 뇌리에 먼저 와 담긴다. ‘심플하지만 화려하고 화려하지만 심플하게’라는 표현이 이것들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동성로의 곱창집 ‘곱 타운(Gob Town)’은 기존에 우리가 생각하는 기름튀기는 허름한 곱창집이미지를 탈피한 브랜딩 성공사례다. 얼핏 보면 감성 갤러리나 칵테일바를 연상시키는 간판은 영문형 고딕체의 깔끔한 로고디자인으로, 낯선 곱창집 이미지로 설레는 맘으로 손님을 이끈다. 내부로 들어가면 펼쳐지는 인테리어는 더욱 쎈세이션하다. 온통 화이트풍의 네온사인과 기하그래픽의 포스터들이 감각적으로 디스플레이 되어 있어 모던하고 세련된 느낌이다. 아저씨들이 걸죽하게 소주 한 잔씩 걸치며 곱창을 뒤집는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네온사인이 들어간 붉고 푸른 조명들이 힙한 팝송과 재즈의 선율에 어우러져 흐르고, 하나의 요리로 완성되어 나오는 곱창은 포크로 고상떨며 찍어먹는다. 마치 모던한 클래식바에 앉아 곱창을 먹고 있는 센치한 기분마저 든다. 일반 곱창집에서는 눈을 씻고 찾아보기 힘든 영문형의 홍보전단, 메뉴판, 사인물들이 조화롭게 브랜딩을 이루고 있다. 어쩌면 대구의 대표 맛집을 찾는 외국인 친구들에게도 거부감없이 소개하고 맛보여줄 수 있는 현대식 곱창집 컨셉을 겨냥한 것일까.
영문 지고 국문 뜬다
한글 자음·모음 분해하고
가독성·효율성까지 살린
고유한 브랜드 서체 개발 ‘붐’
거기에 ‘나는 너뿐이고 곱창은 곱뿐이고’처럼 상업적인 듯 상업적이지않은 문학적감성마케팅까지 입으니, 1.5초안에 소비자의 눈을, 3초안에는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을 수 있을까. 무릇 만인에게 사랑받는 잘난 브랜드들이란 5초도 채 되지 않는 시간안에 눈과 마음을 사로 잡는다. 그리고 일반인들은 모르는 눈물겨운 디테일이 존재한다. 그것이 우리가 늘 작은 텍스트 하나하나를 존중하고 수십수백번씩을 고민하며 요리 조리 돌려보고 늘려보고 덧붙이고 빼가며 고군분투하는 결과물이다.
같은 글자라도 서체 종류에 따라 풍기는 분위기와 가독성이 천차만별이며, 설령 같은 서체라 하더라도 글자의 굵기와 크기, 색상, 간격, 기울기 등에 따라 이미지가 세분화되어진다. 더욱이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그 수치값에 따라서도 수백여가지의 느낌들로 경우의 수가 펼쳐진다. 그 중 가장 이성적이면서도 감성적이고. 대중적이면서도 특별할 수 있는 눈물겨운 원픽으로 선택받은 타이포그래피들이 우리가 스쳐지나는 간판 속에, 포스터속에, 상품의 패키지속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들이 적용됨으로써 단순한 깊이있는 생동감이 생긴다는 것이 매번 가슴뛰고 놀라울 뿐이다. 나비의 날개짓 같은 파급효과가 가져오는 기업의 매출과 무엇보다 사람들의 인식속에서 오래오래 자리하게 될 영광들 모두.
수치값으로만 만들어지는 것이 글자가 아니다. 그것 외에도 다양한 공간과 형태 그리고 긴장감과 웃음, 힘과 품위 같은 것이 공존한다. 그래서 필자는 늘 이 활자들의 힘에 대해 연구하고 디자인하며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을 가지고 있다고 많은 클라이언트들과 고객들에게 오늘도 이야기한다.
나아가 글자는 계속해서 진화할 것이며 진화해야만 한다. 인간의 고령화는 심화되고, 어떤 환경에서도 글자는 쉽게 읽혀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에 새로운 매체와 환경 속에서 적응해나가야 하니까. 더 이상 글자는 2차원의 평면에서 움직임 없는 존재가 아니라 움직이고 생동하는 홀로그램과 같은 3차원, 4차원 공간에서도 사용된다. 지금 순간에도 미래 환경에 대응하는 새로운 매체들이 생겨나고 그것에 맞춰 새로운 글자들이 탄생하고 있다.
누군가를 찬미할 때에는 유려한 이탈릭체를, 심장의 고동을 울리는 선언문에는 돋움체를, 신뢰도를 높이고자 할 땐 신문명조체를 쓰는 등, 조용한 체가 필요한지, 근육질의 힘 있는 체가 필요한지, 사랑스럽게 간질이는 체가 필요한지 디자이너의 감각으로 우리네 일상의 정서를 리딩&메이킹해야 한다. 기업의 매출을 결정짓는 광고의 완성도가 대충 올라탄 글씨들로 인해 실패하는 것을 여러 차례 보았다. 그 반대로 별거 없던 것이 단어와 서체, 디자인안에서 상관관계를 가지며 흥미로운 사례를 만들어낸 적도 있다. 글 한 자 한 자가 완성도를 결정짓는 작고도 큰 요소이다. 바로 이런 디테일들이 숲을 이루는 나무 한 그루 한 그루 마다의 진심같은 것이 아닐까.
류지희 <디자이너·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