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가족들을 포용하자
세상의 모든 가족들을 포용하자
  • 승인 2021.04.28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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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희 젠더와 자치분권연구소장
법이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는 못하지만 법 또한 만들어지고 바뀌면서 현실반영을 위한 노력을 지속해 왔다. 실제 지난 30여 년간 진행되온 여성과 가족 관련 법의 진화는 놀라운 수준이다.

호주제 폐지를 비롯하여 성매매특별법에서 낙태죄 폐지까지. 하지만 여전히 법적으로 미비한게 많다는 사실은 그동안의 불편부당함을 짐작하게 한다.

가족은 혼인, 혈연, 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적 기본 단위이다.

현행 민법과 건강가정기본법상 ‘가족’은 혈연과 결혼이 중심이다. 자신을 중심으로 배우자, 부모자식, 형제자매가 법적 가족이다. 배우자의 가족도 자신의 가족이다. 하지만 수십 년을 함께 산 동거인은 법적 가족이 아니다. 이 때문에 가족 지원책에서 소외되고 상속도 쉽지 않다.

결혼을 하지 않고 동거를 하는 커플, 사실혼이나 노년 동거 부부의 법적 권리 보장이 필요한 사례는 주변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이에 가족의 개념 확장 및 다양한 가족 공동체가 활용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갖는다.

지난해 여성가족부가 성인 1,500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혼인과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생계와 주거를 공유한다면 가족이 될 수 있다”고 응답한 사람이 전체의 69.7%에 달했다.

이번에 마련된 ‘제4차 건강가정 기본계획’은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인정하는 국민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이들을 새 가족으로 인정하고자 한다. 나아가 혼인과 혈연, 입양만을 가족으로 인정하는 건강가정기본법과 민법 규정의 삭제를 추진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가족 범위가 넓어지면서 ‘배우자’ 정의도 확대된다.

현재 혼인 신고를 하지 않고 함께 사는 사람 사이에서 폭력이 발생하면 가해자를 ‘가정 폭력’으로 처벌하기 어렵지만 앞으로는 달라지게 된다.

반면에 가족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가족도 생긴다. 양육 의무를 저버린 부모가 먼저 숨진 자녀의 유산을 상속받지 못하도록 하는 민법 개정안(이른바 ‘구하라법’) 도입도 검토한다. 이 법은 가수 고 구하라 씨가 사망하자 어린 시절 집을 나간 친모가 유산 상속을 주장하면서 도입 필요성이 제기됐다.

자녀가 반드시 아버지의 성을 따르게 한 ‘부성 강제’ 원칙은 이미 2008년 폐지됐다. 이를 대체한 부성 우선 원칙도 이번에 폐지한다. 부부는 아이를 낳은 뒤 출생신고를 할 때 누구의 성을 따를지 협의해 결정할 수 있다. 부모가 자녀를 함께 낳았는데 한 성만 일방적으로 따르게 하는 것은 성평등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아버지 성을 따르는 문화가 단번에 바뀌지는 않겠지만 법적으로 강제된 조항 및 원칙이 사라진다는데 의미를 둘 수 있다. 재혼한 부부의 아이들이 성(姓)이 달라 따돌림을 받는 일은 이제 상상속에서나 가능한 일이 될 것이다.

해외 일부 국가는 자녀가 부모 성을 함께 쓰거나 아예 자녀의 성이 부모와 다른 경우도 있다. 스페인어권 국가는 통상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을 함께 쓰며 네덜란드는 부모가 출생 전 또는 출생 신고 때 아이의 성을 정할 수 있다.

한편,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은 방송인 사유리 씨는 우리 사회에 ‘비혼 출산’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는 ‘비혼(非婚) 단독 출산을 어떻게 볼 것인가.

여성가족부가 올해 비혼 단독 출산의 법·윤리적 쟁점과 관련해 대국민 설문조사와 간담회를 열고 의견을 수렴한다니 출산의 전제가 되었던 혼인신고는 설 자리가 좁아진다.

이미 한국 사회는 1인 가구가 부부와 자녀끼리 사는 전통적인 가족 형태보다 많아졌다.

2019년 기준 우리나라의 1인 가구 비중은 전체의 30.2%, 2인 이하 가구는 절반을 넘어 전체 가구의 58.0%에 달한다.

정부는 현실에 맞게 비혼 동거, 사실혼, 위탁가정 등 새로운 형식의 가족을 법적으로 보호해야 하며 개별 가족들도 다양한 가족들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필요하다.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정상가족도 비정상 가족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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