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3관왕 ‘노매드랜드’ …낯선 길 위에서 나를 마주하다
아카데미 3관왕 ‘노매드랜드’ …낯선 길 위에서 나를 마주하다
  • 배수경
  • 승인 2021.04.29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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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펀’ 낡은 밴 타고 유랑
경제 난민의 삶 생생하게 그려
다큐처럼 행적 좇는 촬영 기법
美 중서부 광활한 풍광 돋보여
프란시스 맥도맨드는 '노매드랜드'로 세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노매드’(nomad)는 사전적 의미로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자유롭게 이주하면서 생활하는 사람들, 즉 유목민을 뜻한다. 제시카 브루더가 쓴 동명의 논픽션을 원작으로 한 영화 ‘노매드랜드’는 평생을 일했지만 집 한 채 없는 사람들, 퇴직연금도 넉넉하지 못해 일자리를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부유(浮遊)하는 삶을 보여준다.

“2011년 1월 31일, 88년 역사의 US석고는 수요 감소를 버텨낼 수 없어서 네바다 주의 엠파이어 공장을 폐쇄했다. 7월에는 공장 지역 우편번호 자체가 없어져버렸다.”라는 자막과 함께 영화는 시작된다. US석고의 폐쇄는 단순히 하나의 회사가 문을 닫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한 도시 전체의 붕괴를 의미한다. 주인공 펀(프란시스 맥도맨드)은 ‘선구자’(vanguard)라 이름 붙인 낡은 밴에 의지해 길을 떠난다.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그녀를 따라다니는 카메라를 통해 관객들은 그녀의 여정에 동참하게 된다. 영화는 초보 노매드인 그녀의 성장기이자 그녀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녀가 길 위에서 만난 이들은 대부분 금융위기와 불황을 겪으면서 주거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차 한 대에 몸을 의지하고 떠돌아다니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노년층이다.

마당에 요트를 사두고 일만 하다 세상을 떠난 동료를 보고 길을 떠난 사람, 시한부 인생이지만 병원이 아닌 길 위의 삶을 선택한 사람 등 그들이 풀어내는 사연은 ‘나중에’라는 것이 얼마나 부질 없는 바람인지도 생각해보게 된다. 

영화는 완벽하지 않은 사회 시스템 속에서 흔들리는 노년을 보내는 이들의 삶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을 뿐이지만 ”평생 모은 돈에 빚까지 내서 집을 사라고 부추기는 것은 옳지않다“고 불편한 속내를 드러내는 펀의 짧은 대사를 통해 우리에게 슬쩍 경고를 던지는 듯하다.

노매드랜드
영화 ‘노매드랜드’는 미국 중서부의 풍경을 배경으로 주인공 펀이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잔잔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아무것도 담지 않은 듯한 표정으로 캠핑장을 느릿느릿 걸어다니거나, 자신의 공간에 몸을 뉘고 오롯이 시간을 견뎌내는 듯한 펀의 모습은 가슴 한 켠을 저릿하게 만든다.

영화를 보면서 누구의 삶이 옳고 누구의 삶이 틀렸다고 규정짓는 것은 무의미하다. ”왜?“라는 물음 역시 그렇다. 그녀는 수시로 ”이 곳에서 함께 살자”는 권유를 받는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편하고 안정적인 공간이 그녀에게는 불편하게 여겨질 뿐이다. 중고로도 별 가치가 없는 차가 지금의 그녀에게는 안식처이자 집이다. 그녀에게는 거주할 곳이 없는 것(houseless)과 집이 없는 것(homeless)은 다른 의미다.

“이 생활을 하면서 제일 좋은 건 영원한 이별은 없다는 거예요. 늘 ‘언젠가 다시 만나자’고 인사를 하죠. 그리곤 만나요.” 밥 웰스가 전해준 말처럼 그렇게 그녀의 시간은 여전히 길 위에서 흘러가고 있을 것이다. 

펀에게 낡은 자동차는 자신의 삶을 담은 '집'이다.

 

스크린을 가득 채운 미국 중서부 지역의 풍광을 보노라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맥도맨드가 왜 “대형스크린으로 보시길 권한다”라는 수상소감을 남겼는지를 알 수 있다.

린다 메이, 샬린 스완키, 노매드를 위한 RTR행사의 주최자 밥 웰스 등은 실제 원작 속에서 등장하는 인물들, 즉 노매드 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이다.

중국출신의 젊은 감독 클로이 자오가 각색, 연출, 편집한 영화는 지난해 77회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에 이어 지난 25일(현지시간) 열린 제 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배수경기자 micbae@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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