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좀 주소
물 좀 주소
  • 승인 2021.05.05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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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BDC심리연구소장
한 남자가 사막을 걷고 있다. 그는 몇십 일째 장거리 트레킹(trekking)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산길을 걸었고, 계곡을 걸었다. 때론 시골의 한적한 들길을 걸었다. 그날은 트레킹 코스 중 가장 힘들다는 사막길을 걸어가는 중이었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 아주 최소한의 물만 들고 왔는데 사막의 햇살이 너무 뜨거운 나머지 중간지점에 와서 물은 바닥을 보였다. 앞으로도 반나절은 더 걸어가야 쉴 수 있는 곳이 나온다. 그런데 타는 목마름이 그를 힘들게 한다. 남자는 그 어떤 것보다 간절히 물을 마시고 싶다. 그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물이다. 하지만 가도 가도 물은 보이지 않는다. 이따금 보이던 선인장마저 보이지 않는 뜨거운 사막 한가운데 남자가 서 있다. 얼마나 더 오랜 시간을 버틸지 이제 그도 자신할 수 없다. 그냥 한발, 한발 앞을 힘겹게 걸을 뿐이었다.
그때였다. 저기 앞에서 낙타를 탄 사람이 남자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구세주를 만난 듯 기뻤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사막을 가로질러 이웃 마을로 물건을 팔러 다니는 상인이었다. 사막에서 오랜 생활을 한 그는 사막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없었다. 구세주를 만났다고 남자는 생각했다. 그에게 정중히 한 모금의 물을 요청했다. 하지만 그에서 돌아온 것은 사막에서 살아남는 노하우에 대한 일장 연설이었다. "제가 예전에 길을 잃어 며칠간 물 없이 사막 한가운데 있어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정말 끔찍합니다. 제가 어떻게 살아났고, 물을 구했는지 알려 드리겠습니다. 이러쿵저러쿵~" 세밀하고 고급진 정보를 남자에게 알려주었다. 누구한테도 말한 적 없다는 아주 비밀스러운 자신의 이야기도 재미나게 곁들이면서 말이다.
상인의 이야기는 참으로 좋은 말이다. 하지만 남자가 필요한 것은 그런 세밀한 고급의 정보가 아니라 지금 당장 목을 축여줄 한 모금의 물이었다. 이야기가 모두 끝나고 상인은 남자에게 "행운을 빌어요."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져 갔다.
다시 길을 걸어야 했다. 이대로 지체했다가는 큰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이다. 목은 타들어 오고 등 뒤에 가방은 지친 몸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힘들어도 걸어야 했다. 한 걸음 한 걸음 젖 먹던 힘까지 보태어 걷고 있던 순간 다시 앞에 사람이 나타났다. 그도 남자처럼 장거리 트레킹을 하는 사람이었다. 이제 누구보다 자신의 입장을 잘 아는 사람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남자에게 준 것은 담요였다. "여기 사막은 밤이 되면 온도가 내려가 매우 춥습니다. 자~여기 나의 담요를 당신한테 선물하겠습니다. 저는 트레킹을 마치고 내일 집으로 돌아갈 거라서 당신에게 더 필요할 것 같네요. 아주 비싸게 주고 산 담요니 잘 사용하세요." 그도 역시 참 고마운 사람이 틀림없다. 하지만 그 남자는 지금 한 모금의 물이 필요하다.
이제는 더 견디기도 힘든 상태가 되었다. 더 이상 걸을 힘도 없다.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순간 한 노인이 눈앞에 서 있다. 말할 힘도 없는 남자를 향해 노인은 어깨에 둘러멘 물통을 열어 남자에게 건넸다. 남자는 물을 받아 들고 정신없이 물을 마셨다. 이제 살 것 같았다. 앞이 보였고, 말할 힘이 났다. 사막에게 살아남는 고급의 정보를 준 상인보다, 비싼 담요를 나눠준 트레커 보다 물 한 모금을 준 노인이 더 고마웠다.
목마른 사람에게 필요한 건 물 한잔이다. 울고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건 같이 울어줄 수 있는 마음과 한 방울의 눈물이다. "힘내라 내가 이렇게 이겨냈다" 등의 정보가 아니다. 그냥 같이 울어주는 것이다. 먼 길 걸어와 목이 너무 마른 사람에게 좋은 점퍼는 무용지물이다. 값비싼 운동화도 지금 당장에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가 무엇이 필요한가보다 자신의 기준에서 이렇게 해주면 좋아하겠지 라고 생각한다.
목이 마른 사람에겐 물을 줘야 한다. 물이 최고의 위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한대수씨가 부른 '물 좀 주소'나 기타 튕기며 불러 봐야겠다.
"물 좀 주소 물 좀 주소 목 마르요 물 좀 주소, 물은 사랑이요 나의 목을 간질며 놀리면서 밖에 보내네. 난 가겠소 난 가겠소 저 언덕 위로 넘어가겠소 여행 도중에 처녀 만나본다면
난 살겠소 같이 살겠소 물 좀 주소 물 좀 주소 목 마르요 물 좀 주소 그 비만 온다면 나는 다시 일어나리 아 그러나 비는 안 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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