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중기 개인전, 독자적 황금비율로 빚어낸 인간관계의 미학
노중기 개인전, 독자적 황금비율로 빚어낸 인간관계의 미학
  • 황인옥
  • 승인 2021.05.16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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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까지 갤러리 더블루
섹션1 ‘5·18 광주 항쟁’ 주제화
민주열사 사진물 콜라주로 표현
섹션2 ‘인연의 소중함’ 예술 승화
추상적 개념 하트 형상으로 풀어
형상·색채 모두 ‘황금비율’ 적용
감정 양상 실험적 방식으로 접근
균형적 구도 통해 주제의식 표출
누드 드로잉 등 80여점 작품 소개
 
노중기 작 '무제'
노중기 작 '무제'

 

노중기 작가에게 수(數)는 과학이나 수학의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수(數)를 예술의 세계로 들어가는 첫 관문으로 인식한다. 과학자나 수학자와 거리가 먼 그림을 그리는 미술 작가가 “무슨 수(數) 타령인가” 싶지만, 따지고 보면 미술만큼 수에 민감한 분야도 없을 것이다.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완벽한 미(美)의 기준으로 황금비율을 적용해왔기 때문이다. 밀로의 비너스상이나 레오나르드 다빈치의 모나리자, 석굴암 불상과 반가사유상 등 동서양을 막론하고 황금비율이 적용되지 않은 예술품들은 드물다. 수(數) 과학의 극치인 황금비율은 예술이 지향하는 궁극의 아름다움을 위한 핵심 키워드였다.

◇그가 창작한 황금비율로 평화로운 세상 염원

노중기 작품에서 황금비율을 빠트리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고 정작 달을 보지 못하는 주객전도의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그의 작업에서 황금비율은 시각적인 완성도와 내적 의미를 동시에 표출하는 키포인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가 널리 공인된 황금비율에 의지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는 자신이 직접 창작한 황금비율을 화면 구성에 활용한다.

자신만의 황금비율을 추구하는 태도는 독자적인 창작 세계를 염원하는 그의 예술철학으로부터 기인한다. 모든 예술가가 그렇듯, 그 역시 주관적인 미(美)를 창조하는데 역량을 결집해 왔다. 그는 “나의 미술에서 중요한 것은 남하고 차별을 두는 것”이라며 “나만의 황금비율을 만든 것도 그런 태도의 산물”이라고 언급했다.

갤러리 더블루(The Blue) 벽면이 노중기가 구축한 황금비율의 정수들로 그득하다. 지난 11일 개막한 작가의 13회 개인전인 이번 전시에는 ‘5월’과 ‘관계’을 주제로 한 작품 30여점과 누드 드로잉 50여점을 모았다.

첫 번째 섹션의 주제인 ‘5월’은 더블루 전시 시점인 5월과 맞물려 선택한 주제다. 그가 “뉴스를 통해 미얀마 사태를 접하면서 5·18 광주 항쟁이 떠올랐다. 때마침 전시 기간도 5월이었다”며 ‘5월’을 주제화한 배경을 설명했다. 이 섹션에서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작가 특유의 조형감각으로 표현한 작품들을 소개한다. 광주에 투입됐던 계엄군을 묘사하거나 계엄군에 의해 스러져갔던 민주열사들의 사진 자료들을 콜라주 기법으로 표현한 작품들이다. 화면 속 계엄군 형상에서 군인들의 워커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가 “작업을 하면서 만족과 불만족이 무시로 오가지만,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은 유난히 만족스럽다”고 했다. “화면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인다. 계엄군의 군화소리까지 들리는 것 같다. 그런 점이 만족스럽다.”

이번 전시의 주제 중 하나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지만, 일찍부터 그는 역사적인 사건이나 사회병리현상을 다루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이런 태도에 비춰보면 그의 내면 깊은 곳에 사회운동가나 정치가적인 기질이 꿈틀댈 것 같지만 정작 그는 “나는 그런 범주와는 거리가 있다”며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라고 선을 그었다. 사회문제를 둘러싼 그의 관심은 작정하고 달려든 의식의 결과라기보다 “그런 세월을 살며 보았던 것에 대해 ‘야들이 와이카노, 너거들은 와 싸우노’라며 내가 당시에 가졌던 의문을 화가로서 담담하게 표현한 것”이었다. “작가는 세상과 분리될 수 없고, 작가는 자신이 본 세상을 그리게 되어 있다. 기록하는 것은 작가의 일이고, 그것을 평가하는 것은 감상자의 몫이다.”

◇‘관계’와 ‘인연’을 주제로 예술과 삶을 반추

두 번째 섹션의 주제는 ‘관계’다. ‘관계’는 그가 예술가 이전에 인간으로서 관심을 가져 온 평생의 화두다. 관계로부터 시작해 관계로 끝나는, 인간을 둘러싼 인연의 오묘함을 사유와 예술의 주제로 삼아왔다. 관계나 인연에 대한 단상은 이별의 경험으로부터 촉발됐다. 인간이면 누구나 죽음으로 인한 이별을 피할 수 없는데, 그 역시 그런 이별을 경험하면서 인연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됐다.

“좋은 관계도 있고, 나쁜 관계도 있다. 그러나 그 고통마저도 즐기면 고통이 아닐 수 있다. 나는 내 나름의 관계를 즐기는 방법을 터득했다. 예술로 승화하는 것도 그 중 하나의 방편일 수 있다.”

추상적인 개념인 관계를 시각적으로 풀어가는 형상은 하트다. 하트는 ‘모든 관계를 사랑’으로 접근하는 작가의 철학적인 표상에 해당된다. 그가 “미움이 있어야 사랑이 있다. 그렇게 보면 미움도 사랑 아니겠나”며 사랑론을 펼쳤다.

화면의 모든 형상은 그가 창작한 황금비율이 적용된다. 큰 면을 그리면 반드시 그 반대 지점에 작은 면을 그리고, 큰 면은 연한 색으로 작은 면은 진한 색으로 칠한다. 색의 조절을 통해 작지만 강한 기운, 크지만 상대적으로 약한 기운으로 표현한다. 그 결과 면의 규모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면은 대등한 관계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하트의 경우 역시 규모의 차이를 개수 조절로 대등하게 조절한다. “크고 작은 것들을 면적의 크기나 숫자를 통해 균형을 맞춘다. 이때 황금비율이 적용된다.”

형상 못지않게 색도 황금비율의 적용을 받는다. 빨강이 있으면 그 너머에 파랑을, 초록이 있으면 그 반대편에 노랑을 칠한다. 서로 충돌하는 형상들을 황금비율로 조정하는 이유는 화면의 균형 때문이다. 크고 작은 형상들이 색채나 수량 조절로 서로 대등한 관계로 정립된다. 그가 ‘균형’을 통해 종국에 추구하는 가치는 ‘평화’다. 이렇게 보면 그의 황금비율은 작가의 주제의식을 완결점으로 이끄는 시각적인 도구임에 틀림없다.

“팽창과 수축, 따뜻함과 차가움 등의 서로 상반되는 색들을 던져놓고 처절하게 싸우면 그 끝에 평화가 찾아온다. 나는 이러한 관계의 미학을 표현하려고 한다.”

중심이 되는 형상은 그때그때 달라진다. 어느 한 형상에 갇히기보다 하트나 면, 선 등 구애를 두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형상이 아니라 화면에서 균형을 추구하는 것이고,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에 관계를 둘러싼 작가의 감정들이 드러난다. 사진을 꼴라주로 활용하기도 하는데, 이 역시 감정을 고조시키는 또 하나의 방법론이다.

색채나 형상, 꼴라주의 협업에서 “흐렸다 맑았다, 슬펐다 기뻤다”하는 작가의 감정들이 가감 없이 개입된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오만가지 마음 속 편린들이 다양한 실험적인 방식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인연이라는 고리를 가지고 내가 이해한 그때그때의 감정이나 상황들을 실험적인 방식으로 표현해 보는 것이다.”

◇‘팔리는 작가’보다 ‘행복한 작가’로 살고파

그가 “애초에 팔리는 그림에 대한 욕망은 접었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는데 작업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관계로부터 촉발한 작업들에서 행복감을 얻는다”고 했다. 지금이야 작가 스스로 행복하기 위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지만, 작업 초기에 그도 외부를 의식했다. 소위 말하는 ‘팔리는 작가’로 성공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꾸고, 젊은 투혼을 그림에 불살랐다.

당시 그의 호기로운 꿈이 전혀 근거 없는 객기만은 아니었다. 그는 주위에서 “그림 좀 그린다”는 칭찬을 곧잘 들으며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꿈이 채 꽃 피우기도 전에 그는 절망 앞에 섰다. 주위에 뛰어나 화가들이 차고 넘쳤다. 그는 망설임 없이 붓을 꺾고 교사의 길로 접어들었다. “교직에 있으면서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었다. 당시 그림에 대한 미련은 아예 없었다.”

그로부터 5년 후, 그는 사표를 던지고 다시 전업작가로 돌아섰다. “작가의 자격이 무엇인가?”를 따졌을 때 그 자신 “자격을 갖추었다”는 자각을 하고는 길을 틀었다. 그가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어느 순간, 모든 학생들의 그림이 다 좋게 보였다”며 “보통은 화가들의 심리가 남의 그림에서 못 그린 부분부터 찾기 마련인데, 당시 나는 좋은 것만 보았다”고 회상했다. “좋은 자질을 갖춘 것 같다는 생각에 다시 그림을 시작하게 됐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사실주의, 뼈대만을 추려 표현하는 추상주의, 사실과 추상의 중간지대, 작가의 심상을 표현하는 추상표현주의 등 지난 40여년간 화풍의 변화는 많았다. 모든 변화가 성장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변화는 성장 가능성을 높이는 단초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도 끊임없는 변화를 통해 성장을 모색해왔다.

노중기의 작업 세계가 많은 변화를 거쳐 왔지만 어떤 위협이나 회유에도 변함없이 고수해온 것이 있다. 독자적인 화풍에 대한 열망이다. 그는 독자적인 길을 개척하는 길에서 행복을 길어올린다. 물론 세상과 단절될 수 없는 환경적 요인으로 그 역시도 시대적인 흐름 속에 놓여지기도 했지만, 그것은 우연의 산물인 경우가 많았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것이 내거다’라는 소리 못한다. 그렇다고 ‘이것이 내 것이 아니다’라고도 못한다. 중요한 것은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작업이 제일 훌륭하다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향해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갤러리 더블루 전시는 28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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