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월급날에만 먹던 추억의 ‘백마강 통닭’ 아십니까
아버지 월급날에만 먹던 추억의 ‘백마강 통닭’ 아십니까
  • 김종현
  • 승인 2021.05.05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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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음식 세계로> - (14) 치킨산업의 어제와 오늘
최초의 전기구이통닭
1957년 ‘서울 명동영양센터’
1960년 대구엔 ‘백마강 통닭’
80년대까지 서민에겐 귀한 음식
양념치킨의 등장
대구 계성통닭·대전 페리카나
양념반·후라이드반 시대 열어
이후 처갓집·스머프 등 백가쟁명
백마강통닭집
1960년 초 대구에는 백마강 통닭집이 문을 열었다. 그림 이대영

KFC(Kentucky Fried Chicken)는 1930년 데이비드 샌더스(Harland David Sanders, 1890~1980)에 의해 시작되었다. 1969년에 뉴욕주식에 상장했고, 1980년대 중반에 우리나라에 도입, 튀김 닭(fried chicken) 대세를 형성했다.

물론 이전 1957년 서울 명동영양센터라는 최초 전기구이통닭 전문점이 있었다. 1980년까지 서민들에게 ‘월급날 통닭’이라는 개념으로 귀한 음식이었다. 일반서민들은 광고나 영화의 배경으로 명동영양센터를 구경했을 정도다. 3차례 경제개발계획으로 국민소득이 증가함과 동시에 양계장도 늘어났다. 여기에다가 1971년 해표식용유가 시판되었다. 1977년 최초 림스치킨(limschicken.co.kr)이 서울 신세계백화점 본점 지하1층에 개업했다. 1979년 롯데리아(lotteria.com)에서 조각 치킨(chip chicken)을 시판했고, 1980년에 중소규모의 치킨집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1984년 두산그룹이 서울 종로구에 KFC를 도입했다.

1985년 대구에선 계성통닭이, 대전엔 페리카나(pelicana.co.kr)가 최초 양념치킨(seasoned chicken)으로 테이프를 끊었다. 한때는 양념반/후라이드반(Seasoned-Chicken Half Fried-Chicken Half) 시대를 열었다. 이어서 맥시칸 치킨(mexican.co.kr, 1986), 처갓집 양념치킨(cheogajip.co.kr, 1988), 이서방 양념통닭(leeseobangchicken, 1989), 스모프 양념통닭(스모프치킨.kr,1989), 멕시카나(mexicana.co.kr,1989), 사또치킨(1990), 교촌치킨(kyochon.com,1991), 종국이두마리치킨(jongkuk2.com,1992), BBQ(bbq.co.kr,1995), 네네치킨(nenechicken.com,1999), 호식이두마리치킨(9922.co.kr,1999), 부어치킨(boor.co.kr,2005), 별별치킨(bbchicken.com,2008), 치킨파티(chickenparty.co.kr, 2011) 등으로 치킨의 백가쟁명(百家爭鳴)이 이어졌다.

1993년 전국적으로 트럭 장작구이와 숯불 바비큐치킨 열풍, 1995년 BBQ의 인기몰이로 호프집의 술안주라는 소극적인 이미지에서 탈피되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붉은악마(Reds)의 응원으로 맥주와 치킨에 기대이상의 특수(特需)가 왔다. 교촌치킨의 간장치킨(soy-sauce chicken), 파를 닭고기에 가미한 파 닭(onion chicken), 오븐치킨(oven chicken)도 한때 유행했다. 2010년 롯데마트의 속칭 ‘통 큰 치킨사건’을 계기로 아무도 생각 못했던 중저가로 선회했다. 그럼에도 2마리 치킨은 강세를 유지했다. 2015년 가미양념치킨(seasoned chicken), 인기가수 김수지(1988년생)가 광고모델이었던 수미감자와 허니 버터 칩(honey-butter chip)의 여파로 ‘꿀을 넣은 치킨(honey-add chicken)’이 새로운 대세를 만들었다.

◇프라이드치킨의 메카 대구통닭

1957년 서울명동에 전기구이 통닭 ‘영양센터본점’이 개점했다. 1960년 초 대구시에도 중앙네거리 대구은행본점(오늘날 대구은행 중앙로지점) 동쪽 맞은편 길섶(중국 사일동15-1번지)에 ‘백마강 전기오븐 통닭’이 문을 열었다. 당시 문전성시(門前成市)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통닭 크기는 오늘날 ‘호식2마리치킨’이 선호하는 8~9호 정도, 길쭉한 쇠꼬챙이에 빙글빙글 돌아가면서 굽는 모습이 매혹적이었다. 냄새는 무료로 배급되어 길가는 사람들의 입맛을 다시게 했다. 입소문은 홍수처럼 대구외지에도 번저 나갔다. 전기통닭은 기름이 쭉 빠져서 느끼한 맛이 적었다. 먹새가 좋은 사람들에겐 통닭 1마리는 혼자서도 간에 기별이 가지 않았다. 4명의 집안 식구가 맛만 보는데도 최소한 2마리는 되어야 했다. 1980년대까지 ‘아버지 월급날 통닭’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다.

1978년 수성구 수성동 ‘대구 동네통닭’이란 지역브랜드가 전국브랜드치킨에 대등하게 양념프라이치킨의 위상을 드러내었다. 현재도 30여개 가맹점을 갖고 번창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7년 바비큐치킨과 교촌치킨이 당시 ‘5조원 시장에 닭들의 전쟁(chickens’war of 5 trillion market)’을 개전해 1천여 가맹점을 확보했다. 국내치킨산업은 2019년 5월 말 현재 8만 7천개소 치킨가게와 409여 개의 치킨프랜차이즈(chicken franchises)가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따라서 대한양계협회(poultry.or.kr)의 통계자료에 의하면 닭고기 소비량은 연간 4억 2천만 마리, 1일 평균 120만 마리가 소비되고 있다.

변화의 물결

‘튀긴 닭= 비만’ 부정적 인식 생겨

뽕잎치킨·한방통닭 등 시도 다양

끊임없는 메뉴개발로 시장 공략

◇우리나라 치킨산업에 변혁의 발버둥

1962년 ‘몬도가네(Mondo Cane)’ 영화에서 마시고 토하는 아수라장을 보여주었던 독일 뮌헨 옥토베르페스트(Oktoberfest)에서는 매년 50만 마리의 치킨이 소비된다. 독일의 조차지였던 중국 칭다오(靑島)에선 매년 8월 15일부터 국제맥주축제(web.archive.org)를 개최하고 있는데 축제 이후에는 평소의 2배 가량 통풍환자가 증가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튀김 닭(fried chicken)은 요산(uric acid)의 퓨린체((purine body)가 대사이상을 상승시켜 통풍환자에게 쥐약 혹은 프라이드치킨=비만이라는 인식이 생겨나고 있다.

이런 치킨에 대한 인식을 전환시키는 시도가 문경(聞慶) 등지에서 나왔다. 오미자청 양념치킨, 공주의 뽕잎숙성통닭, 상주(尙州) 뽕잎치킨, 경기도 화성(동탄) 한방통닭, 전주 야채비빔치킨, 속초 명태치킨과 인절미치킨, 닭 강정 등이 새로운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을 가미했다. 이런 경영기법으로 ‘유행주기 1~ 2년’설을 무색하게 변혁하고 있다. 장수비결은 끊임없이 변신하는 멕시카나 치킨(Mexicana)을 보면 알 수 있는데 메뉴다양화로 20년 이상 장수하고 있다.

1990년대를 주름잡았던 치킨프랜차이즈 1세대는 오늘의 강자도 내일에 사라지는 혈전을 했으나, 6대강자인 멕시칸, 멕시카나, 페리카나, 처갓집(cheogajip.co.kr,1989), 이서방 및 스머프는 여전히 생존하고 있다. 당대 강자였던 멕시칸치킨(mexican.co.kr)은 1천 100개의 가맹점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성장하는 밑바닥엔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다”는 이상을 갖고 1985년 계성통닭으로 영업을 개시했던 과거 밑천이 있기 때문이다. 1989년에 ㈜ 맥시칸 법인등록, 1991년 서울로 진출, 2004년 본사를 서울로 이전해서 번창했다. 그러나 윤종계(尹宗鷄) 창업주는 아직도 대구를 벗어나지 않고 또 한 번 자신의 이름을 건 ‘윤치킨’으로 제2수성을 다짐하고 있다. 이후에 대구 치킨업계의 격돌에서 페리카나, 스머프, 처갓집이란 신생 검투사가 칼을 들고 경연장에 들어섰다.

1991년대 구미에서 탄생된 교촌치킨(kyochon.com)은 옛날 향교가 있던 마을 교촌(校村)을 밑그림으로 ‘선비의 꼿꼿함(올곧음)에서 맛의 즐거움을 탐구’라는 스토리텔링으로 1991년 구미에서 시작했다. 시경(詩經)의 “매화는 추위를 겪어야 맑은 향기를 풍기게 되고, 사람도 어려움을 당해야 올곧음을 나타내는 법(梅經寒苦發淸香, 人逢艱難顯其節)”이라는 경영철학을 갖고 있다. ‘진솔한 우리의 이야기를 담은 실제적인 맛(Real Flavor, True Story)’을 구현하겠다는 정신을 바탕으로 정도경영(正道經營)을 해왔다. 이렇게 하자 중구난방(衆口難防)이란 입소문 마법의 힘을 입어 1995년부터 프랜차이즈사업을 착수, 대형화 선두주자(first-mover)가 되었다.

글=권택성 코리아미래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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